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장마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환한 햇살,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속에서, ‘코로나19’라는 가혹한 시절을 보낸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팬데믹 전과 후의 변화가 상당했다. 알다시피 팬데믹(Pandemic)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나눈 경보 등급 중 최고 단계인 6등급을 의미하는 말로써, 중세 유럽의 흑사병 창궐이나 1919년 ‘스페인 독감’, 그리고 1968년 ‘홍콩 독감’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1968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인생에서 처음 겪게 된 셈이다.
과거는 그렇다 치고 1968년부터 2019년까지 인류의 습성, 태도, 행동 양태 등 삶의 방식은 어떠했던가? 전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며 단단하고 세련되게 보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량과 소비량은 증대되어 왔고,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죽음의 이유 정도는 알 만큼 지식수준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 정도면 70%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는 미래학자, 도시학자들의 예측에 따라 나름대로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경험하지 못한 혼돈을 겪으면서 ‘당신은 행복한가요?’라고 물으면 무엇이라 답을 해야 할까? 역사서 속 인류의 모습을 보면 당대에 사는 노년층의 경우 과거를 추억하고, 장년층이 되면 미래를 준비하고, 청년층은 늘 속한 사회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긴다. 혹시 세상을 받아들이는 세대별 인식격차가 동력이 되어 인류는 ‘발전’이라고 생각되는 디딤돌 위에 계속 올라섰던 것일까?
예측 불가능한 시대의 질문
나는 더 늦기 전에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발목은 ‘직장’에 긴박 되어 있었고 ‘수도권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싶다’라는 욕구를 자꾸 지체시켰다. 그동안 고민하고 주장했던 일들은 ‘지역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과연 내가 지역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우리말샘을 찾아보니 지방(地方)은 ‘한 나라의 수도 이외의 지역’을 뜻하며, 지역(地域)은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적 혹은 위계적인 구분이 아닌, ‘어느 한 방면의 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서울이나 수도권을 포함하여 모든 곳이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내 생각은 다른 한편 내 무의식(혹은 의식하지 않으려는 의식) 속에 ‘중앙-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
나의 주민등록초본에는 통영-서울-성남-부천-원주로의 이주 역사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마침내 나는 ‘코로나19’의 시기에 발목을 잡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자발적 백수 생활’을 정확히 365일 지속했다. 그리고 366일이 되는 날, 나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아닌 지방, 경상남도 남동단에 있는 ‘지역’ 김해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시점에 출자·출연 기관 중의 하나인 문화재단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나의 이주 기록은 한 줄 더 추가되었다. 그리고 지방이자 지역에서의 삶은 여러모로 서울 및 수도권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지역에 대한 이론적 이해에서 경험적 이해로 인식의 폭을 넓힐 기회를 얻었다.
법으로 해결할 것
우리나라는 1987년 「지방자치법」이 부활했고 1991년부터 지방선거가 치러졌으니, 2021년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30년 되는 해이다. 그동안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지적을 받았던 「지방자치법」이 전부개정되어 내년 1월 13일 시행될 예정이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방자치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이 마련됨으로써 정부의 ‘자치분권 2.0’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본다. 이와 더불어 2020년 1월 9일 제1차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 이양을 위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46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지방일괄이양법)이 통과, 2021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고, 현재 제2차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을 앞두고 있다. 중앙정부가 불필요하게, 또는 지방정부를 통제하기 위해 쥐고 있던 권한을 일정 부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법안인데, 일일이 법률 개정을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고 절차와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기 때문에 관련 법률의 개정 내용을 하나의 법률에 모아 일괄 개정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국정과제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라는 미션 아래, 자치분권과 균형 발전을 위해 국민주권 구현, 중앙권한의 획기적 지방 이양, 재정 분권의 강력한 추진, 중앙-지방자치단체 간 협력 강화, 자치단체 자율성·책임성 확대, 지방행정 체제 개편이라는 전략을 수행하겠다고 한 만큼, 실질적인 지역분권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기대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방일괄이양법」의 1단계 시행은 2019년부터 2020년에 있었다. 지방소비세율을 11%에서 21%로 확대, 중앙정부 기능의 이양과 소방안전교부세율을 확대, 국세와 지방세 비율 74 대 26 수준으로 개선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방이 자체적으로 징수하는 세입이나, 그중에 1/3은 탄력세율의 적용이 불가하며, 나머지도 대부분 적용요건이 정해져 있는 등 지방세의 한계가 여전히 있다.
지역이, 주민이 해야 할 일
지역과 관련된 법과 제도의 마련과 실행은, 적어도 내 인식 수준에서 판단하자면, 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법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법은 필요하다. 법을 믿는다. 법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법은 모두가 존중해 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존중하지 않은 법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법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법을 실천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라는 노암 촘스키의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거의 일치한다는 기분이다. 그래서 ‘지역에 사는 우리’가 방관자의 입장에 머무르고, 국가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복종만 하면서 ‘조작된 동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다시 말해 우리의 삶과 문화에 관련된 정책 결정에서 ‘구경꾼’으로 머문다면, 과연 우리는 지역의 주체이며, 지역분권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자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신은 행복한가요?’ 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려면 주체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지역이, 지역주민이, 중앙에 대해, 배타적인 지식인에 대해, 구경꾼이 아닌 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험의 재구성과 재진술이 필요하다. 변하는 것이 있고, 기대한 새로운 것이 발생할 때 경험의 유의미를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경험의 정도는 집단 정체성을 특징지을 것이다.
김해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만난 전시가 생각난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보이지 않는 조각’ 시리즈를 전시한 뉴미디어 아티스트 송예슬 작가는 전시 이유를 “감각의 확장에서 나아가 생물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만들어진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기념”하는 데 있다고 했다. 작가는 당연시 여겼던 예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저마다 다르게 경험하고 인지한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이 전시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내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의 패턴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모든 것을 문화예술교육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삶, 나의 주체성을 위해서!
- 손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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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dodo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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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의 불분명한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곤 하는데, 현재부터 행복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