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아이들을 위한 학교문화예술교육

출렁출렁~바다위를 떠다니는 미술관이 있다? 외로운 섬 안좌도 아이들이 세상과 통하는 방법, 푸른 바다위를 수 놓은 아이들의 작품들을 만나보았다.


오전 10시가 되자 목포 제2 여객터미널에 전남지역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약 20여명의 예술가들이 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박우량 신안군수가 직접 터미널에 나와 이들을 격려했다.
“신안군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가는 예술여행 행사에 참석해주셔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가진 못하지만 행사가 잘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남지역 예술가들이 참석한 행사는 신안군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와 전남민예총이 주관한 찾아가는 예술여행 ‘김환기를 찾아서’. 세계적인 추상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김환기의 생가를 찾아 그의 예술 활동을 되짚어보는 뜻 깊은 자리다.

12월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 동안 김환기 생가가 있는 안좌도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안좌초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며 그 의미를 더했다. 행사를 주관한 전남민예총이 그 동안 운영해 온 안좌초등학교와 안좌중학교의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결과물을 전시한 것이다.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된 바다 위에 ‘떠도는 미술관’

안좌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 대흥페리 5호 안에서 찾아가는 예술여행 ‘김환기를 찾아서’의 첫 번째 행사가 시작됐다. 서산초등학교와 안좌초등학교에서 운영된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의 미술수업 결과물이 전시된 것. ‘떠도는 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목포와 인근 섬을 경유하는 대흥페리 5호를 전시장으로 선정, 개관식과 현판식을 가졌다.
조막만한 손으로 스티로폼과 나무, 조개껍질 등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초등학생들의 작품이 선실 곳곳에 전시되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승객들이 하나둘 작품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년과 올해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운영하면서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을 그냥 창고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어요. 일부라도 전시할 생각으로 찾아가는 예술여행 ‘김환기를 찾아서’를 준비하면서 떠도는 미술관 개관을 기획했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교감하는 장소, 그것이 떠도는 미술관이죠. 배를 타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들의 작품을 보고 정적인 섬의 분위기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배 안에서 뿐만 아니라 안좌도 김환기 생가에도 아이들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전남 민예총 오남석 지회장은 떠도는 미술관의 취지를 설명하며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전남지역 11개 초?중?고등학교에서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전남 민예총은 인근 섬마을 아이들을 위해 직접 섬을 찾아가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찾아가는 예술여행 ‘김환기를 찾아서’를 준비하며 그 일환으로 기획한 아이들의 작품 전시는 전남지역 예술가들이 합세하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떠도는 미술관’의 개관을 알린 후, 아이들이 만든 장식물로 선실을 꾸미는 일도 예술가들이 직접 나서서 진행했다. 재기발랄한 아이들의 작품으로 선실 창문을 꾸미는 예술가들의 모습이 신선하고 또 생경하다.

작품이 전시되니 정말 좋아요!

떠도는 미술관의 개관식을 마치고 도착한 안좌도는 말 그대로 조용한 세상이다. 4개의 섬이 연륙교로 이어져 있지만 별다른 문화기반시설이 없다. 오후 5시가 되면 목포로 향하는 배가 끊기고 그와 동시에 마을을 경유하는 조그만 미니버스도 운행을 멈춘다. 안좌초등학교와 안좌중학교가 자리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오후 5시가 되면 집안에서 컴퓨터로 시간을 때운다.

