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로서의 미술을 말하는 미술교육학자, 그레엄 설리번

연구로서의 미술을 말하는 미술교육학자, 그레엄 설리번

문_백경미(홍익대학교 강사) / 정리_송보림(본지 미국통신원)

지난 6월 9일,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살아있는 현대미술 교육: 학생들의 삶을 끌어안는 미술교육 방법론>의 강연을 위해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 미술 ? 미술교육학과(art and art education program)의 그레엄 설리번(Graeme Sullivan) 교수가 서울을 찾았다. 강연에 앞서 설리번 교수와, 홍익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백경미 선생이 만나, 설리번 교수의 최근 저서와 그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한국 방문이 제게는 두 번째인데, 이 곳에 방문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은 교수님께서 최근 출간하신 저서 <연구로서의 미술: 시각미술에서의 탐구Art Practice as Research: Inquiry in the Visual Arts>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그 내용들이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의의가 있을지 살펴보면서 말입니다. 먼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게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들은 흔히 미술교육이 미술에 재능을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것, 손재주를 기본으로 하는 실기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학습활동으로 보지 않지요. 하지만 사실상 미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의 매우 많은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상상력을 펼치는 활동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미술교육이 사실은 심층적인 지적활동이며 상상력을 토대로 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연구의 목적은 굉장히 구체적이었습니다. 보통 연구하면 과학적인 연구를 생각하죠. 그러나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전통적인 연구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방법과 영역의 연구가 가능합니다. 상자 밖에 있는 것을 생각하라(think outside the box)! 즉, 새로운 이해와 지식은 현재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을 연구해 보고, 다시 현재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중심 논지는 미술가들의 작업실과 학교의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미술활동들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생성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책을 쓰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과연 미술가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활동이 어떤 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창조하고 있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되신 동기와 그 개념적인 토대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경험과 관심을 어떻게 책 속에 풀어놓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책을 쓰는 것은 미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무의 상태이지만 수년간에 걸쳐 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답을 얻어내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지요. 저의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면, 제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일들을 어떻게 연결시키는가가 가장 큰 과제였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과제가 이 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십년 전만 해도 제게는 교사로서, 미술가로서, 연구가로서, 글 쓰는 이로서의 역할들을 한데 묶어 생각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 역할들이 분리되어 다가왔기 때문이죠.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점점 바뀌었고,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함께 묶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가 저의 여러 역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요약하여 글로 적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여러 가지 일은 사실 매우 복잡한 것인데, 저는 이 책을 통해서 그것들을 연결시켜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책의 교육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미술교육 현장에 응용했을 때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우리 각자는 사회 안의 특정한 체제와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하고 기능합니다. 교육이란 결국 내가 누구이고 이 문화 안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미술은 사람들의 특정한 관심들을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 그런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미술교육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면 미술교육을 지식의 체계에 연결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그 체계는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예를 들어 제가 지금 한국을 방문하고, 여름 동안에 일본에서 수업을 하게 된 것처럼 미술교육이란 특정한 문화를 교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미술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수와 학습을 학술적인 탐구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 <연구로서의 미술>도 그렇고요.

모든 미술이 다 연구인 것은 아니지만 저는 체계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하는 미술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를 학술적 연구의 형태로 바라본 것입니다. 즉, 미술실을 중심으로 하는 지적 연구인거죠. 이러한 연구는 지식을 창조하고 질문에 답하고 비평하는 과정을 동반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술의 연구는 전통적인 방법의 학술적 연구와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미술연구가 연구로서의 체계를 갖추기에는 미흡하고, 어떤 부분은 비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지그소(jigsaw) 퍼즐처럼 말입니다.>

저는 호주출신이라 호주의 문화에 익숙한데, 제가 어릴 때는 호주 원주민의 문화는 원시문화라고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역사가 그렇게 서술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갖고 원주민 문화를 계속 연구했고 지금은 그것의 예술적, 문화적 부분이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 이것이 ‘연구로서의 미술’이라는 개념의 주요 내용입니다. 이는 창조하고 비평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죠. 무언가를 비평하고 질문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바라보게 되는 방법입니다. 가령, 초등학교 학생들도 질문을 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어떤 반응이 뒤따르고 이러한 과정은 상상력이 바탕이 되는 창의적인 활동입니다. 제 생각은 어린 학생들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며, 교육자들은 질문에 따르는 그들의 반응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2년 펴낸 <미술교육의 현대적인 이슈 (Contemporary Issues in Art Education)>라는 책의 생각과 가르치기: 현대미술에서 의미 만들기 (Ideas and Teaching: Making Meaning from Contemporary Art)라는 글에서 주장하신 주제와 내용도 현장의 초등학교 미술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현대미술작품들은 난해하기 때문에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아요. 호기심이 많고 열려있는 마음으로 미술작품을 바라보기 때문이죠. 현대미술을 통해 학생들은 비평하고 창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또한 우리 사회의 다양성 및 다문화 교육에 좋은 재료입니다. 현대미술은 동서양의 문화, 즉 여러 나라의 문화가 교차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미술은 학생들로 하여금 여러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좋은 교육적 도구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작품 감상방법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학생들에게 미술작품을 바라볼 때 일단 무엇이 있는지 보자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습니다. 미술관 교육자들은 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두기도 하죠. 하지만 또한 무엇이 없는지 생각해 보자고 학생들에게 권유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빠져 있고 어떤 것을 더해 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거죠. 이런 방법은 관찰자에게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현대미술을 활용하는 교육을 하려면,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의 미술교육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지난 몇 십년간 기술적인 훈련이나 개인적인 표현에 치중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이것이 한국 미술교육의 불안정한 위치를 유발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들리고요.

