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앉아 밤새 속삭이네~♬♬’
    예쁘게 옷을 차려입으신 어르신들이 무대 위에서 발랄하게 합창을 하신다.
    한 템포 느린 엇박자가 노래 끝날 땐 ‘쿵! 짝!’ 하고 신기하게도 잘 맞아떨어졌다.
    무대 밖에 전시된 어르신들의 작품 중에 ‘세잔의 사과? 우리들의 사과!’ 라는 작품이 있었다.
    세잔(Cézanne, Paul)의 ‘사과’를 감상하신 후 자신만의 사과를 재창조하신 작품이었다.
    작품 중 푸르고 싱싱한 풋사과를 보니 취재 중에 만난 장제모 어르신의 말씀이 생각났다.

    “노인의 잠재된 욕망을 깨울 수 있는 문화예술 수업이 필요합니다.”

    한 입 베어 물면 떫은 듯 새콤달콤한 풋사과의 맛이 잠재된 욕망과 닮아 있었다.
    어르신들의 ‘늦바람 청춘제’를 즐기다 보니, 오늘도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셨을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휴식은 텔레비전과 신문 보기,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이 전부다.
    그분의 절제된 욕망 덕분에 막내딸은 문화예술 언저리에서 부족하지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거친 삶의 무게를 여전히 짊어지고 가시는 늙은 아버지의 어두운 새벽길에도 풋사과를 전해드려야겠다.
    그것은 완숙하지만 아직 덜 익은 풋사과 맛을 잃지 않으시려는 어르신들의 열정과 도전이다.
    오늘 축제에 참여하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씩 손등 위에 찍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도장 하나 더 찍어 드릴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11월 4주_그리다_이미지

    ‘2015 두근두근 늦바람 청춘제’는

    전국 노인 복지기관에서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느낀 삶의 변화와 일상의 경험을 공유하는 축제이다. 지난 2011년 ‘청춘 연극제’란 이름으로 처음 개최된 후 매년 분야를 확대해왔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청춘제’는 연극, 무용, 미술, 음악, 사진 등 총 5개 분야의 공연, 전시,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고, 전국 14개 노인복지관의 어르신들이 참가하였다. 어르신들은 현대극, 뮤지컬, 창작무용, 공예, 설치미술전 등 다양한 예술 분야로 삶의 이야기를 표현하였다.
    ‘황혼의 조물락’을 주제로 보령노인종합복지관의 전시를 함께 준비한 권우진 예술강사는 “수업에서 숙련된 기술보다는 미술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드리고 싶었다”며 “손 그리기 시간에 어르신들이 종이를 구겨 손마디와 주름을 표현하고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어르신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술과 공예에 관심을 보여서 기뻤다.”고 말했다. 올해 두 번째로 청춘제에 참여한 장제모 어르신은 “작년 축제에서는 ‘회상’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지만 올해에는 ‘환희’를 주제로 사진 콜라주 전시를 열었다. 청춘제 준비를 위해 다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눌 때 올해에는 인생 속 가장 의미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주제가 ‘환희’다”라며 청춘제에 참가한 취지를 밝혔다. 포토 콜라주라는 참신한 방식으로 환희의 순간을 담은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들은 직접 찍은 사진 콜라주, 축구선수를 꿈으로 품었던 순간을 생각하며 이동국 선수 몸에 자신의 얼굴을 붙인 콜라주, 소중한 가족들의 사진 콜라주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조숙경
    조숙경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따뜻한 마음과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오뚝이는 내 친구> <돌아와 악어새> <북극곰이 곰곰이> <한나도 우리 가족이에요> <야옹이 어디간다>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배탈 난 호주머니> <쑥쑥요가> 등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sasa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