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20여 년 교육을 해왔지만 미술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미술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급속한 변화 속에 있고 끊임없는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의 자율성이나 예술교육의 특수성을 내세우는 방어논리가 무색할 만큼 사회 구조가 바뀌고 미술의 역할 자체가 변하는 상황에서 미술교육의 미래에 대한 진단은 자칫 공허한 당위론에 그치기 쉽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 미술교육의 내일을 생각해본다.
1995년에 필자는 작가 박이소와 한국의 미술교육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각각 독일과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던 우리는 그 무렵 한국 미술 전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의기투합하는 면이 많았다. 당시 이야기를 요약하면 대략 이런 내용이 된다.
미술에는 세 가지 중심적 요소가 있다. 대상을 보는 눈과, 본 것을 사유하는 머리, 그리고 머리가 생각한 것을 형태로 만드는 손이 그것이다. 눈은 감각과 관련되고, 머리는 생각과 관련되고, 손은 재료를 다루는 노동, 기술과 관련된다. 좋은 미술가란 이 세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눈과 손의 기량에 치중함으로써 사유의 측면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다. 미술대학 교과과정에 미술사와 미학개론 수업들이 있고 예술가의 정신과 인격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실기수업에서 거론되지만, 정작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대개 감각과 직관에 의존했고, 작품에 대한 체계적 분석과 토론은 대학 교육에서 빠져있었다. 작품에 대한 논리적 해석은 미술가가 아닌 비평가나 미술사가가 할 일이고, 미술가가 이론에 의존하는 것은 창작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경계한 것이 당시 미술대학의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그 배경에는 말과 글에 대한 미술가들의 근본적인 거부감, 혹은 불신이 있었다. 어떤 미술작품을 말이나 글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지 굳이 미술로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고, 붓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평론가들이 작품에 대해 작가보다도 더 잘 아는 것처럼 글을 쓴다며 냉소했다. 좋은 작품은 말이 필요 없고, 말이 많은 작가는 좋은 작가가 아니라는 얘기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말이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침묵 속에서 재료와 직접 부딪치고 내밀하게 교감하고 대화하는 것이 진정한 미술가가 할 일이라는 가르침을 우리 세대는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
물론 미술에 대한 이런 관점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것은 미술을 미술 외적인 모든 요소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영역으로 구축하려 했던 모더니즘 전통의 일부로서 그 나름의 근거와 의미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술 인식은 결과적으로 우리 미술교육이 감각과 기술교육에 치우치고, 지적 사유를 부차적인 것으로 배제하는 불균형을 가져왔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구호 아래 여러 세대에 걸쳐 하나의 이상을 경쟁적으로 추구했던 집단적 미술운동이 6,70년대 서구에서 역사적 종말을 고한 이후, 개별 미술가에게 “무엇을, 왜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각자가 원점에서 자신의 미술을 정의하고 자신의 질문을 스스로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미술가는 이를 위한 지적인 사유를 어느 때보다도 더 요구받게 되었다. 지배적인 담론이 사라짐으로써 ‘모든 것이 가능한’ 이른바 다원주의의 시대가 왔다고 했지만, 이 포스트모던의 다원성은 다른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구축해야만 하는, ‘부정의 논리에 의해 엄격하게 조직된(보리스 그로이스)’ 다원성이었다. 논쟁적이지 않은 미술, 기존 미술의 관행과 규범에 비판적이지 않은 미술은 이러한 동시대 미술 담론에 진입할 기회를 잃었다. 미술 패러다임의 이 근본적 전환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찾는 것은 이제 미술대학의 존립 자체를 좌우하는 당면 과제가 되었다.
1995년은 한국 현대미술의 근본적 전환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만하다.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생기고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면서 미술의 국제교류가 크게 늘고, 글로벌한 미술의 맥락을 이해하고 한국미술의 관행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미술가 세대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무대가 되는 대안공간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미술관과 갤러리 중심의 보수적인 미술제도 외곽에서 확산되었다. 미술 담론의 주도권이 기성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고, 미술의 지형이 뒤집히는 데는 이로부터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변화에 가장 소극적이던 미술교육도 변화의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미술교육의 대안’을 표방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설립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그간의 미술교육에 대한 생각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얻었다. 입시제도와 교육과정 전반의 개혁을 시도한 미술원 교육에서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결국 언어가 미술교육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관념어가 아니라 구체적 일상의 언어로 자신의 의도와 작업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과 크리틱, 토론이 필수적 과정으로 모든 학생에게 요구되었다. 근래에 많은 대학이 크리틱을 수업에 도입하고 있는데,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미술원이 많은 신진작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토론중심 교육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기술이 유튜브와 구글로 전수되는 지금, 미술대학은 기술 교육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이미지를 다루는 기술은 교과과정보다 빠르게 변하므로, 아무리 최신 기술을 가르쳐도 학생이 졸업할 때쯤에는 낡은 기술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미술대학 존립의 이유는 나날이 변하는 기술이나 트렌드의 전수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미술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미술을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고 사유하는 정신적 노동이자 생존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미술가에게 변함없이 요구되는 행위는 ‘생각’이고, 미술대학은 미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미술을 넘어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동시대를 넘어 역사를 조망하는 시야, 타인과의 차이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상대화하는 능력, 질문하고 의미를 찾고 가치를 선택하는 능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미술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으로 남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학생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미술교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안규철
안규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독일 슈투트가르트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로댕갤러리 등에서의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내외 기획전에 참가했다.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있고,『그 남자의 가방』(2004),『아홉마리 금붕어와 먼곳의 물』(2013) 등 저서와 『몸짓들』(2018), 『진실의 색』(2019) 등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