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꿈틀거리는 고유한 ‘터무늬’를 찾아서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좌담

웹진 [아르떼365]는 올해 초부터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문화예술교육의 공론장이자 담론을 만들어가는 역할과 변화를 모색했다. 8월 개편을 앞두고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을 아우르는 좌담을 진행하고자 충북 옥천을 방문했다. 지역 언론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옥천신문사, 옥천 로컬푸드직매장과 옥천 농산물을 주재료로 만든 브런치를 판매하는 카페 뜰팡, 2007년 안남면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시작한 배바우작은도서관, 옥천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운영하는 마을카페 둠벙 등을 방문하며 ‘지역’의 움직임을 탐색하고, 지역으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대의 문화예술교육과 웹진 [아르떼365]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좌담 개요
  • 일시: 2019년 6월 29일(토)
  • 장소: 카페 둠벙(충북 옥천군)
  • 참석자: 고영직(문학평론가), 정원철(추계예대 미술대 교수), 조은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보연(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고영직 : 최근 강조되고 있는 지역 자치와 자급에 제대로 부합하는 지역 중 하나가 옥천이 아닌가 한다. 주민 스스로 자치를 만들어가는 차원에서 옥천이 가진 자생성의 힘이 있다고 생각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옥천에서 몇 군데 둘러봤는데, 첫인상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정원철 : 경기도 양평에 25년째 살고 있다 보니, 둘러보면서 계속 양평과 비교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는 우리나라에서 지역문화가 활기차게 지속되려면 서울로부터의 거리가 정말 중요하다. 제 경험으로는 서울에서 차로 2시간 이내의 지역에서는 특색 있는 지역문화가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 옥천 분들의 노력이 정말 컸겠지만, 서울에서 2시간 거리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웃음)
최보연 : 서울에서만 살았고 유학할 때도 도시에서 주로 살았다. 지역의 작은 공간에 들어가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아까 배바우 도서관에 갔을 때 뒤편에 있는 툇마루에서 들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들었기 때문이다.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에서 자연스러움, 충만함 같은 것을 느꼈다. 왜 그럴까? 도시 사람인 나 역시 지역적인, 작은 것에 대한 느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옥천을 돌아보면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런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부분을 조금 더 배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정원철 :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얘기할 때 ‘지역’은 좀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방금 처마의 낙숫물 소리를 잊고 살았다는 말씀은 언젠가 겪은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겪고 나면 잊고 살다가도 언젠가는 툭 튀어나오게 된다. 그러니 잊고 살지언정 교육을 통해 여러 가지를 겪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교육에서의 지역, 지역성은 개념적인 접근보다 몸에 쌓여가는 경험 요소의 근거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분명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과 관심 갖는 것, 보고 듣는 것, 느낌도 다를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인식하면서 지역을 다뤄보자.
조은아 : 우리가 옥천에서 기후와 향토가 드러나는 지역성 같은 것을 발굴하고 싶었던 것이지 않나. 여기에 오니 작명부터 확 와 닿았다. 둥실둥실해서 둥실봉, 주암(舟岩)의 우리말 표현인 배바우, 뜰팡(집 안의 앞뒤나 좌우로 가까이 딸린 빈터), 둠벙(웅덩이) 등 명칭부터 멋스럽고 참신하니 유쾌한 충격을 받았다. 배바우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도 도시와는 달랐다. 민화를 그리고, 목공도 하고, 의자를 만들고, 모내기도 한다. 흙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고 풀을 만지는 아이들의 예술적 감수성과 도시에서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예술적 감성은 차원이 다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 터의 무늬를 찾아서
고영직 : ‘터무니없다’는 말이 있다. 어원을 따져보면 ‘터의 무늬’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모든 터(place)에는 고유의 무늬가 있다. 서울의 무늬, 옥천의 무늬, 지역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고 음색이 있다. 그런데 모두 서울 중심으로 통일돼 버리니까 우리 삶이 지리멸렬해지고 터무니없어지는 것이다. 근대 이후 삶터와 일터가 분리되고,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면서 지역이 지역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왜 지역성을 다시 강조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터의 무늬를 발견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을 누구의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차원도 중요하다.
