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성격이 다른 사람이 있듯이 꽃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어서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지면, 다르지만 같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 서로 사랑하지 않을까.” – 2022년 〈왁자지껄 흔한여행〉 참가자
2022년 안양천 정자에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나물을 다듬고 먹을 수 있는 꽃으로 떡을 꾸미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집살이며 직장 생활, 투병기, 친정과 자식, 외로운 자신 등 어디 가서 말 못 할 이야기를 풀고 흩어진다. 다시 같은 곳을 찾기도 하고, 때론 그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기도 한다. 도시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던 존재들이 잠시 공간과 시간을 나누며 묻어두었던 속을 내보이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안녕’을 말한다.
2024년 안양천 같은 정자에 이번에는 버섯을 주제로 모였다. 이제 막 앉기 시작한 아이, 깡총거리는 어린이, 그림 그리는 것이 어색한 중년, 버섯을 가져가고 싶은 노인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안양천에서 자라는 버섯을 찾아서 위치를 공유하고, 각자 찾은 버섯을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와 함께 버섯 노래를 만들고, 막간에 한 할아버지의 운동 비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궁금해서 찾아들었다가 8회차 모임에 모두 참여한 부부는 마지막 날 함께 먹을 김밥을 손수 준비해 오기도 했다. 따뜻한 김밥을 나눠 먹으니 버섯이 탐나서 참여했던 할머니의 마음도 평화로워진 듯했다.
사람들을 전시장까지 오게 하려면
“우리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하려면, 사람들이 편안하고, 낯설지 않게 전시장을 찾을 수 있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분더캄머(Wunderkammer)’는 시각 작가들의 모임이다. 2012년 공동 작업실에서 만난 세 명의 작가로 출발했다. 함께 여행도 다니고 작품을 공간 밖에서 팔기도 하고 전시도 했다. 그런데 작품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가족, 친구 등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왜 작품이 궁금하지 않은 걸까? 전시장까지 오는 것이 그렇게 낯선가? 낯설지 않게 하는 활동부터 시작해 볼까?’
그렇게 2015년 고유번호증을 내고 지원사업의 문을 두드렸다. 광명에서 진행한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폐가구로 테이블을 만들고, 도자기 그릇과 만들어진 오브제를 활용해 야외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작품 이동, 보관, 정산까지, 눈물이 날 정도로 안 힘든 게 없었다. 그래도 어렵고 힘들었던 것을 보완해서 2017년 시즌 2를 만들었다. 참여자 이탈을 줄이고자 참가비 1만 원을 받고, 개근하면 참가비를 돌려주고 결석한 사람 것은 후원하겠다고 했더니, 개근한 사람들도 후원에 동참했다. 후원처도 큰 단체가 아니라 지역에서 소소하게 이웃과 함께하는 곳을 찾다가 철산4동에 있던 ‘넝쿨어린이작은도서관’을 소개받았다. 한국 교육시스템과 광명이라는 소도시에서 벗어나려고 해외 유학에서 길을 찾았던 분더캄머 대표 김진 작가는 자신이 자란 동네의 작은도서관을 만나고 “내가 배울 건 바로 옆에 있었구나” 생각했다. 공동육아를 했던 이웃들이 아이들이 자란 후에도 똘똘 뭉쳐 마을 생활을 만들어가고,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걸 함께하는 재밌는 만남
프로그램 운영에서 노력의 70%는 참여자 모집과 관리에 쏟아붓게 된다. 분더캄머는 그런 노력을 기획에 더 많이 할애하여 현장에 맞춰서 변화하고 탄탄하게 만드는 데 쓰고 싶었다. 커뮤니티가 형성된 넝쿨어린이작은도서관을 거점으로 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도서관 관장님은 “1년하고 끝이 아니라 계속 우리와 함께할 거라면 좋다”고 했다. 2018년 경기문화재단 생활문화플랫폼 지원사업에서 만난 민병은 컨설턴트(지혜로운 봄 대표)는 “지원사업은 잊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찾아 매일 함께 놀아보라”라고 조언했다.
매주 목요일 도서관에서 2~3시간씩 노는 것이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너 달이 지났을 때 한 분이 예쁜 뜨개 가방을 들고 오셨는데, 참여자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다 같이 뜨개를 배워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마을에서 할머니 두 분을 강사로 초대해서 뜨개 모임을 시작했다. 3년은 지원사업으로 이어갔고, 이후에도 2022년 11월 재건축 이주 통보가 오기 전까지 모임은 계속되었다. 분더캄머는 모임에서 월별로 관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많은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김진 대표는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뜨개 모임을 통해 작가로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뜨개 모임은 늘 새로운 발견의 현장이었다. 재개발 지역이라 ‘잘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새로웠다. 잘 만나서 영원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 ‘긍정적’인 것으로 느낄 수 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갈등과 고통 또한 없을 수 없다. 분더캄머는 삶의 이면을 인정하고, 잘 헤어지고, 헤어지고 나서 체화된 만남을 삶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과정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창작 작업에서 문화예술교육 기획으로 활동을 확장하던 시기에, “문화예술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고 함께 발견하는 것이며, 작가의 작업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있다”라는 글을 읽고 매우 흥분했다. 이때 영감을 받아 기획한 프로그램 ‘숲속 수다방’(2018)은 광명문화재단에서 지원받았다. 가르치지 않고, 작업 자체가 교육이 되게 한다는 건 너무 어려웠다. 작업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도서관 뜨개 모임을 몇 년간 하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방법을 찾았고, 사람들이 만나서 갈등하고, 실패하고,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지금은 “문화예술교육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낯선 사람이라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함께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 뜨개 모임 이후, 내부에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함께 신나게 놀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2022년 〈왁자지껄 흔한여행〉이 그렇게 진행되었는데, 쉽지 않았다. 노인의 말이 많고 느리면, 아이는 “지루해! 듣기 싫어!”하고 직언을 날린다. 또한, 도서관 참여자들과 달리 안양천 정자에서 나물을 받을 생각으로 참여한 사람 중 대다수는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이었다. 선 하나 긋는 것에도 조심스럽고, 어색해하고 어려워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2024년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 <버섯과 함께 춤을>에서는 버섯 모양 그림을 따라 그리는 선택지를 제공하며 활동의 문턱을 낮췄다.
