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리뷰] 손으로 보는 미술관 “우리 맹인들도 로댕을 볼 권리가 있다”

강선희|기획운영팀|nanaoya@hanmail.net

갤러리TOMhttp://www.gallerytom.co.jp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것들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신 분이라면 기억하겠지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제는 혼자서 전동휠체어를 몰고 장을 보고 산책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보이는 그녀의 일상, 그러나 이것은 일본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일본의 도로 사이에는 요철이 거의 없다. 처음엔 그저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으니까 다니기 좋으라고 이렇게 만들었나보다, 하고 별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휠체어 없이는 거동하기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을 위해서 가능하면 요철을 없애고 매끈하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길이 울퉁불퉁하다고 해서 딱히 불편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한 번에 와 닿지 않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는 사람에게는 앞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글 중에,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생각조차도 못한 일일 수도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맥락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장애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주위 환경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반대로 장애인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을 감상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도쿄 시부야, 그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갤러리TOM’은 조금은 특별한 미술관이다. 금속공예 디자이너이자 무용가인 무라야마 하루에(村山治江)씨와 동화극작가 무라야마 아도(村山亞土)씨 부부가 지은 이 미술관은 그들의 아들인 무라야마 렌(村山鍊)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8살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한 렌은 갖은 치료를 다해보았지만 결국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유럽 각국의 미술관에서 손으로 작품을 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렌은 두 눈을 잃고 나서도 예술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우리 맹인들도 로댕을 볼 권리가 있다(ぼくたち盲人もロダンを見るけんりがある)”라는 한마디가 갤러리TOM이 만들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하여 1984년 개관한 것이 일본 최초의, 어쩌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 갤러리TOM’이었다.
‘갤러리TOM’이라는 명칭은 글, 그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활동했던 렌의 할아버지, 무라야마 토모요시(村山知義)가 그림을 그릴 때 TOM이라는 싸인을 사용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미술관 외관은 콘크리트를 그대로 칠한 듯 약간 삭막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커다란 창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낮잠이라도 한숨 붙이고 싶은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건물의 디자인과 설계는 모두 유명한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솜씨를 거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이니만큼 건물의 설계 자체도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해서 만들진 않았을까 하는 선입견은 금물이다. 이곳은 소위 말하는 ‘시설’에서 느껴지는 칙칙함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예술성만을 추구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왜냐하면 갤러리TOM은 ‘복지관’이 아닌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아도씨와 렌이 세상을 뜬 후에는 잠시 폐관의 위기가 닥치기도 했으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금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예술이란 상상력으로 즐기는 것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미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가? 물론 가능하다. 누군가가 그림의 정경이나 느낌을 그대로 묘사해주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방법이다. 작품이 회화일 경우에는 이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조각작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이용해 ‘손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미술작품 또한 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실제로 유럽 등의 미술관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작품을 만질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이 많다고 한다. 행여나 작품이 손상될까봐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쌀쌀맞은 표지판을 내걸은 곳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손끝으로 만지면서 대리석의 차가운 질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 속에 담겨 있는 작가의 뜨거운 열정을 받아들인다. 사람은 어떤 한 가지 기능을 차단당하면 다른 부분의 능력이 월등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눈을 가림으로써 촉각을 최대한으로 발동시켜 머릿속으로는 상상의 구조도를 펼쳐나간다. 아마도 렌은 ‘예술이란 상상력으로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각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은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한 구상작품보다는 추상작품을 더 재미있어 한다고 한다. 구상은 단지 그 물체만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복합적이고도 통합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므로 단순히 표면적인 정보만으로는 그 본질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추상작품은 보는 사람이 어떻게 감상하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사물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정형화되지 않은 추상작품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

‘갤러리TOM’의 홈페이지 자체는 지극히 간소하다. 과거의 전시목록을 전부 볼 수 없는 점이 아쉽기는 하나 최근 및 현재의 전시회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미술관 공지와 자체 출판물에 대한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다. 썰렁하다고도 할 만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 ‘갤러리TOM’의 건물 자체의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갤러리TOM’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작품을 전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맹아학교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갖기도 한다. 미술관 현관에 걸려 있는 동판의 점자 작품 역시 치바맹아학교(千葉盲學校) 학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예술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간담회나 부대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예술방면으로 깊게 종사해온 무라야마 일가의 사람들이 지은 책이나 기념서적 등을 출간하는 출판활동도 펼치고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눈이 아닌 손으로 감상해본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손끝으로 작품을 보고 느낄 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그 조각이 맞는 것인지. 만져나가면서 전체의 형상을 머리 속으로 조합하고 시나 음악 같은 타 예술의 영역까지 끌어들여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눈으로 한 번 훑어 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을까. 비단 시각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 틀림없다.

강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