“학교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혀 몰랐던 미술 분야에 대해 하나둘 알게 되고 아이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미술재료로 사용하니 그만큼 친근해지는 것이죠. 내년이면 시범사업이 마무리되는데 섬마을에서의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지속적으로 운영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술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이야기하던 오남석 지회장은 시범사업의 지속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섬마을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선착장에서 차로 10분여간 이동하자 양지바른 곳에 ㄱ 자형으로 자리한 김환기 생가가 나타났다. 약 90년 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안좌도로 운반해 건축한 북방식 기와집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행사를 위해 기와집 곳곳에 전시된 아이들의 작품은 형형색색이다. 안좌도에서 태어난 화가 김환기를 기리며 미술수업을 진행해 아이들의 그림에는 김환기 생가와 그의 그림을 패러디한 작품이 많았다. 책상과 걸상을 마을 표지판으로 활용한 작품도 신선했다. 마을의 이정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곳에 아이들이 물감과 페인트로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예술가 일행이 도착한 후 김환기 생가를 찾은 안좌초등학교 4~5학년 36명 학생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전시된 것을 보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 저것 봐. 야, 난 2개나 전시됐어!, “ 난 한 갠데 다른 건 어디 있는거지?”
아이들의 수다에 조용하던 김환기 생가에 활기가 넘친다. 안좌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미순 교사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미술교육의 지도가 부족한 면이 있는데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이 운영되어 부족함을 채울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했다.
5학년 담임 윤아영 교사는 “교과에 있는 미술과목은 그리기와 찰흙 빚기 등의 내용이 전부인데 이 수업은 여러 폐품을 활용해 특이한 작업, 평소에 할 수 없는 작업을 하다보니 아이들 창의력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미술교육의 장점을 전했다.
안좌초등학교 4학년 이채은 어린이는 “조개껍데기에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재미있다”며 “내 작품이 전시된 걸 보니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수줍게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찾아가는 예술여행 ‘김환기를 찾아서’는 김환기 생가 활용방안 워크숍과 학교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 작품전시회, 김환기 생가 활성화를 위한 풍물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김환기 생가와 ‘떠도는 미술관’에 전시된 아이들의 작품은 한달 한번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며 지속적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전남민예총 오남석 지회장

이번 행사를 주관한 전남 민예총 오남석 지회장은 안좌도 아이들을 위한 학교문화예술교육을 운영하며 섬마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열악한 환경에 비해 아이들의 감성은 무궁무진하다며 예술교육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 신안군수가 직접 나서서 행사가 진행됐다.
“이번에 마련된 행사는 ‘김환기를 찾아서’라고 안좌도에 있는 김환기 생가를 예술가들과 함께 방문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작업을 했는지, 현재 생가는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 준비됐다. 또 다른 계기로 2006년도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들 수 있다. 작년과 올해에 안좌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시범사업을 운영했는데 너무도 좋은 작품이 많이 탄생했다.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된 것인가.
“작년에는 주로 평면작업을 했는데 기본적인 실기차원의 교육이었다. 김환기가 그렸던 구상, 반구상, 추상계열의 작업을 이야기하고 패러디하면서 김환기의 생가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처음 해보는 아이들의 뛰어난 감성을 발견했다. 다시 안좌도를 찾아서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운영하게 됐는데 올해는 좀 더 발전시켜서 안좌도의 조형물 표지판 만들기와 관광안내도 제작하기 등을 진행했다. 아이들의 작품을 실제 섬의 표지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해보니 도시의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는 아이들 못지않게 신선하고 강한, 섬 아이들만의 놀라운 작품들이 많았다.”

– ‘떠도는 미술관’과 김환기 생가에 전시된 작품은 상설 전시되는 것인가?
“물론이다. ‘떠도는 미술관’은 한 달에 한 번씩 작품을 교체할 예정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작품이 많다. 배에 오른 어르신들이 아이들의 작품을 관찰하고는 전시된 작품을 자신들의 노인당에 전시하고 꾸며주면 어떻겠냐고 물으시더라. 그건 정말 우리가 바라는 바다. 아이들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주변 분위기를 바꾸는 것. 그것이 올해 우리가 추구하는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의 테마다.”

– 섬을 찾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일주일에 한번 섬을 찾아 3시간 동안 교육하는데 섬이다 보니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가 뜨지 못한다. 섬에 도착하고 나가는 시간도 정확하지 않아 수업이 파행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더 가르치고 싶어도 막배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2년 동안 수업을 진행하며 섬에 대한 특성을 알게 됐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전화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 아이들의 반응은??
“작품을 제작한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것을 보면 정말 좋아한다. 안좌도는 오후 5시만 되면 배도 끊기고 마을 셔틀버스도 끊긴다. 아이들이 그 시간 이후에는 밖에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미술을 벗 삼고 있다는 것이 정말 보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