지금 우리는 어떤 ‘정상(Normal)’ 속에 살고 있는가. 기후위기, 심화하는 불평등, 전쟁, 이주, 시민의 자유와 주권을 둘러싼 갈등이 동시에 벌어지는 이 시대에, ‘정상’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과연 누가, 어떻게 만들어온 것인가. 지난 2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더 넥스트 노멀: 다이얼로그 인 아시아> 포럼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더 넥스트 노멀(이하 TNN)’은 오랫동안 아시아 지역을 리서치하고 협력해 온 아시아 프로듀서들이 2년간의 논의 끝에 첫 단추를 끼운 아시아 협력 프로젝트다. 레지던시 형식의 ‘아시아 예술가 리서치 랩’과 예술가들의 담론을 모아 공유하는 ‘다이얼로그 인 아시아’로 구성된 네트워크이자 플랫폼이다. TNN은 세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첫 번째는 ‘다음의 정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 질문으로, 예술가들에게 집단적으로 다음의 정상이 무엇일지를 상상하도록 요청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레지던시의 형식을 통해 예술가 간의 연대를 구축하고 담론을 확장하는 것이다. 레지던시는 예술가 리서치 랩(Artists Research Lab)의 형식으로 예술가 사이뿐 아니라, 예술가와 공동체 사이, 지역적 이슈와 그보다 넓은 지역의 관심사 사이를 연결한다. 세 번째는 역사적, 지역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국가 중심이 아닌, 아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재구성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이번 포럼은 TNN의 질문을 공유하고, 아시아 연대의 새로운 상상을 나누는 자리였다.
정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상상
포럼이 던진 첫 번째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예술은 어떻게 ‘정상’이라 여겨지는 것의 경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가. 키노사키국제아트센터의 프로그램 디렉터 유이치로 요시다는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지역 소멸 문제를 다루면서, ‘소멸’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지역 소멸을 다시 성장의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경제 중심적 사고다. 효율과 성장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이미 상실되었거나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회복시킬 잠재력을 지닌다. 그는 예술을 삶을 살아가는 기법으로 대함으로써, 지속적 성장이나 확장을 전제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인류학자 라하유 하르잔티는 같은 질문에 다른 각도로 응답했다. 그녀는 기후위기에서 기후정의로, 다음 정상의 위치를 이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예술이 장식적 존재가 아니라 기후정의를 위한 실천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후 활동가·연구자·예술가의 협업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예술적 실천이 기후위기를 정상화된 재난에서 쟁점화와 상상, 정의 투쟁의 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이치로가 예술의 정치·경제적 도구화를 경계했다면, 라하유는 예술이 기후정의를 위한 실천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긴장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지금의 ‘정상’에 균열을 내고 다음의 가치를 상상하는 데 예술의 역할이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깊이 공명한다.
대만 타이둥에서 온 프로듀서 벳시 란은 원주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타이둥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주민의 지혜를 지역 예술 실천의 나침반으로 제안했다. 그녀는 원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깊은 형태의 식민화에 젖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넥스트 노멀을 진정으로 정의하려면, 기존의 습관을 ‘탈학습’하고 배제되어 온 존재들을 담론의 중심으로 불러오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해방과 억압, 전통과 동시대성이라는 불편한 모순을 직면할 때, 비로소 예술과 사회를 위한 진정한 탈식민화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만과 한국의 예술가가 정상의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 나가는 예술적 실천을 나누어 주었다. 대만의 동시대 원주민 여성 예술가 이훗 신라이 치헥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이 마찰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외부로는 지배적 주류 문화와 식민지적 동화의 압박, 내부로는 공동체 안에서 성 정체성에 따른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 그 끊임없는 마찰 속에서 원주민 페미니즘의 실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국의 구자혜 연출은 70세 트랜스젠더 여성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를 통해, 정상성의 규범 바깥에 놓인 존재가 무대 위에 섰을 때 연극이 마주하게 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따를 수 없는 무대의 관습에 저항하며, 관습적 미학을 넘어 연극의 윤리적 지속가능성을 재사유하는 것, 그것이 곧 새로운 미학의 창출이라고 말했다.
불안을 나누고 연대를 되살리며
포럼의 두 번째 세션은 라운드 테이블로 진행되었다. 참여자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은 하나였다. “지금 당신의 지역과 도시를 잠식하고 있는 가장 큰 불안은 무엇이며, 예술은 그곳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의 프로듀서들이 각 테이블의 소주제를 제시하고, 참여자들은 자기검열과 표현의 자유, 다문화주의와 소속감, 고립과 외로움, 타인을 유형화하는 시대의 진정한 연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불안은 달랐지만, 그 불안을 언어화하고 함께 나누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연대였다. 타자와의 대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이 자리는 불안을 공유하고 연대의 감각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세션은 TNN의 핵심 형식인 아시아 레지던시를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한국 강화도, 일본 도요오카와 돗토리,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호주 멜버른에서 온 발제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나누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강조한 것은 레지던시가 예술가 개인의 창작 영감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관습적 정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자 타츠야 카와무라(일본 도요오카연극제 프로듀서)의 말처럼, TNN 레지던시는 새로운 형식의 발명이 아니라 근원적 위치로의 회귀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레지던시는 이동을 전제한다. 발제자들은 지역 주민이 토양이라면 예술가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바람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레지던시가 단순한 이동의 장치가 아니라, 지구적 전환의 시대에 예술 실천과 협업, 문화 시민성을 함께 재사유하는 공유 공간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호주 퍼포밍 라인의 프로듀서 사이먼 웰링턴이 말했듯, 레지던시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가 장소를 만나는 방식, 공동체가 예술적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 아이디어가 지역을 넘어 이동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TNN은 아시아의 프로듀서들이 중심이 되어 다중 중심적으로 아시아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레지던시 거점들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예술가들이 아시아 각 지역에서 ‘정상’의 경계를 넘어서고 미래의 새로운 규범을 상상하며, 도요오카와 자카르타 등에서 제기된 질문이 강화도, 시드니, 방콕 등에서 어떻게 공명할 수 있을지를 함께 그려본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다음의 정상’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아시아의 예술가들과 함께 붙들고, 연결되고, 상상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TNN의 꿈이다.
* <더 넥스트 노멀: 다이얼로그 인 아시아> 포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프로듀서그룹 도트가 기획하였습니다.
– 홈페이지: https://thenextnormalasia.com
– 홈페이지: https://thenextnormalasia.com

- 박지선
- 한때 축제를 기획했고, 공연예술 작품의 해외 교류, 국제 공동제작 등 국제교류를 활발하게 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동료들과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을 만들어 동시대 예술과 프로듀서의 역할, 아시아 지역 간의 교류와 협업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가, 기획자 동료들과 질문을 만들고, 리서치를 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과정 중심의 작업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포스트 휴머니즘, 기술 사회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시대 예술이 어떻게 위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며 열정과 무력감 사이를 오고가며 ‘희망’이라는 단어의 끝을 잡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있는 중이다.
jisunarts@yahoo.com - 사진 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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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불안의 시대, 예술은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포럼이 제기하는 질문들
잘 보고 갑니다
갈등과 불안의 시대, 예술은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포럼이 제기하는 질문들
기대만점입니다
🌏 “정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낯설고도 새롭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요.
포럼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정상’을 의심하고, ‘다음의 정상’을 상상하는 용기를 생각해봅니다.
예술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균열 속에서 다시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힘이라는 말이 와닿아요.
특히 기후정의, 탈식민화, 다양성의 존중까지…
그 모든 논의 속에서 ‘예술의 윤리’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아시아의 예술가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냅니다.
그들의 상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