정원철 : 문화예술교육에서의 지역성은 문화 다양성에 주목하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철저히 거기 살고 있는 거주자의 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사람과 땅이 어울리면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터무니는 바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살지 않다 보니 지역별로 차이나는 터무니가 없어진다는 말씀에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이 이리저리 이동하더라도 항상 그 터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지역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내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같이 살아가는지에 대한 경험적 인식을 공유하는 범위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 생태, 상황 등의 요소를 기반으로 문화예술교육자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프로그램 안에서 그것들을 언급할 때 내가 사는 곳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미 드러나 있는 무늬를 인식하는 것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 사람들과 어떤 무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기대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 같다.
최보연 : 정책연구자의 입장에서 지역을 중앙에 상대되는 말로만 고민해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과연 지역이 입체적이고 무늬와 결이 다르고 색깔과 냄새가 다르다는 상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반성이다. 정책적으로 지역에 대한 상상이 ‘지역 분권’, ‘균형 발전’ 같은 행정용어와 맞물려 획일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르게 상상해야 하는데, 이러한 상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느낌이다. 내가 사는 도시 안에서의 지역성을 충분히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데, 늘 중앙과 대척점에 있는 지역만 생각해온 것 같다. 지역 출신의 유명한 시인만 떠올리는,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상상 밖에 못하는 관성 말이다. 이렇게 계속 길들어 온 것에 대해 빨리 저항해야 한다. 문제는 지역에 내려가서 살펴보면 거기서도 또 다른 중앙과 지역으로 나뉘는 분절된 사고의 경향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미 관 주도적인 생각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인지 나 역시도 그런 상상을 펼치기가 어렵다. 자책하는 거다. (일동 웃음) 정책사업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굉장히 역설적인 것은, 문화예술교육이 ‘다르게 상상하기’를 가르쳐야 하는데, ‘다르지 않게 해야 하는’ 사업 설계 안에서 ‘다르게 상상하기’를 계속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영직 : 어찌 보면 한국은 조선 시대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굳혀왔고 지금도 그렇게 작동해오고 있다. 관(官)이 주도하는 거버넌스는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데 민(民)이 주도하는 거버넌스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최보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중앙 중심의 시각도 아니고 우리 지역이 최고야 하는 식도 아닌, 우리 지역을 새롭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비판적 지역주의’의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일본 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實, 1932~2007) 선생은 세상을 ‘새의 눈’으로 바라보는지, ‘벌레의 눈’으로 바라보는지 질문한다. 새의 눈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관리되고 통제되는 가독성을 추구한다. 행정이 추구하는 것은 질서 정연한 가독성이 그런 눈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벌레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이다. 벌레는 하늘을 보지 못하고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묵묵하게 꿈틀거리면서 제 앞의 땅을 기어 다닌다. 그런 것이 지역의 고유한 무늬를 만들어간다는 입장이 오다 마코토 선생의 지론이다. 정리하자면 지역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며 저마다 개별성이 있으며 독특하다는 것이다. 결국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최보연 : ‘지역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사업명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는 것이 슬프다. 그냥 어쩔 수 없다고 하기보다는 이제 그것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행정적으로 내려가면 같은 사업명으로 보급된다.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는 다른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원철 : [아르떼365]의 새로운 전환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지역 대신 다른 표현을 썼으면 좋겠다. 지역은 이미 여러 사업을 통해 고정관념이 형성되어 오해의 지점이 있다. 어떤 표현이 좋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스마트폰에 의해 삶의 양상이 급격히 달라진 요즘 인류를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부르더라. 이런 변화 속에서 제일 우려되는 것은 ‘비대면 관계’이다. 접촉하거나 대면하지 않은 채로 사람과 세상을 인식하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 활동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도시든, 농촌이든, 어디서 살고 있건 간에 자기의 몸이 있는 그 현재를 아주 정확하게 직면하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었으면 좋겠다. 로컬도 아니고 지역도 아니고 ‘몸이 있는 장소’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조은아 : 배바우 도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몸이 쓰이는 프로그램에 감명을 받았지만, 우리가 방문했던 시각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각자의 핸드폰을 통해 소일하고 있더라. 포노 사피엔스에 포섭되고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반면 [옥천신문]은 표준화, 중앙 시스템에 저항하는 격렬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새의 시선으로 정리, 구획당하지 않은 채 땅에 무늬를 내며 기어가는 벌레의 포복이 생생히 살아있었다.
