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과 폭우 속에도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부터 그린㊳ 인도농사연극

요즘 열대 우림에서 건기에 더위 나기는 우리네 겨울나기처럼 생사가 걸린 일이 되었다. 그러잖아도 더운데 기후 변화로 온도가 더 올라갔으니 말 그대로 ‘더워 죽는 위기’를 체감하게 된다. 그런 때 공연을 보려고 사방이 다 뚫린 삼륜차 오토릭샤를 타고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열대 바람과 뙤약볕에 쏘이며, 요철 구간마다 엉덩이를 털썩털썩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컴컴해져서야 공연장에 도착한 적이 있다. 벼를 베고 난 자리에 세운 무대에서 <초승달>이라는 어린이 청소년 연극을 상연하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씻어 걸어둔 초승달 같은 청량함을 무대 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곳이 인도 농사짓는 연극마을 ‘깔라와라(Kalavara)’에 대한 첫 기억이다.
한국의 장단과 움직임을 활용한 장면 만들기 워크숍
인도, 농사, 연극
농사연극에 관한 관심은 미투(Me Too)에서 시작되었다. 미투 이후 들불처럼 번졌던 한국 연극계의 심상찮은 바람은 인도 여성주의 연극에 눈을 돌리게 했다. 그래서 인도를 대표하는 여성 연극인 스리자(Sreeja K.)가 운영하는 아랑고뚜까라(Arangottukara) 지역의 농사연극마을(깔라빠타살라, Kalapaatasala)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매년 개최하는 ‘추수축제’(꼬이뚤싸범)에 참가하면서 이들의 활동이 기후위기를 맞아 생태공동체에 대한 대안으로서 의미심장한 활동임을 알게 되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을 함께 나눠 먹자는 단순한 취지에서 시작한 추수축제가 올해로 17년째를 맞이하였다. 매년 운영적자를 무릅쓰고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치르고 있는 이 축제는 반자연, 반원주민, 반여성에 반대하는 아랑고뚜까라의 활동 원칙을 실천으로 옮기는 예술 행동의 현장이다. 그들은 자연에서 난 소품과 도구를 활용하여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마을 주민들과 커뮤니티 연극을 올리며 삶과 예술을 동시에 신명 나게 만들고자 한다. 사흘 동안의 축제에서는 지역의 공연예술을 한자리에 모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과 채소로 지은 음식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
그들의 활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올해 축제에 한국의 장단과 움직임으로 장면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중학생부터 초로의 농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궤적을 가진 참가자들은 부지런히 땀 흘리며 “덩덩 꿈따꿈” 한국과 인도의 장단과 움직임이 섞인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기후프로젝트로 진행한 인도농사연극 온라인 워크숍에서는 <옹헤야>와 <꿈빌랑야>(벼를 베고 난 자리에 재배하는 박의 일종) 노래를 서로 주고받으며 신명을 나눠 가졌다. 행여나 정전으로 연결이 끊어질까 봐 새벽부터 서두르며 조바심을 냈던 나도 온라인을 타고 전해지는 흥을 타고 긴장이 풀어지며 흔들흔들 촬영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카메라까지 흔들어대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참가한 분들은 액션 영화를 보는 듯했으리라.
  • 축제 관람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
     
  •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로 만든 죽을 대접하는데
    숟가락을 잭푸룻 잎을 돌돌 말아 만든다.
추수축제의 무대로 쓰던 곳이 풍성한 채소밭으로 변신하였다.
기후위기 감각 깨우는 예술가
아랑고뚜까라 다음으로 다시 깔라와라 지역을 방문하였다. 코어 농사예술축제(Kanvu Karshika Kalautsavam)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삶과 예술의 중심축을 담고 있는 이 축제를 조직하는 단체는 ‘작은지구연극학교’(A Little Earth School of Theatre)이다. 사흘 동안 지역 커뮤니티 연극 단체들의 초청 공연과 작은지구연극학교에서 제작한 어린이 청소년 연극과 역사극을 보면서 무대를 둘러싼 공간 속 모든 인자가 역동적으로 넘쳐흐르는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현장을 목격하였다.
기후위기와 예술에 관한 세미나도 기억에 남는다. 기후위기는 케랄라(Kerala) 지역에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에만 해도 와야나드 지역에서 산사태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고,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던 열대 몬순 기후에서 비 오는 시기가 예측불허로 바뀜으로써 대표 농작물인 망고와 옥수수 농사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와야나드 지역에서는 지질환경을 관찰하고 강우량과 지반에 미치는 영향 관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를 지역민들에게 보급하여 재난에 사전 대비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태양열과 풍력 발전을 활용하거나 유기농 재배 농가에 바우처를 제공하는 식으로 민간뿐 아니라 정부도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함을 강조했다. 예술가들은 누구보다 먼저 예민하게 기후위기를 감각함으로써 대중들이 인식하도록 만들고, 그 뒤를 이어 과학자나 공학자들이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농사와 연극, 농사와 공연예술을 접목한 축제를 대중과 함께 치러내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방문한 무리꿀람 샬라(Moozhikulam shala)는 알루와(Aluva) 지역의 공동체 마을로,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며 연극과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이다. 장거리 여행으로 노곤해진 몸을 내리니 행사장은 왕복 일 차선 도롯가에 의자 몇 개를 놓고 주민들이 시를 읊거나 노래하며 부처의 삶을 그리는 상당히 소박한 동네 행사였다. 그때야 그날이 석가탄신일임을 알게 되었고, 달빛 아래 놓인 푸르스름한 부처 수행도를 감상하는 것으로 실망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무리꿀람 샬라의 운영자인 쁘렘꾸마르는 일요일이면 지역농산물을 위한 장이 설 테고 장이 파하면 집에 온 손님들과 자연주의 요리를 같이 만들 계획이라며 다시 방문할 것을 부채질하였다. 하지만 무리꿀람에 도착한 토요일 밤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시작되더니 일요일 아침까지 비가 이어졌다. 저지대인 이곳은 홍수피해가 큰 지역으로 폭우 뒤면 강물이 범람하여 집안까지 물이 찬다는 이야기에 (침대 타고 아라비안 해로 떠내려갈까봐) 밤잠을 설쳤던 것도 같다.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장이 설지 확인차 다녀온 쁘렘지는 염려했던 대로 장도, 요리 수업도 폭우로 취소되었다고 말했다. 어쩌랴. 이 또한 기후위기로 예정보다 일찍 시작한 몬순 때문이 아니던가.
니르디간타(Nirdigantha)는 ‘연극인들의 이상향’이란 말을 종종 들어왔기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폭우로 가로수가 쓰러져 30분, 1시간, 늦어지던 버스는 3시간 30분이 연착되어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정류장에 도착했다. 8시간 거리를 12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니르디간타는 녹초가 된 몸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꿈꿔볼 만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 극장이 서너 군데 있고, 녹음 스튜디오와 도서관도 있으며, 깔끔하고 편리한 숙소에 맛있는 식사와 간식까지.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지역민과 아이들을 위한 연극과 축제를 다수 만들어 왔고 연극강사를 학교에 파견하며 우수예술인들이 레지던시를 통해 창작품을 발굴할 시간과 장소와 제작비를 제공하고 있다. 모든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유명한 영화배우 프라카쉬 라즈(Prakash Raj)가 지원하고 있다. 니르디간타 곳곳을 거닐며 나는 다시 26년 전 내가 인도로 떠나면서 가슴에 품고 있었던 커뮤니티 마을에 대한 꿈을 다시 꺼내어 보게 되었다.
  • 코어 축제에서 초연한 어린이 청소년극 <그림책의 불사신들>
     
