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세계적인 유행은 학교의 풍경도 바꿔 놓았다. 예전에 지구 환경오염으로 인해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며, 학교 운동장에서 방독면을 쓰고 축구를 하는 풍경을 그린 적 있었다. 그런데 방독면이 마스크로 대체되었을 뿐 암울한 미래가 너무 일찍 우리 곁으로 온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쉼 없이 달려오던 길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나쁜 시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긍정적인 변화의 원동력
언젠가 미술 교사들이 참여하는 학회에 참석한 적 있는데 ‘통합 교육’, ‘융합 교육’이 큰 주제였다. 발제자 중 한 명은 미술과 역사 교과를 융합 교육으로 풀어가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 입시에 관심이 높으니 미술을 잘하면 대학도 잘 갈 수 있다는 논리로 미술의 위상(?)을 높이자고 주장했다. 나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미술 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학교가 얼마나 대학 입시의 도구로 전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일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교육의 목표는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 주변과 더 잘 소통할 수 있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도 확인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밑바탕에 흐르는 마음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그 움직임의 원동력은 감동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크고 작은 감동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감동일 수도 있고 예술적인 경험의 감동일 수도 있다. 교육의 목표가 긍정적인 변화라 한다면 감동이야말로 가장 큰 원동력이라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그 어느 것보다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감동을 선사한다는 경험을 갖고 있다.
교정에 핀 작은 꽃에 푯말을 달아주면 학생들도 관심을 갖는다.
함께 가꾼 자연을 닮은 학교
시골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도심의 학교로 오니 학생들의 일과가 참 팍팍해 보였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흑백 사진반’ ‘야생화 관찰반’ 같은 동아리를 핑계 삼았지만, 학생들에게 자연을 만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자연을 닮은 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신설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며 함께 만들어진 학교였다. 신입생을 맞이하는 첫날,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진행하는 동안 문제가 발생했다. 몇몇 신입생이 운동장에 빠져 운동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급하게 개교하면서 운동장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수렁이 생긴 탓이었다.

결국 학교 기사님이 흙 속에서 운동화를 캐서(?) 현관 앞에 늘어놓았는데 그 장면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는 시간을 뺀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 그렇다면 어렵게 학교 밖 자연을 만나게 할 것이 아니라 자연을 닮은 곳으로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틈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우리 들꽃들을 학교에 옮겨 심으며 학교를 바꿔나갔다. 이후 학교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화단을 가꾸고 연못을 만들었다.
  • 학교 공간은 학교 구성원이 힘을 모아 함께 가꾸어 가야 한다.
  • 학교는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연못에서 배우는 순환과 회복의 원리
20년 넘게 학교에서 화단과 연못을 만들고 가꾸다 보니 연못 전문가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지만 가당치 않은 일이다. 단지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관심과 정성을 쏟는 과정일 뿐이었다. 학교에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소규모 연못은 강제로 물을 순환시켜 유지 관리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기계적 결함이나 기타 문제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못 바닥에 흙을 충분히 깔고 수생식물을 심으면 강제로 물을 순환시키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다. 물속에 자라는 식물들이 스스로 자라면서 물을 정화해 주기 때문이다. 연못을 만들면 생기는 모기 발생 문제도 송사리를 함께 키우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태 연못도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한다. 물이 부족하면 보충해 주고 지나치게 번성하는 식물은 솎아 줘야 한다. 이런 점을 관리자(교장, 교감 혹은 학교 행정 담당자)는 싫어한다. 이 점이 바로 많은 교육 관리자와 내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학생은 모든 게 갖춰진 공간에서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이런 시스템에서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주체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학교 공간은 학교 구성원이 힘을 모아 함께 가꾸어 가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해결해가며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뺀 상태로 2년간 방치되었던 연못(왼쪽, 2012)에 흙을 깔고 다양한 식물을 심자 되살아났다.(2018)
위기에 대처할 건강한 힘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당황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예상 못 했던 또 다른 형태의 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 것일까? 행복한 경험을 했던 사람은 위기를 이겨내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제 학교는 예술적인 경험이든 자연을 만나는 경험이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이라면 이후 닥칠 어떤 어려움에도 잘 이겨낼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 나는 학교에 있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이 그런 경험을 하길 바랐다. 학교 안에서라도 놀라운 자연의 변화를 만나는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교육은 결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으니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를 일이다.
학교를 나온 지 1년이 넘어간다. 얼마 전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예전 학생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 심은 과일나무에서 달콤한 과일을 따 먹는 기분이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위안을 주는 고마운 문자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문자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임종길
임종길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학교를 생태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일을 해왔다. 『두꺼비 논 이야기』 『열두 달 자연과 만나요』 『15분』 『선생님, 토끼가 되어주세요』 같은 생태 환경 관련 책과 생태 포스터(연못, 갯벌, 논 등)를 제작했다. 지금은 학교를 나와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 중이다.
road63@hanmail.net
사진 _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