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대학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결혼했는데 결혼과 함께 맞이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여성을 바로 하위 위치로 강등시키더군요. 뭐든지 최초의 경험은 강렬하지만 그 현상에 대한 스스로의 대처는 참 미숙합니다. 이 경험은 새로운 환경에서 겪게 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현실을 바라보게 했어요.” – 이선민 사월의 들판 대표·사진작가
예술단체 ‘사월의 들판’ 대표 이선민 작가는 자신의 작업 방향성이 생산되던 시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있어 자신이 익숙했던 가족 공동체와 떨어져 타자의 새로운 공동체로 편입됨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가 지닌 구조나 가치, 규율 등을 동시에 강제 받아야 하는 낯섦이 수반된다. 지금도 이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지만, 특히 작가의 세대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이와 같은 강제가 너무도 당연했던 시절은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호작용 하는 관계 속에서 어찌하여 누군가는 강제당해야 하는가?’
  • 이선민, 트윈스Ⅰ, 태화와 희지, 200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이선민, 여자의 집Ⅱ, 이순자의 집#1-제사, 200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예술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다
작가의 발화된 질문은 ‘여자의 집’ 시리즈로 표출된다. 분홍과 인형으로 가득 메운 방안에 걸터앉은 엄마와 여자아이의 초상(트윈스Ⅰ), 제(祭)를 지내고 있는 남성들의 위치인 안방을 넘어가지 못하고 문지방 밖에서 제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여자의 집Ⅱ), 담담하게 표현한 당시의 묘사들은 ‘시대의 당연함이었고 그것이 그들(여성)에게 더욱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 강제’했던 남성의 시각에 질문하고 있다. ‘과연 이것은 당연함인가?’
젠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젠더를 떠나서도 작가의 질문은 유효하다. 이주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장애가 있는 자를, 성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태도 역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표준이라 정하여 그어놓은 선 밖의 사람들에게 그리 녹록지 않다. 효율과 관습에 집중된 집단적 사고가 표준에 집착하고 그 규격에 맞지 않음을 불량이라 재단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선민 작가가 십수 년 전 제기한 질문에 이 사회는 아직 답을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답 없음’은 예술가가 던지는 질문이 시제(時制, tense)를 초월하여 유효성을 지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예술의 언어는 사회라는 공동체가 지닌 근원적 모순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앞서 말한 2004년 작가의 작업 〈여자의 집Ⅱ- 제사〉가 20년이 지난 2023년 추석에 작가도 모르는 사이 모 민속학자의 SNS에서 크게 논쟁이 생겼다는 해프닝에서도 우리는 증명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작가의 오랜 질문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민속학자의 시선에서 그것이 유교적 내용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남성인 필자도, 나와 비슷한 세대(7, 80년대 태생의) 대부분의 남성 역시도, 내 엄마가, 내 누이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문지방을 넘어오지 못했음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이라고 하여 크게 달라졌는가.
  • 광교45단지 경로당 ‘오래된 사진’(2018)
  • 중도입국청소년 ‘내 책을 만들고 싶어요’(2014)
견고한 공동체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선민 작가는 왜곡되어있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자신의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저 덤덤히 피사체로서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바라보는 관람자의 사유에 판단을 이전한다. 동시에 작가는 이와 같은 질문을 주변으로 확장해 나아간다. 작가는 젠더적 정체성을 사회가 결정해 놓은 모순들에 대해 여성으로서의 질문뿐만 아니라, 주체의 판단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확장을 문화예술교육으로 연결하여 참여자와 네트워킹하고 있다.
머나먼 타국에서 고향을 떠나온 이주 여성이 작은 가방에 담아왔던 사물의 의미를, 성년을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의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장애를 가진 이들이 직접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한없이 넓은 등을 가졌던 부모의 노년을 바라보는 성년이 된 자식들이 느끼는 슬픔과 고마움을, 노년이 기억해 내는 리즈 시절과 경험의 혜안(慧眼)을 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커뮤니티를 통해 참여자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작가가 주축이 된 문화예술교육 단체 사월의 들판이 지난 10여 년간 작업했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은 철저하게 참여자 스스로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참여자가 자신의 주변에서 존재하는 사물들, 또는 벌어지는 행위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수합(收合)한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농밀한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속삭이는 과정에서 참여자 간의 연결을 이어간다. 이는 우리의 연결이 왜 필요한가에 관한 판단 근거를 스스로 확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경험한 근거는 흔들리지 않을 정체성을 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은 공동체 속에서 나의 위상, 위치, 주체를 확보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저는 공동체가 꼭 돌담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 돌담을 보면 똑같은 모양이 없어요. 세월을 지날수록 둥글게 되고 크기도 제각기이고 중간중간 작은 구멍도 많고요. 그렇지만 제주의 강한 바람에도 견뎌냅니다. 견고한 공동체란 크고 작은,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때론 작은 돌과 바람이 지나가는 구멍도 두고 그렇게 서로를 지탱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봐요.” – 이선민 사월의 들판 대표·사진작가
작가의 말처럼 사월의 들판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바는 효율을 위해 구성원 간의 물리적 크기를 나누고 따름의 규율을 만들어내는 수직적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다. 다양하고 다른 크기 하나하나가 스스로 자신의 크기를 지켜냄으로써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고, 시간 속에서 같이 풍랑을 이겨내며 조금씩 더 밀접해지고 견고함을 유지하는 연결로서 이뤄지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나는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위성이 커다란 모행성의 중력에 휩쓸려 찢기지 않을, 그리하여 건강한 긴장의 공전(公轉)이 유지될 수 있게 ‘로슈 한계(Roche limit)’를 버텨내듯, 각자 자신의 크기를 지키며 모두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주체의 형성을 말이다.
  • ‘나를 닮은 사물’
  • ‘여자친구를 닮은 사물’
나누어지지 않는 각자가 스스로 열고 들어오도록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소수자로부터 비롯된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대상과 과정은 얼핏 보기에 복지의 영역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은 매우 민감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이 많은 부분에서 복지의 영역으로 읽히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문화나 예술의 질문이 사회의 소수자에게서 다수 발현되는 것은, 사회라는 공동체의 다수 우선적 한계가 소수의 희생을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묵인이 다양한 질문의 합의를 기초로 하는 공동체적 생태를 위협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숲의 건강함을 측정하는 표지는 그 숲 내에 존재하는 종(種)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척도로 한다. 건강함은 비대한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나의 종이 양적으로 가득 지배하는 숲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숲이라는 뜻과 다름없다. 종의 다양성은 이런 이유로 중요하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소수의 질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가 다양성을 보존해야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예술의 자성(自省)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소수는 ‘적은 수(少數)’가 아닌 ‘자신 외에 나누어지지 않는 수(素數, prime number)’로 읽혀야 한다. 때문에 그것을 공동체의 효율 추구에 따라 벌어지는 소수에 대한 불공정을 메꾸기 위해, 다시 말해 복지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더불어 복지의 시선은 ‘제공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강하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의 행위는 제공되는 행위가 아니다. 참여자 스스로가 자신이 닫고 있는 문을 열어 나를 드러내고 타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안부의 손을 맞잡는 행위로서 결속되는 과정이다. 이는 배려나 선한 의지처럼 수혜와 시혜로 위상을 나누고 제공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복지적 이해로는 생산될 수 없다. 사월의 들판의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내 책을 만들고 싶어요〉는 이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자립준비청년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 희망과 기대의 감각을 참여자 스스로 셔터를 눌러 확인하고 이를 나누며 각자의 책자를 만든다. 기획자의 개입은 최소화된다. 그럼으로서 그들이 사회 속으로 ‘스스로 열고 들어오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사월의 들판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뜻밖의 문제(?)를 경험했다. 소수자를 향한 과한 친절과 배려, 너무도 당연히 여긴 주변의 따듯한 시선이 오히려 그들에게 불편함과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음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 자립준비청년과 함께한 〈내 책을 만들고
    싶어요-연결된 우리〉
  • 서로의 책을 이어 빅써클을 만들며 공동체의 의미를
    환기하는 자립준비청년들
당연하지 않음으로서의 당연함
단체가 경험했던 소수자를 향한 따듯함의 오류는 ‘사회가 소수자를 바라보는 선함으로서의 당연함’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마치 소수자에 대한 선한 의도나 배려가 너무도 당연하여 의심조차 하지 않을 착함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혹시 ‘착하고자 바라는 배려자의 개입된 욕망’에 더 치중된 것은 아닐까? 필자에게 이 의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과연 당연한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이 오히려 더 당연하지 않은가?’
사월의 들판이 해왔던 문화예술교육 작업은 우리에게 ‘당연하지 않음으로서의 당연함’에 대하여 꾸준히 질문하고 있다. 아니, 서두에 말한 것처럼 작가 이선민의 시작부터 이미 그래왔다. 예술적 사유는 그들의 질문처럼 나의 당연함을 깨어놓는 일상을 만났을 때 촉발된다. 그리고 그 촉발은 우리 모두를 한 걸음 더 성숙하게 만든다. 문화예술교육은 이런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문화예술교육이 물리적 제공에 편중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겐 당황스럽고 불편한 지점이다. 물론 그것이 전혀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로 문화예술교육이 읽히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사월의 들판이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사회적 질문의 테두리에서 예술의 기능이 발휘되고 있는 고마운 현장이었다. 그 고마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효율을 위해 내던진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에 대한 숙고에서 오는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질문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기대는 ‘왜(why)?’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이선민 사월의 들판 대표
     
