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표현(expression)’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우리는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살아간다. 표현하지 않는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이 ‘표현’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표현하는 것은 어떤 존재이고 표현되는 것은 어떤 존재일까? 표현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 존재론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표현과 예술의 관계는 무엇일까?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은 생성(becoming)에 있다. 세계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순간도 쉼 없이 생성하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생성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나타남’으로써 생성하는 것들이 존재의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나타난’ 것들이다. 표현이란 바로 존재 자체의 생성의 단면과 인간존재라는 우리 자신의 생성의 단면이 교차하는 접면(interface)에서 성립한다. 우리의 몸 안에서도 숱한 생성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생성은 타인에게 나타나지도 않고 대부분의 경우 나 자신도 느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세계의 생성이 우리 인간에게 나타나는 표현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적어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다는 것일까? 모든 나타남의 가장 기초적인 차원은 곧 우리 몸에서의 나타남이다. 말을 하는 것, 춤을 추는 것, 달리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모든 것들이 우리의 몸으로 표현된다. 다소 추상적인 표현, 예컨대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 책을 써서 사상을 표현하는 것 등등도 결국 몸에서의 표현이 발전되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표현된다는 것은 결국 신체를 경과해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하면 우리의 신체는 무엇을 표현할까? 전통적으로 내려온 가장 일반적인 답에 따르면, 사상, 감정, 의지가 표현된다. 내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고, 내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고, 내 의지를 몸으로 표현한다. 책을 쓰는 것이 첫 번째 경우의 한 예이고, 춤을 추는 것이 두 번째 경우의 한 예이고, 선거를 하는 것이 세 번째 경우의 한 예이다. 표현되는 것은 감각되지 않으며, 표현하는 것은 감각된다. 사상, 감정, 의지는 내적인 것이지만, 저술 행위, 무용 행위, 선거 행위는 외적인 것이다. 표현이 ‘ex-pression’인 것은 이 때문이다.

 

표현에는 강도(intensity)가 있다. 낮은 강도의 단순한 표현들로부터 극히 높은 강도의 복잡한 표현들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의 표현들이 존재한다. 모든 표현은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거니와 (앞에서 말했듯이 존재한다는 것이 결국 생성한다는 것이라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다), 표현의 강도는 시간에 불균일성을 가져온다. 낮은 강도의 표현은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 즉 수평으로 이어지는 수적인 시간에서 이루어진다. 하루가 커져서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커져서 일 년이 되는 식으로 크로노스의 시간은 수평으로 수적으로 뻗어 간다. 그러나 아이온(AION)의 시간 즉, 수직으로 단절되는 질적인 시간은 곧 극히 높은 강도의 시간이다. 아이온의 외연도(extension)는 극히 짧지만, 그 강도는 극히 높다. 아이온의 시간은 순간 속에 영원이 담기는 시간이다.

 

예술이 가지는 하나의 속성은 곧 아이온의 시간 속에서 극히 강도 높은 순간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아이온에서 표현되는 강도 높은 예술의 시간에서 사상, 감정, 의지는 혼연일체로 종합된다. 우리의 신체로 그리고 다른 여러 방식을 통해 표현되는 궁극의 존재가 생명이라면, 예술이란 생명이 어떤 아이온의 순간에 가장 강도 높게 표현되는 생명-사건이라 할 것이다.

 

예술교육은 바로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아이온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순간이자 영원의 시간에서 생명의 강도 높은 사건의 표현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정우 교수

이정우 | 현대사회, 철학과 예술에서 답을 찾다!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지식을 섭렵하지 않고 세계철학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정우 교수는 역사적 탐구를 근간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현대 한국철학자다. 평소 어렵게 느껴왔던 철학을 온전한 철학사로 아우르며 그 속에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묻고 문화예술 분야와 함께 대안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