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디자인 프로젝트의 비밀

글_고민정(아르떼 덴마크 통신원)

덴마크에서는 올해 ‘디자인의 해’를 맞이하여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제디자인 대회 INDEX 세미나가 8월4일 코펜하겐 경제학교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의 요지는 디자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 미래의 디자인은 사용자의 요구를 읽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용자와 쌍방향적으로 변화하는 적극적인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쌍방향적’ , ‘다학제적’ . 이 단어들이 시대의 화두, 시대의 큰 흐름이라 한다. 인터넷 문화에서, 상품 마케팅에서, 인문학이건 과학이건 학문 제반 분야에서, 정부정책 등에서 이 두 형용사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짧게 부연을 달자면, 의미의 전달과 수용이라는 전통적인 소통(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사회변화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수용자는 의미를 수동적으로 주입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미 선행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선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이다. 다학제적인 현상도 그렇다. 하나의 특정과목은 하나의 범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특정과목은 다양한 과목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다르다. 다양한 생각이 대립, 마찰하는 듯하다가 어울리면서 또 다른 예기치 못한 창조의 힘을 낳는다.
이 두 단어는 문화예술교육(혹은 이용자 측면에서 보면 학습)에 대해서 고민해 온 사람들에게 역시 이미 익숙해진 화두라고 본다. 아르떼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예를 나누고 있는 점도 반갑다. 이에 필자는 이용자, 파트너, 디자인이 협력을 이루는 덴마크의 디자인 프로젝트 사례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사례 하나 – 미래형 어린이 도서관 프로젝트

확장 검색창(Extensive Surfer)이라는 컴퓨터 검색의 개념을 놀이를 하듯 책 찾기를 시도하도록 물리적으로 변형시켰다.
덴마크 프레드릭스하운의 도서관. 본래 도서관은 조용하게 책을 빌리고 보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도서관의 방 하나는 시끌벅적하다. 한 어린이가 방 가운데에 있는 네모난 상자에서 열심히 책을 낚고 있다. 옆 친구도 다투어 낚으려고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학부모 역시 흥이 난 모습이다. 이 상자에 쓰인 기술(?)은 의외로 간단하다. 강한 자석이 책마다 부착되어 있고 자석 막대기로 책을 끌어당겨서 어린이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낚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컴퓨터 시설도 재미있게 설계되었다.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마치 놀이동산처럼 아이들은 컴퓨터 속 상상의 공간으로 흥미진진하게 빠져 들어간다. 소리, 이미지, 그리고 빛과 같은 다양한 감각을 이용하여 새로운 경험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도서관의 기본 취지인 정보 제공 및 이용의 기회를 확대시킨다는 두 요구가 재미있게 만남을 이루고 있다.


“어린이들은 뛰놀아야 합니다. 되도록 신체를 이용해야 합니다. 앉아서 컴퓨터 오락만 하면 걱정이 되지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 등을 이용해서 지루해 보이는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해보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취지입니다.”오르후스 코문 도서관의 프로젝트 담당자인 야닉 멀바드(Jannik Mulvad)의 말이다. 그는 덴마크 국립 도서관 협의회로부터 기금을 얻어서 2002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근 대학의 컴퓨터연구실, 아동 학습 연구자, 기업체의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경험 조사 등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활동과 IT 신기술을 접목시키려 했다. 이 프로젝트는 점점 다른 지방이나 인근국가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의 도서관 등에 알려져 미래 도서관의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프로젝트 연구에 가장 큰 공헌은 이용자인 어린이들이 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놓고도 어린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실패죠. 자칫하면 어른의 고정관념과 기대감에 의한 어린이 연구가 진행되기 쉽습니다. 이 점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결국 평가 역시 어린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이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례 둘 – 어린이 놀이터 업체 콤판사의 디자인 철학과 놀이연구소
1960년대 덴마크의 도시 지역에 단색조의 아파트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시화, 산업화로 인한 사회변화를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전통적인 가옥형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률적인 형태의 아파트가 자기집인지 남의 집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때 유행한 것이 알록달록 색깔을 입힌 조각들이다. 정부 차원에서 공공미술을 장려해서 미술인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당시 미술학도였던 톰 린드하르트 뷜스(Tom Lindhardt Wils)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어린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이자 과거 덴마크 전통 농촌사회에 존재했던 공동가옥,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는 경험 디자인을 시도하고자했고 절친한 친구와 합작으로 회사를 차렸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어린이 놀이터 전문 기업인 콤판(Kompan)사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난 뷜스를 대신해 미국 출신의 마이클 라리스(Michael Laris)가 콤판의 디자인부서를 이끌고 있다.

