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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에 맞서, 더 넓고 깊은 교류의 시작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 리뷰

2020년 9월 14일 온라인 개막식을 시작으로 나흘간 개최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The 5th 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 이하 ITAC5)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예술은 어떻게 세상의 눈을 바꾸어 가는가: 예술가와 예술교육가의 사회 속 실천과 도전(Boundaries into New Pathways: Enacting the power of arts and arts education)’을 주제로 프레젠테이션 및 토론, 참여형 워크숍,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 총 57개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세션이 진행되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컨퍼런스로 전면 전환되어 추진됨에 따라 기존에 200여 명 규모로 주로 서구권 참여자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ITAC이 금번에는 총 44개국, 1,800여

오로지 내 취향대로, 내 마음대로

춘천문화재단 커뮤니티 심리방역 프로젝트 ‘도시가 살롱’

“춘천 답답하지 않아? 어딜 가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불편할 것 같아.”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지역에서만 살고 있기에 듣는 질문이다. 실제로 걷다 보면 지인을 마주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아침에 집에서 봤던 가족을 낮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건널목에 서 있으면 신호대기 중이던 차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주는 풍경도 일상. 다정하게 바라보며 따스운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내게 춘천은 아주 잘 만들어진 세트장 같은 느낌이다. 화양연화 녹색시간 내 기억 속 라떼는 말이야 9년 전 문화예술판에 처음

변화를 창조하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 주요 발표 소개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The 5th 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 ITAC5, 아이택5)가 9월 14일부터 나흘간 디지털 컨퍼런스로 세계 예술교육자들과 교류와 논의의 장을 펼친다. 전 세계 참가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개막식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매일 세부 주제 중 하나에 집중하여 발제자 발표 및 토론, 라이브 워크숍,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세션이 펼쳐진다. 첫째 날인 9월 15일(화)의 주제 ‘언러닝으로 이끄는 예술, 예술교육가의 언러닝’(Unlearning)를 시작으로 16일(수) ‘고유성과 보편성’(Local and Nomadic Practices), 17일(목) ‘포용, 화해 그리고 공존’(Peace and Reconciliation)에 대하여 논의한다. 19개국 64명의 발제자가 참여하는

배움에 약자가 없는 마을을 만드는 꿈

지리산씨협동조합 ‘지리산 마을학교’

코로나, 다른 방식으로 사부작거리기 ‘계획’이 무의미해져 버리곤 하는 재난의 시대를 사는 우리, 슬프지만 이미 ‘취소’ ‘연기’ ‘중단’ 등의 언어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동네 지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함양지역 한 마을학교도 일정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드디어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아이들과 딱 한 번 만나고는 학교 측 요청으로 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조건인 구례도 당연히 분위기가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지리산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지리산씨협동조합(이하 ‘지리산씨’) 임현수 대표에게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여기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못하니 (마을학교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라는 분위기예요.” 역시 중요한 것은

포용, 화해, 공존을 위한,
현실을 대면하는 힘을 찾아서

ITAC5 사전프로젝트 <추후공지: 지연된 현실>

2020년의 ‘뉴노멀(New Normal)’은 동의와 예견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전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괴이쩍은 새 일상에 적응했다 싶은 순간, 일상의 안도와 방심을 등에 업고, 이 질병은 우리 사이의 가장 느슨하고 취약한 곳을 파고 찌른다. 그 술래잡기에서 지친 사람들은 일상의 결핍을 위로받고 싶어 하고, 멈춤과 격리의 시간에도 창의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예술가들 역시 현실을 마주하는 법을 자습(自習) 중이나, 무용이나 연극 같은 공연예술의 타격감은 더욱 깊다. 멈춤과 재개, 지연과 취소, 예정과 추후 통지, 통보와 권고사항이라는 롤러코스터를 매일 탄다. 무력감과 언러닝 사이, 연대와

공생공락을 위한 담대한 상상과 실천

작지만 큰 공존을 위한 성찰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 1949~2020)의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1989)을 다시 읽는다. 적도 부근 아마존 땅, 엘 이딜리오에 사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가 치과의사인 루비쿤도 로아차민이 건네주는 연애 소설을 자신의 오두막에서 고독을 즐기며 읽는다는 기본 플롯의 소설이다. 글을 쓸 줄은 모르지만, 읽을 줄 아는 노인이 연애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저작(詛嚼)하듯 즐기며 읽는 모습이 재미있다. 예를 들어 노인은 “그런데 키스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뜨겁게’ 할 수 있지?”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두 남녀가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격리와 봉쇄를 넘어
회복을 위한 예술적 접근

코로나19 이후, 예술가와 동행하는 예술지원

올해 2월 8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일본 요코하마 공연예술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공연예술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아무도 지금의 상황이 도래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모두 앞으로 한 십 년쯤은 바쁘게 지낼 만큼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계획을 세우며, 10월에는 서울아트마켓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탈리아의 기획자와는 당장 한국의 섬과 이탈리아 북서부의 카프라이아(Capraia) 섬을 잇는 예술가 레지던시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나는 남도의 섬 방문 하루 전 기차표를 취소해야 했고, 이탈리아 친구는 가족 모두의 안전을 위해 카프라이아 섬으로

떨어져서 함께, 응원하고 연결하기

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문화예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코로나19 발병이 공식 보고된 작년 12월 31일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일상의 풍경은 무척 달라졌다.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로의 급변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악수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행위가 되었고, 마스크를 쓰고 식당에서 벽을 보고 혼자 식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학교는 개학이 연기되면서 온라인 수업이 시행되었고,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회사가 늘어났다. 대중이 함께하는 문화예술 분야는 공연과 전시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무관중 공연 중계나 온라인 콘서트 등으로 제한 되고 있다. 이렇듯

전통과 혁신, 예술과 교육은 대립하지 않는다

션 그레고리 / 영국 바비칸-길드홀연극음악대학 학습·참여부 총괄디렉터

예술센터와 예술학교의 성공적인 연대는 이상적인 아이디어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예술현장에 기반한 전문성 높은 예술교육이 가능하고, 예술센터는 학교의 교육모델과 커리큘럼을 이용해 보다 폭넓은 대상에게 문화예술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술을 향하는 교육, 교육을 품은 마을

경기 세월초등학교 통합문화예술교육

아침부터 서둘러 세찬 소나기를 뚫고 여기저기 도로공사 구간과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물 맑은 경기도 양평에 어렵게 도착했다. 아담한 세월초등학교에 들어서자 다행히 비는 멎었고, 막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와 발걸음으로 활기참이 느껴졌다. 교정 곳곳에는 고사리 손으로 직접 가꿔 제법 영근 고추, 가지, 오이로 빼곡한 텃밭과 해마다 벽면을 다양하게 채워나가는 타일아트, 시계탑을 채색한 벽화, 반짝이는 은박지 옷을 입은 석고상, ‘짜증’, ‘답답함’ 등 아이들이 밟고 싶은 단어들로 채워진 계단 등 아이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영화로 만나는 예술의 힘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개인의 예술인가, 혹은 공적 사안인가? 영화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참으로 고색창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한때 이러한 질문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 혹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치열하게 영화를 보고 만들고 논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제는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예술로서의 영화, 혹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영화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