  • 코로나 시기 청각장애인과 온라인으로 〈내 책을 만들고
    싶어요-보이는 우리〉를 진행하고 만든 빅서클
양재혁
양재혁
‘컬쳐커뮤니티동네’라는 단체에서 대표 직함을 맡고 있지만, 실상은 동네 실업자인 대한민국 아티스트!
saraku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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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사월의 들판 인스타그램 @ltp_project_2013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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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03월 19일 at 10:39 PM

    이선민 작가님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하네요. 다른 한 편으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작품의 메시지가 힘을 가진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 author avatar
    이찬성 2025년 03월 20일 at 6:00 PM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심한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어 공유해 주신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불편하지만 마주하고 나아가야 하는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03월 21일 at 11:31 AM

    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공감이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5년 03월 21일 at 1:06 PM

    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기대만점이네요

  • author avatar
    이승희 2025년 03월 22일 at 11:16 PM

    관계와 공동체, 다른 서로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협업하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각자 만든 책으로 서로 연결된 빅써클의 힘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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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03월 19일 at 10:39 PM

    이선민 작가님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하네요. 다른 한 편으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작품의 메시지가 힘을 가진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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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성 2025년 03월 20일 at 6:00 PM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심한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어 공유해 주신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불편하지만 마주하고 나아가야 하는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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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3월 21일 at 11:31 AM

    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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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3월 21일 at 1:06 PM

    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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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03월 22일 at 11:16 PM

    관계와 공동체, 다른 서로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협업하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각자 만든 책으로 서로 연결된 빅써클의 힘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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