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의 제자백가는 하나같이 개성 있는 인물들이다. 그 중에서 주장과 행동이 두드러지게 돋보여서 제자백가 사이에서도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니라 묵자(墨子)이다. 그는 성을 두고 벌이는 전투에서 공격과 수비용 무기를 만들기도 하고 약소국이 침략을 받으면 용병으로 전쟁에 개입하기도 했다. 그는 전쟁, 제작, 학술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절대 복종과 신용을 생명같이 여기는 철의 규율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는 말로 묵수(墨守)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묵자 집단이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한번 약속을 하게 되면 목숨을 걸지언정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상가로서 묵자는 춘추전국시대가 약육강식이 일어나는 무자비한 상황을 고발하고 그 상황을 구원하고자 분투했다. 그는 우선 지배자들이 입으로 늘 평화를 부르짖지만 실제로 상대의 허점을 이용해서 전쟁을 벌이는 모순을 지적했다. 이러한 모순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삶을 살려는 생존 투쟁에서 더 심화되었다. 묵자는 이를 위한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과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을 같게 생각할 것”을 제안했다.

 

시대가 이미 지독한 경쟁과 독점적 소유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묵자의 주장은 낭만적인 환상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에게 사유 실험을 권했다. “당신이 일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하자. 당신은 가족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지독한 이기주의자와 이타주의자 중 누구에게 부탁을 할 것인가?” 묵자는 사람이 이타주의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와 남을 차별하지 않고 아울려 사랑하는 겸애(兼愛)의 실현 가능성을 믿었던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배고픈 자 먹지 못하고 추운 자 입지 못하고 힘든 자 쉬지 못하는 고통”을 삼환(三患)의 문제도 풀 수 있다고 보았다.

 

정의감에 불타고 이타주의의 화신으로 보이는 묵자는 예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마 예술이 사람 사이를 소통시키므로 묵자가 예술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이러한 기대를 차갑게 저버린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개인적으로 음악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치료에 눈을 떴던 공자(孔子)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묵자는 음악 예술이 급한 곳에 쓰일 자원과 예산을 축낸다고 보고서 음악을 부정하는 비악(非樂)을 주장했다. 이런 시각은 오늘날도 여전히 살아있다. 예술은 들이는 것에 비해서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묵자가 비악을 내세우는 맥락을 조금 살펴보자. 오늘날 음악은 공연장이 가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다. 음악은 기기에 저장해서 휴대가 가능하고 또 사이트 접속해서 다운받아 몇 번이라도 재생할 수도 있다. 묵자 당시 모든 음악은 현장에서 단 한 번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또 악기를 제작하고 연주자와 무용수를 유지하려면 실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갔다. 당시 일상적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생산력이 발달하지 않는 상태에서 ‘제한된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써야 올바른 것일까? 묵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정의의 차원에서 접근을 했던 것이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세 가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성대한 음악 행위를 벌이는 게 옳은 것일까? 묵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시대적 상황이 달랐더라면 묵자는 비악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부정하는 음악은 궁정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의례의 음악이지 모든 음악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음악이 낳은 사회적 폐해를 비판했지 음악의 기능과 특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묵자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든데 음악(예술)은 무슨 놈의 음악(예술)인가?”라는 대구를 듣고 어떤 반론을 자신 있게 펼칠 수 있을까?

 

글 | 동양철학자 신정근

동양철학에서 문화예술교육의 메시지를 찾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서철학을 배우고 한제국의 금고문 논쟁을 주제로 석사를, 인(仁) 개념의 형성 과정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시대와 사회의 맥락에서 철학과 예술 미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다양한 연구 성과로 밝혀내고 있다. 요즘 현대 철학없는 동양 철학의 문제를 새롭게 풀어내려고 하면서 동양철학 텍스트의 재해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울러 철학 사상 위주의 동양학을 예술 미학의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긴 준비기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