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자기발견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수업 – 영화 강사풀 현장

글_채현숙(한가람디자인미술관 객원 에듀케이터)

여름 못지않은 열기와 햇살로 가득하던 9월의 어느 날,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영화초등학교를 방문하였다. 2005년 영화 연구학교로 지정된 이후 강사풀제를 통해 매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높은 교육 효과를 내고 있는 영화초등학교는 그에 걸맞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교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영화관련 게시물에서부터 선생님과 학생들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정말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생생한 현장을 이 지면에 고스란히 싣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역시 부족한 듯 하다. SF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망막 스캔으로 영상을 캡쳐해 내는 방법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정말로 시도하고 싶은 심정임을 먼저 밝혀둔다.

영화초등학교는 현재 재량활동 시간을 할애하여 전교생들에게 영화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영화 강사풀제를 통해 영화교육에 필요한 기자재와 한 명의 전문 강사를 지원받아 2005년 1학기부터 시작했다. 파견 강사는 대학에서 영화연출과 교직을 이수한 전문 인력으로 5학년(총 360여명) 학생들에게 반별로 일주일에 한 시간씩 교육을 담당한다. 다른 학년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커리큘럼으로 각 담당 선생님들이 지도하고 있는데, 영화교육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교육활동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영화 감상문쓰기 대회, 캐릭터 그리기 대회, 영화 신문 만들기, 영화 골든벨, 영화 주제가 부르기, 영화 정보 검색 대회 등 전교생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수시로 개최되고 있다. 필자가 학교를 방문했던 날에는 오전 내내 5학년 3개 반의 영화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수업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자.

영화 수업 맛보기!
“자, 지난 시간까지는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었죠? 이제 우리도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순서를 거친다고 했나요? 네, 맞아요. 먼저 모둠을 구성할 거예요. 그 다음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결정하고, 콘티를 만들고, 촬영을 준비하고, 리허설을 거친 다음 촬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럼 오늘은 모둠별로 어떤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만들 것인지 함께 결정해 보도록 해요.”
1교시 시작을 알리는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5학년 1반 아이들의 영화 수업이 시작되었다. 영화 강사풀제의 파견강사인 두미라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확인하면서 오늘 학습할 것들을 알려주는 멘트로 수업을 열었다. 45분간의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이야기의 전체 틀을 잡고 모둠별로 감독을 선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2학기 수업의 최종 결과물인 1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모둠별로 영화로 제작될 이야기를 구상하고 감독을 결정하는 아이들

“야!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 먼저 장르를 결정해야지~”
“코믹이 어떨까? 반전이 있는 것으로…”
“아냐, 그것보다는 공포나 액션이 더 좋아”
“멜로도 괜찮은데…”
“광고를 찍을까?”
이야기의 전체 틀을 잡기 위한 모둠별 토의가 시작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아이들은 동시에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자신의 세상을 만나기라도 한 듯 말이다. 25평 남짓한 영화교실은 순식간에 도깨비 시장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리 높여 떠드는 순간 아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 아이들로만 구성된 모둠에서는 연신 으스스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텍사스 전기장판 연쇄 살인 사건!”
“형사 이야기로 하는 거야·~ 잠복근무하면서 수위아저씨까지 등장하고… 키득키득”
“심장 큰 가족 어때? 까르르~”
반면 여자아이들이 섞여 있는 모둠에서는 보다 진지한 표정들이 오고가는 듯 했다.
“학교 폭력 방지에 대해 얘기해 볼까?”
“싸우지 말자, 아니면 담배 피우지 말자는 어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하자!”
“장애인을 놀리지 말자!”
처음에는 다소 산만하게 딴청을 피우던 아이들도 점점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동참하는가 하면,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들이라도 보이면 챙겨주는 아량까지 보여 주었다.

아이들의 토의가 이루어지는 동안 두미라 선생님은 각 모둠별로 진행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언을 하면서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해진 시간 동안 진행해야 될 내용을 검토하고 아이들을 이끌어갔다.
“자, 이야기 내용이 어느 정도 결정 되면 감독을 선출해야 돼요. 감독이 꼭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했죠?”
“리더쉽이요!”
“성실해야 돼요!”
이제, 모둠별로 감독을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어떤 모둠에서는 서로 자기가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모둠에서는 서로 양보를 하는 바람에 투표가 실시되었다. 토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아쉽게도 수업종료를 알리는 멜로디가 흐른다. 각 모둠별로 정리된 내용을 활동지에 작성한 후 선생님께 제출하는 것으로 수업은 모두 끝이 났다. 물론 숙제도 있다. 다음시간까지 이야기를 완성해 올 것!

이미지, 움직임의 이해에서 영화 제작까지
이어서 5학년 3반과 2반의 영화수업도 진행되었다. 2반의 경우, 지난번 빠진 수업을 보충하느라 연이어 두 시간 동안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모두들 끝까지 생기발랄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필자는 한 번의 방문으로 지난 수업내용까지 참관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모둠별로 영화 이야기를 구성하기 전에 아이들은 영화의 전체 제작 과정 및 팀별 업무, 예산, 특수효과, 장비, 의상, 편집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되어 있었다. 이 수업은 영화 <해리포터>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DVD를 활용해서 진행되었는데, 실제 감독과 배우, 무대연출자 등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쉽고 재미있게 구체적으로 영화 제작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1학기에 진행된 수업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체계적인 커리큘럼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먼저 영화와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다음 이미지와 영상을 이해하고, 언어와 연결시킨다. 이어서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해 클레이메이션을 감상하고, 소마트로프와 플립북 등을 제작해 본 후, 좋은 구도에 대해 살펴보고 카메라 등의 장비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사전 활동을 거쳐 2학기에는 좀 더 실질적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미라 선생님은 좀더 재미있고 다양한 체험이 수반되는 수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요약된 학습내용과 각종 동영상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파워포인트 자료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영화 관련 자료를 정리한 출력물과 활동지 등 수업에 활용되는 자료들이 매우 다양했다.

