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모차르트에 관한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난 후, 마치 모차르트의 전기를 다 읽은 양 그의 인생과 음악에 대해 꽤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시의 생활상, 연주 모습을 재현한 장면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주요 작품들은 마치 내가 모차르트의 삶을 직접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마저 안겨주었다. 게다가, ‘천재’ 모차르트가 주도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를 따라잡지 못하는 절망에 고통받았던 살리에리라는 작곡가를 보면서 보통사람들이 겪는 삶의 좌절에 대해 무척이나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받은 그 감동과 감흥을 바로 산산조각 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살리에리가 가공의 캐릭터였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고, 결국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또한 살리에리에 의해서 창출되기에, 영화 속 그의 존재감은 매우 크다. 살리에리는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있고 건강이 좋지 않은 모차르트에게, 다른 이로 가장하여 큰 계약금을 건네어 〈레퀴엠〉을 작곡하도록 했고, 독약을 먹게도 했고, 그의 숨통을 조이는 상황을 만들어 그 작품을 쓰다가 죽게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관이 마차에 실려 가는 장면에서 흐르는 〈레퀴엠〉 중의 ‘라크리모사’는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을 일컫는 ‘레퀴엠’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신 스스로의 장례 음악을 쓴 모차르트의 삶에 알 수 없는 연민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허구화된 사실이라니. 차라리 완전히 허구였다면 배신감이 덜했을까?

 

살리에리라는 작곡가는 실존했던 인물이었다. 세대로 보자면 모차르트보다는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고, 모차르트보다 일찍 태어나, 그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였다. 하지만 그가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그가 진짜로 라이벌의식 때문에 모차르트를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차르트가 죽은 지 수십 년 후에, 그가 살리에리에 의해서 독살되었다는 루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 작곡가로 유명했던 살리에리에 관해 이런 악의적 루머를 퍼뜨려 이탈리아 대 독일(혹은 오스트리아) 음악의 대립각을 세우려 했던 19세기 독일 음악가들 때문이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모차르트 생전에 두 사람이 오스트리아에서 주요 음악가 자리를 놓고 라이벌 관계에 놓인 적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호의적이었고, 함께 작곡을 하기도 했으며,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죽은 후 그의 아들과 제자들을 훌륭하게 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의 이야기는 하나의 ‘설’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인데, 결론적으로는 사실보다 훨씬 매력적인 허구로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사실처럼 다가온다.

 

허구화된 사실을 진짜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이 스토리의 힘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지닌 극적인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모차르트의 죽음을 그의 〈레퀴엠〉 작곡과 연관시킨 대목도 그렇지만, 오페라 〈돈 지오반니〉에서 석상(Commendatore)의 등장 장면을 모차르트의 방탕한 삶에 대한 죽은 아버지의 경고로 오버랩 시키는 시나리오 작가의 해석이 너무나 그럴 듯해서, 보는 이들은 이 이야기가 음악사에 정통한 사람이 풀어놓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허구화된 사실을 사실로 믿게 하는 데에는 고증에 바탕을 둔,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시각화가 중요해 보인다. 음악 교과서나 음악사 책에서만 들었던 ‘모차르트’라는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는지가 시각화됨으로써 막연히 상상했던 모습은 하나의 사실처럼 여겨지게 된다. 당구대에서 당구공을 굴려가면서 머릿속에 담겨 있는 소리를 그대로 악보로 옮겨내는 장면, 거꾸로 누워서도 하프시코드를 능숙하게 연주하던 장면,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보는 협주곡 연주 모습과는 다르게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까지 하는 모습 등, ‘천재’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가 왜 천재인지에 대해 명확한 근거가 없었던 대중들에게 이 영화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준다. 사실이건 허구건, 그냥 재미있게 보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음악가에 대한 전기로 이해되거나, 혹은 음악(사) 교육에서의 자료로 사용된다고 하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의 문제는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역사소설, 사극 드라마나 영화 속에도 늘 잠재해 있다. 역사에 바탕을 둔 창작물에서 사실과 허구 사이의 간극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글 | 이미배 서양음악사학자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전공, 동 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시립대(CUNY-Graduate Center)에서 슈만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바흐의 영향에 관한 논문으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BS 클래식 FM에서 작가로 일했으며, 슈만 음악에 관한 논문들이 주요 음악학 학술지에 출판되었다. 저서로는 <천재들의 음악노트> (공저), <음악이 그림을 만난 날>이 있다. 현재, 서울대, 이화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