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역사는 스캔들의 역사다. ‘스캔들’이라고 하니 생전에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여성 편력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궁핍한 삶으로 얻은 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와 그가 죽은 지 이틀 후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그를 따라 자살한 연인 잔느 에뷔터른(Jeanne Hebuterne)의 비극적인 사랑을 연상했을 수도 있다. 현대미술의 여러 단면들 중에서, 특히 그 같은 에피소드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며 대중 사이에 반복적으로 널리 회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가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20세기 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본다는 맥락에서 보면 스캔들은 그런 사적인 관심사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현대미술의 스캔들’은 전통문화와 미술계 내부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흔들고 뒤집어엎는 어떤 미술가들의 전복적인 시도를 일컫는다. 요컨대 그때까지 관례화되거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미술’이 아닌 미술, 생경하고 도발적인 것들을 미술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거부감과 비난을 자초하는 미술이 스캔들로서의 현대미술이다. 주목할 점은 그렇게 전통을 위반하고 관습을 부정하는 미술 시도가 현대미술의 퇴행이 아니라 진보 내지는 확장을 견인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거의 누구나 아는 잔느 에뷔터른(Marcel Duchamp)의 소변기 작품이 스캔들을 통해 현대미술을 확장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1917년 미국 독립미술가협회가 뉴욕에서 개최한 ‘제1회 독립미술가협회전’에 당시로써는 미술작품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상생활용품, 그것도 하필이면 전혀 미적이지 않은 남성용 소변기를 가짜 작가를 내세워 버젓이 출품했다. 그 작품 아닌 작품은 뒤샹이 J. L. 머트 철공회사(J. L. Mott Iron Works)가 제조한 남성용 소변기를 사서, 몸체 외부에 “R. 머트(R. Mutt), 1917″이라고 서명까지 해서 내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전시관계자들은 물론 전시를 본 모든 이들을 경악시켰다. 우선 화장실의 비천한 물건이 전시장의 고귀한 작품이랍시고 나온 데 대한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보다 더 곤란하고 심각했던 것은 R. 머트라는 작가의 그것이 작품이란 천재적인 예술가의 손과 예술혼의 산물이라는 통상적 이해에 금이 가게 했다는 점이다. 또 미술은 조형(造型)에 기반을 두고 독창성과 유일무이함을 극대화하는 일이라는 오래된 신념을 뒤흔들었다는 사실이다. 관련 인사들은 급히 그 소변기 작품을 전시장에서 치워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뒤샹은 마치 비평가처럼 자신이 창간한 잡지 『맹인 (The Blind Man)』에 익명의 작가 R. 머트와을 옹호하는 글을 써 분란을 확대시켰다. 미술가는 꼭 아름다운 형상을 회화 또는 조각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물건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예술적 선택행위로 기성품(ready-made)이 원래 있던 자리와 기능에서 벗어나 미술관에 전시될 경우 그것은 이제 단순한 물건을 넘어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글은 역설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격노했고, 비판과 논쟁을 펼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런 뜨겁고 날 선 반응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새삼 ‘무엇이 미술인지’를 질문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까지 미술의 범주에 들이지 않았던 비(非)미술적인 것과 반(反)미학적인 것, 예컨대 일상용품의 예술적 자리바꿈과 예술가의 기존 미술에 대한 비판적 사고 및 개념, 그리고 제작행위뿐만 아니라 어떤 도발과 실험까지도 미술로 보는 시도를 하게 됐다.

 

이렇게 미술의 범주 혹은 미술의 영토 안과 바깥을 적극적으로 문제시하고 상호 관계를 복잡다기하게 만듦으로써 현재까지의 미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보다 넓고 다양하게 확장시키는 사람 또는 활동을 ‘아방가르드(avant-garde)’라 한다. 서구 19세기 말엽부터 예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이 용어는 애초 군사 용어로써 방어선을 뚫고 아직 아군이 한 번도 발 디뎌 보지 못한 적군의 영토로 침투하는 가장 용맹한 군사들, 즉 전위부대를 가리킨다. 그렇게 사용되던 단어가 미술에 적용됐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말하자면 미술에서 아방가르드는 기존 미술 세계를 전쟁터 삼고, 권위 있는 전통과 일반인의 관습이 부정하고 결코 미학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아 왔던 낯선 것들을 무기로 삼아 싸워서 새로운 미술의 영토를 쟁취해가는 작가들과 그들의 운동인 것이다. 그렇게 쟁취하고 확장한 미술의 영토가 낡고 비좁아지면,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다시 일부러 안락함 및 익숙함에 젖은 대중의 미적 감수성과 예술에 대한 사고방식을 공격하는 일들을 벌인다. 그럼 다시 그때까지 안전하고 단정하게 그어져 있던 미술의 경계선은 무너지고, 새로운 미술 실험과 파격적인 시도를 따라 들쭉날쭉한 미술의 지형들이 그려진다. 이것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미술에서 ‘새로움’과 ‘실험성’, ‘전위’와 ‘혁신’을 최우선 가치로 삼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20세기 내내, 또한 현재까지 현대미술의 전개방식이자 자기 정립의 방식이다.

 

글 |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미술평론가 강수미

시각예술, 미술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본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를 받았다. 2005년 《번역에 저항한다》 전시기획으로 올해의 예술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년 제 3회 석남젊은이론가상 (석남미술이론상운영위원회)을 수상했다. 지난 해 출간한 《아이스테시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철학 분야로 선정되기도 했다. 통찰력 있는 강의로 명쾌한 이해를 끌어내는 미술평론가 강수미는 깊이 있는 문화예술 이야기, 미술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과 문화예술의 기원에 대한 전문가적 해석을 들려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