정원철 : 『초월에서 포월로』라는 책이 있다. 포월(匍越)은 기다 보니 어느 순간 넘어가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초월을 꿈꾼다. 그러나 예술은 몸이 직접 겪는 경험이다. 몸에 새겨진 기억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이겨내는 힘은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내 몸이 경험했던 것에서 나온다. 이런 힘을 가진 인간으로 키워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포월적 예술활동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원하는 쪽이나 실행하는 쪽이나 정말 호흡이 길어야 한다. 1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짧은 호흡이 아니라 그냥 묵묵히 겪게 해주는 것이 좋다. 공모사업 중심으로 심사를 하고 순위를 매기고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다 보니 모두 다 성급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몸이 직접 겪는 문화예술교육, 포월의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
(왼쪽부터) 고영직, 정원철, 조은아, 최보연
정책과 사업의 칸막이를 벗어나
고영직 : 벌레의 눈을 갖고 벌레처럼 기어가면 벌레가 지나간 흔적도 보일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자. 현재 이뤄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포함해서 평생학습, 생활문화 같은 것을 지역 단위에서 추진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많은 것 같다. 기본적으로 지역을 정책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아서이다. 평생학습에서 이뤄지는 수업의 70~80%는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평생학습, 생활문화, 이런 식으로 정책적인 차별점과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에서 정책의 재구조화가 전면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최보연 : 연구를 하면서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등을 구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했다. 사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구분될 수가 없고, 구분되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행정과 정책 관점은 뭔가를 규정하고 범주를 정하고 그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여기서 문화는 무엇이고, 기존의 예술교육하고는 다르다, 기량 교육이나 감상 교육은 아니다, 경험의 교육이다…’ 등 끊임없이 ‘배제’의 용어로 정의해 왔다. 생활문화도 마찬가지다. 생활예술과 생활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명쾌하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구분해야만 하는 어떤 강박이 있다. 초기에는 그것이 필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유연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한다.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초재단만 해도 이미 ‘새의 눈’을 갖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너무 많은 사업이 떨어지니 상상할 시간이 없고, 그저 ‘관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체적인 인력의 문제가 있다. 연결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여력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연결하라고 이야기하는 나도 계몽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기도 한다.
정원철 : 정책으로는 해법이 안 나온다는데 동감한다. 그동안 ‘이것은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다’ 하는 식의 배제의 용어를 써왔는데 이제는 포용의 언어를 써야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기관들과의 협업도 중요하다. 지역을 샅샅이 리서치한 후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르떼365]에 문화예술교육의 한정된 테두리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끌어들여 보자고 한 것이다. 우리가 그 경계를 허무는 일부터 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고영직 :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보다 퍽 인상적인 단어가 있었다. ‘탈정(脫井)’이다. 내 안의 우물에서 벗어나자, 우리 안의 상투성을 벗어나자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꽂힌 표현은 파상력(破像力)이다. 우리가 자명하게 알고 있던 상(像)이 모조리 깨졌기 때문에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폐허를 담담하게 응시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도, 지역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이나 평생학습 활동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칸막이를 벗어나려면 ‘자기 앞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차원처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보는 위치가 달라지면 발상이 전환된다. 최근에 “당신의 문화정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문화정책 하면 항상 국가나 지방정부 같은 큰 단위에서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이든 청소년이든 어린이든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칸막이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철 : 탈정을 ‘탈문화예술교육’으로 번안해서 생각했다. 자폐적인 문화예술교육을 넘어서 삶의 터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을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에 원전 폐기물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끌고 들어와서 걸개그림이나 포스터를 그리는 것도 필요하다.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가꿔가는 문화예술 활동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아르떼365]의 기저에 깔고 테마도 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은아 : 아름다움이 앎이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예술의 근원부터 되돌아보고 싶다.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이 예술의 힘이고, 변방을 창조의 공간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기존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채 지배권력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으니 가능하다. 탈중심화, 탈도심화가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도시 사람에게도 유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이 가진 고유한 특색을 많이 발굴하고 재해석, 재창조해서 도시 사람에게도 무심함을 깨우치는, 경직된 사고와 감각을 깨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앎과 삶은 일치하게, 경계와 영역은 넘나들며
고영직 : [아르떼365]가 특별히 지켜봐야 할 것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정원철 : 경계를 허무는 사례, 얼핏 보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와 협업하는 사례에 초점을 맞춰서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예를 들면, 기후, 토양, 특산물 등에 관심 있는 어떤 예술교육자가 관련 전문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드는 식이다. 기존의 여러 문화에 경계를 넘어 연결 지을 수만 있다면 각각의 성과와 결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호락(知好樂). 알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앎과 삶의 일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아르떼365]의 새로운 방향성이 되었으면 한다.
