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K Theatre를 말하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라이던은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이십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곳은 데카르트와 아인슈타인이 수학했다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라이던 대학교가 있는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라이던 대학교에는 락 극장(LAK theatre)이 있다. 이것은 대학본부로부터 펀드를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는, 라이던 대학 내 부설 공연장이다. LAK 이란 네덜란드어로 ‘라이던 대학 예술 센터’를 줄인 말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는 라이던 대학교의 특징에 비한다면, 정작 이 극장의 역사는 무척이나 짧은 편이다. 락 극장은 1983년에 설립된 244개의 좌석을 갖춘 중극장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이곳은 라이던, 이 도시에서 드물게 근래에 지어진 극장이라는 점에서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은 17세기에 지어졌다!) 문화공간으로서의 활용도나 접근성이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이곳의 책임을 맡고 있는 감독, 로란드 헬머(Roland Helmer)에 따르면, 락 극장은 학생들, 학교 직원, 그리고 지역 주민들에게 ‘모던’한 예술 표현을 접촉하게 만드는 것을 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나아가서 이들 문화 향유자들에게 수준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기획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 증명하듯 매년 락 극장에서 무대화되고 있는 공연은 무려 140개 이상에 이른다. 대학 내 부설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지 않는 숫자인 것이다. 연극은 물론이고 영화 상영, 퍼포먼스, 댄스, 음악 연주회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공연들이 무대위에 오르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진, 그림, 문학 등과 관련된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매일 저녁 일곱 시에 막이 오르고, 일요일 두시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퍼포먼스가 마련된다. (모든 네덜란드의 점포들은 토요일 다섯 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일제히 쉰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락 극장의 시간 운용은 보다 많은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을 염두에 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월요일 저녁은 비주류권 영화나 사진 다큐멘터리를 위한 정기적인 영화 상영회가 개최된다. 이곳을 찾는 관객들은 그러므로 <메디아>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고전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임, 뮤지컬, 오페라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들을 맛볼 수 있는 셈이다.

 

한 달 동안 여기서 무대화되는 공연들을 대략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남녀간의 사랑을 유명 오페라 아리아로 풀어낸 뮤지컬, 이슬람 종교에 대한 카바레 형식의 토크쇼,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종된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등이 관객과 만났고, 관객과 만나게 될 공연들이다.

 

대부분의 공연들은 외부 예술가나 단체들에 의해 채워진다. 주로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과 같은 대도시나 네덜란드 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이나 단체, 혹은 프로 예술가들의 작품을 여기서 만나볼 수 있다. 주로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 예술 의 향유 기회가, 이 작은 도시의 대학 극장을 통해 생산되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와 프로 예술가들에게 문화 생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락 극장이 학생들의 다양한 서클 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학생 공연에 대한 비중이 일반 외부 공연의 횟수에 비해서는 지극히 낮은 편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학교 자체의 극장이라는 사실 보다는 오히려 지역적 차원에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극장의 역할에 더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락 극장의 입장료는 대체로 학생의 경우는 7유로, 일반인의 경우는 8 유로선이다. 이는 일반 극장 티켓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다. 새 학기 오프닝 공연이나 특정일에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예술 장르의 무대화는 매일 저녁 극장 객석을 절반 이상 채우는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라이던 대학 의 일본학과에서 일본 문화를 전공한다는 한 유학생은, 저녁마다 락 극장에서의 공연 관람을 통해 “네덜란드 문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생겼다”면서, “공연이 끝나고 극장 카페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학교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했다.

 

락 극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기서 운영되는 워크숍이다. 무대에 올라가는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워크숍에서 다루는 코스들도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이 워크숍의 코스들은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어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댄스 워크숍의 경우, 여기에는 이집트 댄스, 펑크 거리 댄스, 모던 댄스, 살사, 브라질 댄스, 아프리카 모던 댄스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워크숍은,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비는 코스에 따라 50유로에서 110유로 선이며 교육기간은 10주에서 12주 단위로 이루어진다. 참가인원비율은 보통 학생과 일반인의 비율이 각각 절반씩이라고 한다. 보통 10명에서 25명 내에서 워크숍이 이루어진다.

 

인기 워크숍 가운데 하나인 기본 연기 코스는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외국 학생들도 참가가 가능하다. 총 12주로 진행되는 이 워크숍은 오스트리아 오페라 단에서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는 스코트 블릭이 담당하고 있다. 그는 현재 헤이그에서 카운터 테너와 가수, 연출자, 배우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프로 예술가이다. 수업은 신체 움직임, 발성, 즉흥과 감정 표현, 텍스트 이해 등으로 진행되며, 극중 인물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야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다. 연기에 대한 경험이 없어도 무관하며,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열린 마음”과 스스로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열망”이라고 스코트 블릭은 말한다.

 

락 극장의 프로그램은 1년 단위로 정해진다. 9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해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네덜란드어로 ‘WarmLopen’은 ‘워밍업’이라는 뜻과 ‘누군가를 즐겁게 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락 극장이 밝힌 올해의 포부와 의미가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일년간의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락 극장의 예술감독인 로랄드 헬머는 새롭게 시작되는 이번 프로그램의 목표를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관객에게 양질의 문화예술을 통해 즐겁고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이 감독의 말은 비단 락 극장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