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활동을 통해 살펴본 프랑스의 초등교육

글_노철환(아르떼 프랑스 통신원)

3학기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초등학교
12월 17일 토요일, 프랑스의 초등학교(Ecole elementaire)는 일제히 바캉스에 들어갔다. 우리말로 옮기면 ‘성탄방학(Noel vacances)’인데, 내년 1월 3일까지 18일 정도 되는 짧은 바캉스다1. 프랑스 초등학교의 연간 일정은 바캉스들을 나열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2.

초등학교의 경우 3학기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 학기의 첫날은 9월 첫날께다. 1학기에는 뚜생(Toussaint)과 성탄방학이 있다. 뚜생 바캉스 기간은 10월 22일부터 11월 3일까지다. 2학기에는 겨울 바캉스(흔히 ‘스키바캉스’라고 부르는)와 봄 바캉스가 있다. 이들의 일정은 파리의 경우, 2월 4일에서 2월 20일, 4월 8일에서 24일까지다. 그리고 3학기가 끝나면 기나긴 여름 바캉스(7월 4일에서 9월 4일까지)가 시작된다.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서 학부모들은 일찍 서둘러야 한다. 입학 신청기간은 전년도 9월부터 해당년도 1월 말까지다. 아이들의 학교 배정은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의 입학은 만 6세 어린이에게 해당되며 의무 5년제이다.

교의 5년은 크게 CP(Cours preparatoire : 예비 과정, 우리나라의 1학년에 해당), CE(Cours elementaire : 초급 과정, 2,3학년에 해당), CM(Cours moyen : 중급 과정, 4,5학년에 해당)으로 나뉜다. CE와 CM은 각각 CE1, CE2, CM1, CM2로 세분된다. 각 학년 사이에는 월반과 낙제 제도가 존재한다.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의 경우 한 학년을 뛰어넘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 같은 학년을 반복하기도 한다.

 

파리시내 한 초등학교 문. 파리시에서 기획한 과외활동 포스터가 붙어있다.
내용은 매주 토요일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문화, 예술, 체육활동에 대한 소개이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프랑스 초등교육의 3대 원칙은 비종교(laique), 무상(gratuite), 의무(obligatoire)이다. 이는 제3공화국 시절 만들어진 쥘 페리법(les lois Jules Ferry, 1881-1882)에 의거한 것으로 공립학교(ecole publique)들은 이를 기반해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의 공립 학교는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같이 학비, 교과서 일체를 무료로 제공한다.학부모의 부담이라곤 매일 학교에서 먹는 급식비 정도이다. 이는 부모의 수입에 따라 8단계로 나뉘어 차등 부과된다. 어린이들이 먹는 점심은 같은 것이지만 부모가 내는 급식비는 약 9배 가량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소득세의 가족계수(Quotient familial)가 약 30만원 이하인 가정의 어린이들은 가장 낮은 급식비를 내는데, 한 끼에 해당하는 금액이 200원에 못 미친다.

프랑스 초등학교의 또 하나의 축은 사립학교(ecole privee)이다. 이들은 초등교육의 3대 원칙 중‘의무’만을 공유하고 있다. 공립과 사립의 차이는 학비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다. 프랑스 학제를 따르는 일반 사립학교의 경우, 급식비와 함께 학비 및 특별활동비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연간 1,200유로(약 144만원, 12월 22일 기준) 가량의 학비와 비슷한 정도의 급식비3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외국의 학제를 따르는 국제학교들은 일반 사립학교 교육비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영국계 국제학교 BSP(British School of Paris)의 경우, 연간 약 2,000유로의 학비에, 약 1,500유로의 급식비 및 100유로 이상의 교복비가 필요하고 통학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의 경우 연간 약 1,700유로 가량의 추가 지불이 요구된다고 한다.

프랑스 초등학교 대부분은 이름이 없다.
굳이 이름을 짓자면, 학교가 위치한 주소가 이름으로 사용된다.

국가와 지역단체에서 지원하는 과외활동
초등학교 교육일수도 170일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하지만 오전 8시경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일일 수업 분량은 오히려 많은 편이다. 프랑스 초등학교의 정규 교육은 월, 화, 목, 금 주 4회 수업을 기본으로 한다. 수업이 없는 수요일의 경우 과외활동 위주의 교육이 실시된다. 따라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적어도 1개 이상의 과외활동을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보통 1시간 반 정도 되는 긴 점심시간과 4시 반에서 6시까지의 방과후 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의 과외활동을 지도한다.

한편 초, 중, 고등학생들의 과외활동을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는 주체는 다름 아닌 파리시와 구청들이다. 구청을 통해 신청할 수 있는 특별활동 프로그램들은 스포츠와 예술 분야에 걸쳐 매우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스포츠의 경우, 축구나 테니스 같은 구기 종목은 물론이고 스키나 스노우 보드 같은 계절 스포츠, 나아가 펜싱, 태권도, 유도 같은 투기 종목 등의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회화, 조각, 고전 음악, 고전 및 현대 무용, 연극 등 선택의 폭이 넓다.