분더캄머가 ‘전시장으로 오는 초심자의 접근성을 높이자’라는 첫 마음을 지키며, “실패 경험을 보완”(모든 단계의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은 김진 대표의 표현이다)하며 점점 더 개방된 예술 활동을 실천하는 대목이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편집자 주)이 떠오르는 ‘유니버설 문화예술교육-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을 구현하고 있다.
수평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보편적 예술 활동
음식을 매개로 했던 건, 작가들이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같이 음식을 나누면 마음이 금방 열리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관해서는 누구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고, 강아지, 고양이, 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내향인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 대화가 잘 연결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여러 회차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한 면만 계속 보일 때가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받아 가는 버섯에 매번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 미워지던 어느 날, 분더캄머 오세린 작가가 말했다. “그런데 그분이 매번 낯설어하는 친구를 데려와서 살뜰히 챙기는 거 봤어? 어쩌면 그분이 친해지면 진짜 내 사람처럼 챙겨주는 사람일 수도 있어. 납작하게 보지 말고 입체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혼자 하는 작업이었다면 얻을 수 없는 관점이었다. 결국 마지막 회차에 그분이 고맙다며 보내는 지긋한 눈빛을 맞이했다. 교육하러 갔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게 되었다. 갈등을 지혜롭거나 유쾌하게 대면하는 방법을 매번 배워가고 있다.
분더캄머는 참여자 모집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홍보를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장 모집의 즉흥성을 보완하기 위해 사전-진행-사후 기획과 관리에 무척 성실하다. 온라인 지역 카페나 지역 생활 앱 홍보, SNS 홍보, 참여자 문자 발송 등을 꾸준히 하는데, 특히 사진 작업하는 이재현 작가가 참여자가 잘 나온 사진을 보내주며 예쁘게 말을 거는 것이 특효약이다. 온라인을 보고 참여하는 사람이 30% 정도 되고, 지역 카페가 탄탄해서 참여자들이 종종 소중한 후기를 올려주면 입소문이 엄청나다. 젊은이들이 나물, 버섯, 좌판 등을 가지고 이동하는 걸 보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듯이 쫓아오는 분들도 있다. 걸어 다니는 광고다. 모든 일에는 치열한 기획이 있다.
야외 활동이기 때문에 날씨에 민감하므로, 여러 대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날씨가 안 좋으면 참여자가 줄어들기도 하는데, 내용상으로는 더 다정하고 농도 짙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원사업에서야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작가들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좋기는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1:1 수업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걸 충족할 수는 없으니 최대 1:3 전략으로 목표를 잡는다.
작가가 잘 아는 걸 가르치려 하기보다, 작가가 알아가고 싶은 걸 함께 알아갈 사람, 알려주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 유한한 시간이라도 같이 공유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가르치지 않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공동체’ 활동이 가능하다고 믿는 분더캄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걸 끊임없이 보완해 가며 해내는 실행들이 ‘실체’(사람)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정함이 서로를 구원한다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좋고, 안 되면 안 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안 된 채로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유쾌한 작가그룹 분더캄머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다정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지원사업을 하면서 다정한 직원을 만나면 힘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다. 어차피 힘든 인생이고, 힘든 문화예술계에서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 다정하게 대하면 많은 것이 아름다워진다.
분더캄머는 사람들이 즐겁게, 재미있게 만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그룹다운 소망이다. 문화예술교육이든, 창작 작업이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시작했고, 앞으로도 사람과 관계를 맺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 사랑 넘치는 작가들의 활동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일확천금의 꿈!? 버섯과 함께 춤을!
[출처] wunderkammer 2012
[출처] wunderkammer 2012

- 강주희
- 문화예술기획자. 중앙, 광역, 기초 단위 문화예술기관에서 문화행정과 기획 일을 했고, 문화정책사업 연구에도 종종 참여했다. 문화예술교육은 2004년에 전국 지원사업 담당자로 인연을 맺었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예술가, 기획자와 일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루하루는 게으르지만 5년 뒤, 10년 뒤를 상상하며 기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jooheejoohee.k@gmail.com - 사진제공_분더캄머 인스타그램 @wunderkammer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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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글귀가 마음에 남네요~!! 문화 예술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다정함을 잃지 않고 온기를 나누길 소망합니다. ^^
색상이 다양한 실로 하는 뜨개질, 각종 야채들을 모아 나누기, 버섯으로 다채로운 그림 그리기 등등 삶 가까이에서 놀면서 무언가를 깨우치는 활동들이 참 인상적입니다
재밌게 놀다 보니 서로를 배우는, 진귀한 광경
‘분더캄머’가 추구하는 보편적 예술 활동
잘 보고 갑니다
재밌게 놀다 보니 서로를 배우는, 진귀한 광경
‘분더캄머’가 추구하는 보편적 예술 활동
기대만점입니다
분터캄머 팬클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