최보연 : [아르떼365]의 방향성이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이라고 보면, 포노 사피엔스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결국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지금껏 대상은 늘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간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모르는 척하고 있다. 그저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 이런 식으로 대상화하여 평면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영직 : 그리스 사람들이 앎에 대해서 말할 때, 머리로 아는 것, 몸으로 할 줄 아는 것, 그것을 아울러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등 세 가지로 나눈다. 문화예술교육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지만 이것을 통해 의미 있는 작은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겠다. 마지막 한마디 부탁한다.
정원철 :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우리 삶의 구조와 연관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논의와 의견 제시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삶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다시 내세운 것이 그 증거이다. 그동안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여전히 삶과는 무관하고 큰 영향이 없었고 앞으로 잘해보자는 자기 고백을 한 것이다. 삶의 구조와 문화예술교육과의 관계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사례도 제시해보는 방향이 되면 좋겠다.
최보연 : [아르떼365]가 영역을 넘나드는 상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기사들이 항상 지원사업 틀 안에서 움직였다. 경계에 있는, 혹은 지원사업 틀 바깥에 있지만 주목할 만한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발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독립 책방이나 그림책방이 서울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다는 얘길 들었다. 거기서도 문화예술교육이 있고 참고할 만한 활동이 있는데, 다른 사업 영역으로 생각되어 소개하기 망설여지는 것 같다.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는, 정답이 아니라 나만의 답을 상상할 수 있게, 나만의 터무니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아르떼365]였으면 좋겠다.
조은아 : 지역의 삶과 문화가 깃든 문화예술교육을 찾아오라는 숙제를 주었잖나. 몸으로 새겨 땅에 무늬를 만드는 벌레의 몸짓을 부지런히 찾아가 보고 싶다. 무심함을 일깨우는 예술, 보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겪고 만나면서 비대면을 극복하는 공동체 활동이 주 관심사이다.
고영직 : 문화예술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겠지만 모든 것과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관심의 초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다양성’이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탐독했던 A. 뒤마의 『삼총사』에 나오는 슬로건이 있다. “하나는 셋을 위하여, 셋은 하나를 위하여.” 커뮤니티에 전부 걸어도 안되고, 혼자만의 세계에만 몰입해도 안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려는 길이다”라고 말한 만해 한용운의 말처럼 현장에 계신 교육자들에게 [아르떼365]가 ‘길이 곧
목적지’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는 즐거운 ‘길 잃기 안내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영직 편집위원
고영직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을 지냈으며, 문학웹진 [비유] 편집위원, 문화예술교육 웹진 [잇다]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자치와 상상력』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등을 펴냈다.
정원철 편집위원
정원철 편집위원

홍익대학교 서양화과(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석사)을 전공했다. 《명사와 동사 사이의 아포리즘》 《展示展 혹은 轉市展》 《지독한 노동》 등 작품 활동과 함께 《북아현동에서 잃어버린 마르티스를 찾습니다》(2008) 총감독 등 다수의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조은아 편집위원
조은아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및 독일 하노버음대, 파리 고등사범음악원, 말메종음악원을 졸업했으며, 서울시향 토크 콘서트, KBS 교향악단 실내악 시리즈 진행,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 KBS 클래식FM ‘실황연주&라디오 피아노 레슨’ 해설 및 연주 등 음악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 강연과 음악 해설을 하고 있다. 현재 더겐발스 뮤직 소사이어티 멤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보연 편집위원
최보연 편집위원

정동극장, 아트선재센터, 세종솔로이스츠 등에서 공연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경험했고, 미국 뉴욕대학교 공연예술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창의성 담론에 대한 연구로 문화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문화예술행정, 예술경영 등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한국연구재단 지원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arte365
녹취, 정리_프로젝트 궁리 남은정, 노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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