일반적으로 과외활동의 실시 횟수는 보통 주 1회이다. 교육 시간은 종류에 따라 30분에서 3시간까지 다양하다. 운동을 좋아하는 루이(Louis, 남, 10세)는 “농구와 연극은 학교에서 선택한 특별활동이에요. 농구는 매주 수요일 오전에 선생님과 체육관에 가서 세 시간씩 하고, 연극은 화요일 점심시간에 해요. 급식을 빨리 마치면 한 시간 정도가 남거든요. ”라고 말한다. 요즘은 아빠와 함께 올 여름부터 시작한 태권도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목요일과 토요일 두 번씩 배우고 있어요. 며칠 전에 드디어 노란띠를 땄어요.” 라며 방긋 웃어 보였다.

CM2인 여학생 미리암(Myriam)은 예술학교(Conservatoire)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예술학교를 찾아가요. 월요일에는 오후 6시에 선생님과 개인 교습이 30분 동안 있고요. 화요일에는 6시 반부터 1시간 가량 개인 연습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토요일 오후 1시에는 오케스트라에서 다른 연주곡을 맞춰보죠. ” 개인 교습 때는 무엇을 배우냐는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늘 음악을 느끼라고 말씀하세요.” 라며 기술보다는 표현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과목과 시간에 따라 다양하지만 이들 과외활동비는 시간당 대략 10-15유로 안팎이다. 일주일에 1시간씩, 3과목을 배운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40유로 정도의 교육비밖에 들지 않는다. 국가와 지역단체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사립학교에서 추진하는 특별활동의 경우도 연간 교육비가 30-100유로 정도로 상당히 저렴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함께 있는 파리 시내 한 학교. 프랑스의 학교 시설은
방과후나 여름 바캉스 기간 동안 지역 단체가 관련된 성인교육의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프랑스의 초등교육을 들여다보니
본 기사를 취재하면서 느낀 프랑스 초등교육의 강점은 세 가지이다. 이해와 응용을 목표로 하는 교육 방식, 가정 형편을 고려한 교육비,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과외활동이 그것이다. 먼저 프랑스의 학교들은 중간 혹은 기말고사 대신 매주 쪽지 시험과 과제물을 통해 학습 성취도를 점검한다. 학년 말에는 한 해 동안 배운 내용을 복습할 뿐만 아니라, 학년 초에도 전년도의 학습 내용을 복습해 이해도를 높인다4. 대신 월반제도를 병행해 하향 평준화를 방지하고 있다. 가정 형편에 따른 교육비의 차등 지급은 공립학교의 급식비뿐만 아니라 시청의 각종 프로그램에도 적용된다.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프랑스 어린이의 과외활동은 자라면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양식을 제공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프랑스 초등교육환경 전체가 완전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반복과 이해 중심의 교육 방식은 논술에 기반한 프랑스의 대학입시와 깊은 연관이 있을 뿐이다. 또 공립학교의 1/3에 달하는 사립학교의 존재 자체가 경제력에 있어 차별을 두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5. 같은 공립 초등학교라고 하더라도, 프랑스 사람들은 흔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싼 교육비를 들여 멀리 있는 사립학교까지 아이를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설도 우리나라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파리에서 제대로 된 운동장을 갖춘 학교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많은 학교들은 지역의 운동시설을 찾아가 체육시간을 보낸다. 체육시간이면 건물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콘크리트 뜰로 뛰어나와 노는 아이들을 볼 때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프랑스와 우리의 초등교육 환경은 크게 달랐다. 그러나 이는 우열이 아닌 차이이다. 우리나라의 학제를 미국식으로 바꾼다는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유학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이 큰 이유였다. 교육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편이성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우리 교육에 있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학제의 변경이 아니라 그 내용이다. 이제는 누구나 세계화를 이야기한다. 국제적인 인적 교류는 앞으로 점차 늘어날 것이다. 꾸준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우리의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1프랑스 학교들은 지역에 따라 겨울과 봄 바캉스의 날짜가 조금씩 다르다. 이들은 리옹을 중심으로 A지역(Zone A), 루엥을 중심으로 한 B지역 그리고 파리를 포함한 C지역 등 셋으로 구별되어 있다.
2본 기사에서 사용되는 날짜는 2005-2006년도 연간 일정이다. 각 바캉스의 날짜는 매년 며칠씩 바뀔 수 있으며, 바캉스의 시작은 해당일 방과후부터이다.
3사립의 경우 부모의 수입에 따른 급식비의 차등 지불이 없다.
4학교마다 다른 방식이겠지만, 프랑스의 초중등학교에서는 학습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위한 보충수업도 방과후 진행하고 있다.
5파리시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도 파리 시내의 공립초등학교 숫자는 335개, 사립 초등학교는 107개이다. 여기에 다니는 학생의 숫자는 각각 76,860명, 25,773명이다.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약 23.8명이라고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파리시 홈페이지http://www.paris.fr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