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동네에서’ 꽃피다

문화예술교육, ‘동네에서’ 꽃피다


광명5동의 가파른 골목길. 약도를 보고 <광명 문화의집>을 찾아가다 길을 잃었다. 광명5동 동사무소 2층에 자리한 문화의집을 찾아가려면, 길에서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에게 동사무소의 위치를 묻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마침 까르르 웃으며 뜀박질해 오는 아이들 무리가 있다. “얘들아, 동사무소가 어디 있니?”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 뛰느라 숨이 차오른 아이에게 손짓을 하며 물으니, 아이는 숨을 고르며 짐짓 틀린 말을 고쳐주는 말투로 또박또박 되묻는다. “문,화,의,집, 찾으시는 거죠?” 그리고는 신이 난 목소리로 길을 가르쳐주더니, 마지막에 큰 소리로 또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면 거기에 문화의집, 이라고 크-게 써있어요!”

아이의 마지막 말 때문인지 정말 커다란 간판을 상상하며 찾아간 곳에는 3층짜리 동사무소 건물이 서있었고, 대뜸 문화의집 간판부터 눈으로 찾던 나는 곧 웃고 말았다. 문화의집, 이라는 글씨가 정말 크게 써진 곳은 간판이 아닐 터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들 머릿속 혹은 마음속에 박혀 있는 커다란 글씨를 들여다본 것만 같았다.

모두로부터의, 모두를 위한 문화

문화예술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고민 중 하나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삶이 서로 어떻게 긴밀하게 교류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한 교육자라든지 주체, 대상, 피교육자 같은 단어들 대신 ‘매개자’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긴밀한 관계와 교류, 소통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의 관심을 드러낸다. 붓의 터치나 악기를 다루는 법 같은, 일종의 기술 또는 기법에 대한 일방향의 강습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과 소통이 보다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건 어른이건, 교실 안에서건 혹은 학교의 담장을 넘어선 다른 어느 곳에서건, 문화예술교육은 그것을 통해 매개되는 사람들의 삶에 고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공연장의 관객이나 작품의 감상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어떤 고유한 특성이 심성과 체험에 스며들어 삶과 뒤섞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60-70년대 독일을 휩쓸었던 ‘모두로부터의 문화(Kultur von allen)’, ‘모두를 위한 문화(Kultur fuer alle)’의 개념은 문화예술교육이 서야 할 자리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조적인 행위와 그것을 향유하는 과정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고, 그 체험을 통해 그들이 서로 교감하며 무언가를 변화시켜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화예술교육의 출발점이면서 지향점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은 일대일의 개별적인 과정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매개되는 관계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기존의 관계들이 공감과 소통의 물꼬를 틔우게 되며, 나아가 그 확장된 관계들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과 그 관계들이 변화하는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아주 더디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인 듯 느껴지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지역공동체가 가지는 중요성은, 그렇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이 매일을 살아가는 밀접한 삶의 공간에서, 그들이 맞대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날과 달, 해가 바뀌는 시간을 함께 호흡하는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 삶과 쉼과 놀이와 창조가 뒤섞이는 공간과 그 관계들은, ‘동네에서’ 꽃피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읍, 면, 동 단위로 퍼져나가 있는 전국 159개의 문화의집은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풀뿌리, 혹은 모세혈관의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공부방이면서 놀이터가 되는 동네 사랑방

광명 문화의집이 처음 생긴 것은 지난 1999년.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생긴 문화의집이었다. 당시만 해도 광명5동은 전형적인 문화소외지역이어서, 광명5동에 문화의집이 설립된 것은 근거리에서 이 지역의 사람들이 문화적 활동을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시설이 전무(全無)했기 때문이었다. 여름에 비가 오면 빗물이 넘치던 낡은 건물에서 출발한 광명 문화의집은, 낡은 판잣집들이 즐비했던 광명5동의 풍경과 함께 변모하고 발전해갔다. 큰 규모의 복지관과 센터들이 들어선 후에도, 문화의집은 광명5동의 동네 사랑방 자리를 잃지 않았다.