교내 곳곳에 설치된 영화관련 게시물

소통과 자기발전을 위한 매체로서의 영화 수업
수업을 모두 마치고 필자는 아이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영화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다’ ‘새롭다’ ‘활동적이어서 좋다’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라 지루하지 않다’ ‘책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져서 너무 좋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영화 수업을 통해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협동심이 생겼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만을 보았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고를 수 있게 되었고,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며, 제작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영화초등학교의 영화 연구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봉순 연구부장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혔다.
“학교 재량활동 시간에 영화 교육을 도입하던 초기에는 과연 어떤 내용의 교육이 진행될지에 대해 다소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특히 학부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요, 예전에는 애니메이션 등의 국한된 장르만을 고집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더 깊고 다양한 각도로 영화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들 자신이 영화를 통해 어떤 다른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영화를 감상하고 이해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능력, 협동심 등이 저절로 교육되는 것이죠. 일반 학교 교육에 영화를 접목함으로써 아이들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 1학기에는 6학년을 대상으로 국악 강사풀제를 실시하였었는데 그 역시 너무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외부의 전문 강사가 적극적으로 학교와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있으면 좋겠네요.”

강사풀제를 통해 자신의 전공분야를 학교 교육과 연결할 수 있게 된 두미라 선생님은 현재의 교육 내용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였다.
“영화 강사풀제가 처음으로 실시된 작년에는 중학교에서 영화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때는 영화를 어떻게 학교 교육에 접목할 것인지 다소 막막했었고, 고민도 많이 했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강사풀제의 파견 강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사전연수에서 받은 지도안을 참고하여 수업을 설계하였고, 그것을 기초로 1년 동안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 작업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작년 커리큘럼에 기초하여 대상에 맞게 좀더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영화제작의 기술적인 부분 보다는 영화를 이해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수업내용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전체 교육과정은 영화 이해, 영화 읽기(감상), 영화 제작으로 나누어져 있죠. 모두가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면서 예술을 접할 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합니다. 영화를 통해 다른 분야 또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교과목과 연계하는 좀 더 적극적인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수업 진행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역시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고, 아이들 개개인과의 관계를 좀더 친밀하게 유지하는 것이라 하였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돌출행동에 교사로서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 경우 담당 선생님 혹은 담임교사와 의논을 하면서 해결방법을 조금씩 익혀나가고 있었다.

강사풀제의 발전을 위한 논의들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와 예술분야 전문가들의 교육현장 참여기회 제공이라는 목적 하에 추진된 강사풀제는 올해로 6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2000년 국악 강사풀제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연극 강사풀제, 2004년의 영화 강사풀제, 그리고 2005년에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강사풀제로 확대되었다. 현재는 이 제도의 본질적인 가치와 운영 및 평가 방법, 교육 내용 등을 놓고 다양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가 꼭 필요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얘기한다.

영화초등학교의 이우영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를 매개로 매우 의미 있는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연구 사업을 시작하기 전 학생과 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사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습니다. 지금은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까지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네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또한 이봉순 선생님은 강사풀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교육 현장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본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재 시간 강사제로 운영되고 있어 학교 교육에 정착되기 다소 힘든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임 강사제로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수업 내용을 함께 협의하는 것에도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파견 강사가 재량활동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 관여하기는 더욱 어렵구요. 그리고 분야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해마다 다른 강사들이 파견되는 것보다는 한 분이 장기간 아이들을 책임 있게 지도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에 대해 파견 강사인 두미라 선생님은 “학교에 소속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불안정한 상태에서 교육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현재는 열심히 교육활동에 주력하고 있지만 1년 뒤를 예측하기가 힘든 상황이거든요.”라며 조심스럽게 속내를 비쳤다. 현재 강사풀제의 파견 강사들은 강사평가 결과에 따라 1년마다 재계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인데, 이것은 이미 예견된 문제점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비단 불안정한 신분만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파견 강사만 참여하게 되어있는 사전 연수에 대해 상호간의 보다 원활한 업무 협조와 질 높은 교육과정 구성을 위해 학교의 담당 교사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전 연수는 특히 강사들 간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유용한 정보교환의 장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연수 내용에 있어서도 사례 발표와 교육 설계 방법, 수업 운영 방법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길 희망하였다. 아이들의 결과물이 강사 평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보완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되었다. 즉, 결과물이 탄생하기 이전의 수많은 과정까지를 평가 항목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초등학교는 교내 선생님들의 100% 지지 하에 영화 연구학교를 시작하였다. 이는 교육 현장이 새로운 변화들을 요구하고 있고, 또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에 영화초등학교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소 진부한 말이지만, 기초가 튼튼해야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급히 먹는 음식에 체하듯이 모든 것을 성급하게 시행하고 평가하려는 조급성은 결론적으로 기초를 약화시키게 된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어렵더라도 항상 처음의 취지를 생각하면서, 비록 많은 노력을 들여 작은 성과를 이루게 되더라도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현재의 문제점과 발전방향들이 수면 위로 더욱 선명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느리고 천천히 가되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영화초등학교는 그렇게 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문화예술교육 전반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작은 변화들을 모두가 공유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취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영화초등학교 이우영 교장 선생님과 이봉순 연구부장 선생님, 두미라 선생님, 그리고 5학년 1반, 2반, 3반 어린이들에게 모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영화초등학교 홈페이지http://www.youngwha.es.kr

채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