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어느 봄날 자유로를 달려 북쪽으로 향했다.
산을 넘고 허허벌판을 지나며 과연 이런 곳에 현대식 아트홀이 있을까 싶었다. 그때 저 멀리 산을 병풍삼은 연천 수레울아트홀이 보였다. 차 문을 열자 겨울처럼 매서운 바람이 옷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이곳은 아직 봄이 아닌가보네. 경기도 최북단이라 그런지 겨울이 길구나. 그나저나 휴전선 너머에 봄은 언제나 오려는지……’
생각이 많아진 발걸음으로 연천 ‘YES 오케스트라’를 만나러 아트홀에 들어섰다.
제 덩치보다 한참 큰 콘트라베이스를 씩씩하게 안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있으니 여러 현악기들의 소리가 긴 통로에 가득 차올랐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휘에 따라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연주에 흠뻑 빠진 아이들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했다.
지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서로의 악기소리를 몸으로 느껴보라는 주문을 하셨다. 나도 가만히 발바닥에 마음을 집중해보았다. 코끼리처럼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우아한 첼로, 쓸쓸한 비올라, 고양이처럼 밝고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가 발바닥을 통해 나의 마음에 전달되었다.
아이들은 악보를 보고 자신의 악기를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으로 몸으로 서로의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며, 자신의 소리를 맞추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오케스트라 합주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따뜻하고 순수한 감성이 더해진 아름다운 클래식의 선율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날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뿌듯함으로 돌아오는 길, 북쪽 하늘에 지는 해가 임진강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연주에 집중하던 아이들의 발그레한 볼처럼 예쁘고, 예뻤다. 어쩌면 봄은 아이들의 핑크빛 볼처럼 수줍게 오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연주해준 <신세계 교향곡>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휴전선을 넘어가고 있는 듯 했다.
“얘들아 함께 마음을 열고 즐기고 배우며 훨훨 날아오르렴.
너희들의 꿈을 향해……”
- 연천 YES 오케스트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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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창단한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꿈의오케스트라’이다. 경기도 연천군은 휴전선 32㎞와 접해있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 전체 면적의 98%를 차지하는 인구 4만5천 명의 작은 농촌형 도시이다. 음악적 재능이나 실력이 아니라 꿈과 열정을 기준으로 선발된 단원 대부분은 이곳에서 악기를 처음 접해봤다고 한다. 서울 면적의 1.2배인 연천군 전역에서 모인 단원들 중에는 아트홀까지 버스로 3-40분 걸려야 올수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그래도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 오케스트라 연습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꿈의오케스트라 유일의 현악 오케스트라라는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관악기나 타악기 없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만으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 창단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연천DMZ국제음악제 오프닝, 꿈의오케스트라 합동공연 등에 참여했고, 지난 12월에는 정기 연주회도 가졌다.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단원들과 음악감독, 예술강사, 연천군시설관리공단 관계자 모두의 열정과 숨은 노력이 있었다. 아이들의 움직임이 침체된 지역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길 희망하는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YES 오케스트라는 Yeonchon Emotional Sureul Orchestra의 약자로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성적인 아동으로 변화되길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조숙경 _ 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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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따뜻한 마음과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오뚝이는 내 친구> <돌아와 악어새> <북극곰이 곰곰이> <한나도 우리 가족이에요> <야옹이 어디간다>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배탈 난 호주머니> <쑥쑥요가> 등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sasa57@hanmail.net
현악으로 만 구성 된 오케스트라 궁금하네요 지역 중심의 문화단체 활동 너무 좋습니다.
재미있는 구성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