콤판 사의 모태가 된 탁아소


덴마크 사회의 특징은 ‘자유방임’ 이란 단어로 설명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자란 제가 이곳에 와서 일하고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기르면서 개인적으로도 느끼는 건데, 보다 자연 친화적이고 사회성이 강화되는 측면이 많은 것 같아요. 놀이터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를 연구합니다. 그래서 제 동료인 페다고어(Padaegoger) 카린 뮬러(Karin Moller)와 늘 열띤 토론을 하지요 카린 뮬러는 콤판사에 어린이 성장발달에 대한 각종 연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면서 놀이연구소를 토대로 외부 기관과의 협력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콤판같은 기업도 역시 정부 연구 자금을 얻어서 프로젝트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창의적이고 합당하면 코문의 지원금, 덴마크 문화부의 지원금이든 유럽 연합 (EU)의 기금을 받아서 관련기관 및 단체와 협력하는 데에 문제가 없습니다. 놀이 연구소에서는 국제회의를 개최해 각종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2년간 2-4세 유아의 신체, 정서 발달과 신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죠. IT 기술을 야외 놀이터에 접목시킬 요량으로 여러 기관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콤판사는 소위 모방 제품의 기승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마이클 라리스 씨에 의하면 아동발달 연구에 기반을 둔 디자인 철학에는 경쟁사의 모방제품이 경쟁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가장 어려운 점은 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을 위해서 구입을 결정하는 분들의 고정 관념입니다. 어린이들이 직접 뛰놀면서 스스로 법칙을 만들도록 설계를 하다 보니 추상적인 형태가 나왔습니다. 근데 일부 어른들 생각에는 ‘기차’ 라든지, ‘성’이라든지, 고정된 형태를 주어야 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어요.

디자이너 라리스 씨가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어린이와 문화를 위한 네트워크
도서관 프로젝트나 사기업 콤판의 프로젝트 모두 이용자인 어린이들의 경험을 관찰, 연구를 바탕으로 다학제적인 방향(디자인이란 범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정부정책은 어떻게 가고 있을까. 덴마크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프로젝트 단위의 지원을 장려하고 공공기관, 사기업, 대학 연구기관 간 협력을 장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를 총망라하여 덴마크 문화부의 ‘어린이와 문화를 위한 네트워크(Børnekulturens Netwærk) ‘가 구심점이 되어 프로젝트 공유, 지원을 도모하고 있다. 2003년 덴마크 문화부의 새로운 기구로 발족된 이 기구는 덴마크 국립 도서관 네트워크, 국립 문화유산기구, 예술 위원회, 덴마크 영화 학교 등 문화부 산하 정부 기관들이 어린이에 관한 한 정부 기금을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네트워크의 본부이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과 문화와 접해야 한다.
모든 문화단체는 이에 기여해야 한다.
모든 예술 형태가 포함되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항목들이 이 기구의 모토이다. 문화평등 비전을 공유하되, 과거의 결과중심 사례에 비중을 둔 전통적 모델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파트너쉽, 가치, 이론 등이 혼재된 다학제적인 모델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미래형 디자인의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 및 협조주신 분들.
– Børnekulturens Netwærkhttp://www.boernekultur.dkAnnelise Lindstrøm
– Kompan AShttp://www.kompan.dkMachael Laris, Karin Møller
– Indexhttp://www.index2005.dkPernille Johansen
– Frederikshavn Libraryhttp://bibl.frederikshavn.dkKirsten Møller
– Arhus Interactive Children’s Libraryhttp://www.aakb.dkJannik Mulv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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