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초등학교 시절 서예수업의 기억은 손톱 끝과 아끼는 하얀색 원피스를 검게 물들였던 먹물이다.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던 먹물은 하얀 원피스에 물든 얼룩보다 더 짙게 내 마음에 남았다.

    명당초등학교에 도착해 서예전문교실인 추사관에 들어서니 무엇보다 아이들의 바른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곧게 뻗은 허리 그리고 책상과 수평을 유지하는 팔의 각도가 꽤나 멋져 보였다. 책상에 고개를 박은 채 몰입하는 보통의 수업과 다른 자세는 기품마저 있어 보였다.
    취재 초반에 들었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서예는 한국인의 얼이 깃든 대표적인 예술장르입니다.”

    오랜 역사의 향기를 품은 은은한 묵향이 21세기 아이들의 마음도 정갈하게 만드는 걸까. 가만히 수업을 지켜보니 얇은 화선지에 스며드는 묵의 농담은 아이들의 해맑은 정서와 닮았다. 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솔직담백한 수묵의 맛이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10월 4주_그리다_이미지

    얼마 전 강원도 여행길에 들른 율곡 이이의 생가 오죽헌의 추억이 생각난다. 1788년 정조 임금은 그곳에 율곡의 저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유년시절의 벼루를 보관하도록 유품소장각인 어제각(御製閣)을 지어 주었다. 정조가 율곡의 정신을 사람이 사는 집에 담고 싶을 만큼 아끼고 존중했나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았었다. 오늘 그 정신이 명당초등학교 추사관에 깃들어 묵을 타고, 아이들의 마음밭을 짙게 물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정갈해지는 아이들 마음을 따라 어린 시절 내 마음에 새겨졌던 얼룩에서 어쩐지 은은한 묵향이 배어나오는 것만 같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서예·한국화분야 시범사업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주성혜)은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수요 증가에 따라 다양한 신규분야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예·한국화분야 시범사업은 2014년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시작해 올해로 2년차이다. 초등 교과와 연계한 통합적인 서예·한국화 교육프로그램과 기능교육을 탈피한 문화예술체험을 통해 창의성과 인성교육에 기여하고자 운영하고 있다. 2015년도에는 경기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운영하는 ‘필톡(筆Talk)-붓과의 대화와 소통’ 프로그램이 전국 25개 초등학교의 3,4학년을 대상으로 총16차시에 걸쳐 진행된다. 프로그램은 기존의 서예·한국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도구와 장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명당초등학교(교장 임성부)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서예 캘리그라피 교실 운영, 교사 서예 동아리 지원, 학부모를 위한 서예 특강 등 다양한 특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서예·한국화분야 시범사업을 통해 향후 전교생이 참여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예술교육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조숙경
    조숙경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따뜻한 마음과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오뚝이는 내 친구> <돌아와 악어새> <북극곰이 곰곰이> <한나도 우리 가족이에요> <야옹이 어디간다>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배탈 난 호주머니> <쑥쑥요가> 등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sasa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