  • 연극강사 역량강화 워크숍. 프라카쉬 라즈는 어린이를 현재의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며 예술교육과 연극강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빌딩숲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을까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진행하는 인도농사연극 워크숍을 찾은 이들은 연결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은 우리 뇌는 본질적으로 자기밖에 모른다고 말한다. 뇌의 안중에 ‘남(타인)’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존재는 남이 아니라 확장된 내가 된다. 이 워크숍은 그러한 나를 감각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첫 워크숍에 온라인으로 참가한 분이 했던 질문이 뇌리에 남는다. “어떻게 농사와 연극을 같이 할 수 있으며 그게 한국에서 가능할까요?” 자연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다면 빌딩 숲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연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 옆집만 보더라도 봄철마다 아름다운 향과 색을 피우던 라일락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네모반듯한 빌라를 짓고는 ‘꿈의 숲, 어반포레’란 이름을 지어 붙였다. 그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숲 꿈을 꿀 수 있을까? 없는 것도 볼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감각을 갈고 닦아 예리하게 날을 벼려두어야 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인도농사연극에서 내가 배운 바는 일단 해 보는 것이다. 줄줄이 딸린 식솔들처럼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으면 현실적 제약만 떠오르기 마련이다. 매년 운영적자에 허덕이는 아랑고뚜까라의 스리자는 “다만 함께하며 즐거움을 나눌 때 그보다 ‘이윤 남는’ 장사가 어딨겠냐”라고 말한다. 현학적인 이론이나 미학적 깊이는 뒷줄로 보낸다. 농사짓듯 연극을 만들고, 연극 짓듯 농사하며 삶과 예술이 한데 엮여 공명하는 현장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질문한다.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되 단순하고 소박하게 우선 먼저 질러보기. 기후위기를 인식하기까지, 인식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실천을 통해 우울을 떨쳐내고 신명 나게 삶 속으로 예술을 녹여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까지.
변영미
변영미
더 많은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기록하고 실천하고자 노력 중이다. 아시아전통연극에 이끌려 인도에서 카타칼리와 모히니아땀을 수련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인도문화교류센터을 설립하여 양국 예술가 교류를 추진해왔고, 현재는 삶과 예술과 수행이 한 자리에 만나는 글로벌 아유르 요가트 협회를 추진하고 있다. 저서로 『인도의 현대연극과 전통연극』(푸른사상, 2020), 『숨겨둔 금항아리-남인도 인문학 이야기』(연극과인간, 2024)가 있고, 공저로 『연극과 서사』(연극과인간 2024), 『한국 현대 연출가 연구3』(연극과인간, 2024)가 있다.
swaraindia@naver.com
사진제공_변영미 연극 활동가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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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04일 at 3:14 PM

    뙤약볕과 폭우 속에도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부터 그린㊳ 인도농사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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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04일 at 3:18 PM

    뙤약볕과 폭우 속에도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부터 그린㊳ 인도농사연극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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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07월 27일 at 5:34 PM

    교육과 연극을 연결시킨 교육연극이 하나의 교육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인도라는 낯선곳에서의 농사+연극으로 예술과 교육을 연극으로 묶는 시도가 참신해요^^
    특히 연극 축제의 장소가 농사짓는 밭으로 변신하여 수확하는 연결성이 넘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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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04일 at 3:14 PM

    뙤약볕과 폭우 속에도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부터 그린㊳ 인도농사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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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04일 at 3:18 PM

    뙤약볕과 폭우 속에도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부터 그린㊳ 인도농사연극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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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07월 27일 at 5:34 PM

    교육과 연극을 연결시킨 교육연극이 하나의 교육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인도라는 낯선곳에서의 농사+연극으로 예술과 교육을 연극으로 묶는 시도가 참신해요^^
    특히 연극 축제의 장소가 농사짓는 밭으로 변신하여 수확하는 연결성이 넘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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