사실 그것은 미술교육의 일반적인 문제입니다.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기도 하죠. 서양의 미술교육에서도 전통적으로 기법을 중요시하고 테크닉 훈련을 강조했지요. 일단 기법을 익혀야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법연마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법뿐만 아니라 그 밑에 깔린 개념적인 문맥이 더 중요하죠. 미술영역에 포함되는 지식, 쟁점, 정보 등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술활동을 통해 현존하는 여러 가지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고요.

이런 맥락에서 기법을 익히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법을 익히고 사용하는 자의 의지와 관심이 중요하죠. 단지 도구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의지를 담아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판화, 도자기 등 미술영역에서 다양한 기법들을 시도해 보는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기존의 교육 방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들을 자신의 교수법에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현대미술과 그 이슈들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학습모형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합니다. 이런 교사들에게 제안을 해주신다면?

이것은 초중등 학교 교사들뿐 아니라 대학 교수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현대적인 이슈들을 교육적 측면에서 접촉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술 지팡이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죠. 각자가 몸담고 있는 교육기관의 환경 안에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번 교사 워크숍에서 미술-문화 지도(art-culture map)를 그려볼 생각입니다. 이는 교사들이 맡고 있는 역할들과 그 사이사이의 관계를 도표를 그려봄으로써, 그 역할과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 지도를 그리고 나면 각자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가가 쉽게 보입니다. 저도 제가 맡은 다양한 역할에 대한 지도를 그려봅니다. 뉴욕지하철처럼 복잡한 지도가 되죠.

한 교실에 3-40 명씩 앉아서 수업을 받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는 교사 개개인이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 많은 교사들이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또, 모든 것이 효율성과 평가로 직결되는 교육 현실 속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도 교사들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우선 교육표준의 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보수적인 환경이더라도 좀 더 현실적인 커리큘럼을 세워보는 것이지요. 거기에 현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슈들을 포함시킵니다. 이 교육표준의 담론에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도 포함해야 할 테고요.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반대로 학생들에게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이야기해요. 긍정적으로 학생들을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교사 개인 차원의 문제해결의 어려움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가 진행했던 미술 워크숍을 예로 들어보죠. 어느 학교에 가든지 제일 먼저, 제가 진행하는 워크숍이 간단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워크숍이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리고 몇 주에 걸친 워크숍 시리즈를 소개하고,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이 워크숍에 참여해야 한다고 알립니다.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재인식시키는 것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단순히 미술기법이나 방법을 하나 더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의 시스템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미술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교사들이 사실은 미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등 교사들은 질문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미술에 대해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질문이든지 다 좋은 질문으로 작용하죠.

대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인터뷰는 웹진에 실릴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기사가 실린 후에 독자들이 또 다른 대화를 시작할 것입니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의 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50명의 학생들과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일단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고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도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또한 이런 동료들을 곁에서 지원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시도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할 때 제가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 합니다. 그 하나하나를 따로 분리시켜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교사들에게도 이런 방법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잘 하고 익숙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찾아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장롱 속에 지니고 있던 것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라고 할까요.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가르침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미술에서는 가짜가 있을 수 없죠.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매우 영리해서 진실성이 없는 가르침은 금방 알아봅니다. 처음 온 선생님의 특성을 잡아내 10분 안에 별명을 지어내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개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싶으신 바가 있는지요.

간단하게 두 가지를 말해 보자면, 우선 교사들은 교육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교육현장 안에서, 그 환경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환경 속을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넓은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바깥의 이론들도 섭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교수님의 이론을 접하면서 흥미를 느끼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리번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야기들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20년 넘는 교사로서 삶의 그 안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술교사로서, 연구가로서, 미술작가로서의 삶을 함께 연결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이론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체험이 바탕이 된 연구 성과이다. 이 인터뷰를 통해 설리번 교수의 이론과 현장교육의 연결성을 짚어본 것은 우리에게도 큰 수확이라 여겨진다.

백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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