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오후 염리동 골목에 들어서니 가슴 한쪽이 아련해져 온다.염리동, 대흥동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내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시절 이 골목은 다방구, 사방치기, 고무줄, 숨바꼭질 등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놀이터였다. 어쩌다 홀로 집에 있는 날에는 안방에 붙어있는 다락방이 놀이터가 되었다.다락방에서 할머니가 숨겨놓은 커피 맛 사탕 한 알을 까먹으며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인형놀이를 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필사본인 『구운몽』을 뒤적거리며 단잠이 들곤 하였다.
지금 나의 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은 그 시절 골목과 다락방에서 시작되었다.골목은 타인과 눈을 마주치며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을 가르쳐 준 곳이었다. 그리고 빈 다락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염리동 골목에서 ‘움직이는 마음 다락차’의 첫 발자국을 함께했다.그 시절 다락방에 바퀴를 달아 전국을 돌며 새로운 골목길을 만들어 가려는 걸까. 마음과 마음이 만났던 골목은 이제 봄꽃 같은 마음이 담긴 길로 다시 꽃피려나 보다. 꽃길이 된 골목은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 마음을 향기롭게 수놓을지 모른다.
다락방은 내 방이 없던 시절 나만의 기억과 추억을 담아 두던 소중한 공간이었다.어느덧 골목놀이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 문화예술교육으로 진화‧발전하였고, 그 사업의 역사가 10년이니 다락방에 놓일 만한 자격이 있구나 싶다. 공간의 기억은 사람 마음을 흔들고,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릴 만한 힘이 있다.마음이 흔들리면 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리곤 한다. 그 열린 문틈으로 우리의 기억과 추억이 파도치며 밀려온다.
마음 다락차가 지나간 길에 이른 봄을 설레게 했던 꽃잎들이 또 다시 흩날리는 듯하다.어린 시절 다락방의 오래된 먼지 냄새는 이제 향긋한 꽃비가 되어, 염리동 골목을 적셔주고 있다.
- 움직이는 마음 다락차는
- 문화예술교육 10년의 성과와 체험 워크숍 프로그램을 실은 트럭이 전국 곳곳에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을 찾아간다. 5월 11일 서울 염리동을 출발하여 경기(양평)-강원(원주)-대전-부산(남구)-전북(장수)-경남(의령)-대구-경북(군위)-울산을 돌아 행사 개최지인 부산까지 전국 곳곳의 문화예술교육 수혜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5월의 활짝 핀 꽃으로 가족에게 보내는 꽃 같은 메시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전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꽃길을 채워간다. 마음 다락차의 전 여정은 로드다큐로 제작되며 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조숙경 _ 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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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따뜻한 마음과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오뚝이는 내 친구> <돌아와 악어새> <북극곰이 곰곰이> <한나도 우리 가족이에요> <야옹이 어디간다>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배탈 난 호주머니> <쑥쑥요가> 등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sasa57@hanmail.net
그림이 너무 멋집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