공부방이기도 하고 놀이터이기도 한 이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이 문화의집 선생님들은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주었다. 그렇게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의집 사람들과 함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더 자라 졸업을 했고, 혹은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 자라서 걷고 뛰었다. “제가 간사였을 때, 어떤 아이가 여기에 발레복을 두고 간 거예요. 문화의집에서 발레강습을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이들을 항상 안아주면서 “오늘은 뭐했어? 뭐했어?” 이렇게 얘길 하곤 하기 때문에, 아이들 체취를 알아요. 그래서 주인 없는 그 발레복 냄새를 맡아보니, 누군지 금방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찾아줬어요. (웃음) 그랬더니, 어머니가 너무 놀라시는 거예요. 어머니도 깜짝 놀라시고, 저도, 이 아이들을 내가 익혀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무척 묘하더라구요.” 간사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4년째 광명 문화의집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현혜 전문위원의 일화다.


<꿈꾸는 공작소-함께 만드는 세계지도>프로그램에서 지도를 꾸미고 있는 아이들

아이 하나하나의 체취를 기억하고 식별하는 문화의집. 광명 문화의집은 현재 등록된 회원 수만 천여 명을 넘어선다. 아이와 어른들은 이곳에서 무용과 풍물을 배우고, 음악방송에 참여하며, 기획된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문화적 체험들을 나눈다. 작년 여름, 광명 문화의집에서는 “함께 만드는 세계지도”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참여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서 시작해서 주변의 약도를 그리고, 그 바깥으로 광명을 그리고, 다음으로 한국, 그리고 세계지도를 완성해가는 작업이었다. 인근의 너부대 공원에서 가져온 나무와 풀, 돌과 모래들로 그 작은 지도를 꾸미면서, 왜 그렇게 그려냈는지를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각자가 맡은 나라들의 특징을 찾아보고, 그것을 또 퍼즐 조각 같은 지도 위에 그려 넣으며, 마지막에 드디어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지리와 미술, 사회과 수업이 뒤섞인 이 과정은 통합교과적인 교육의 전형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서 출발하여 점점 확장되는 지도그리기의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발견한 세계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을 테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날개를 달아 드립니다

2005년 9월 10일. 광명문화원 공연장의 무대 위에 열다섯 명의 배우가 등장했다. 초등학교 때 연극을 했다가 칭찬받았었던 기억이 생생한 아줌마 김연희씨도 무대에 있었다. 일명 아줌마 뮤지컬. 이 뮤지컬의 제목 “날개를 달아드립니다”처럼, 김연희씨에게 날개가 달리는 순간이었다. 우유 배달을 하면서, 보급소 눈치를 피해가며 연습에 매진해온 넉 달 가까운 시간이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아줌마뮤지컬-날개를 달아 드립니다> 공연장면

“나타낼 수가 있으니까요, 나 자신을. 그냥 이렇게 아줌마로 있을 때는 누가 알아주겠어요.” 무대 위에 섰을 때 느꼈던 행복감의 정체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말주변 없던 김연희씨가 답했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탄광촌의 작은 남자아이가 했던 답이 떠오른다.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더듬거리며, 잘 모르겠는데 그냥 기분이 좋다고. 자기가 사라져버리고, 새 한 마리가 되는 것 같다고, 전기처럼.

30대부터 50대까지, 열다섯 명의 아줌마들이 모여서 함께 대본을 만들고 노래의 가사를 만들고 춤을 배우던 시간들이 쉽기만 했을까. 그러나 고부갈등, 자녀갈등, 부부갈등, 이웃갈등이라는 네 가지 갈등구조를 설정하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어 대본을 공동작업 하면서, 아줌마들은 뮤지컬이라는 이 생소한 장르를 통해 다른 누구 아닌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놀란 것은 문화의집 사람들이었다. 함께 뮤지컬을 준비했던 광명 문화의집 정희진 간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님들의 에너지를 보면서 정말 놀라웠어요. 아이를 떼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연습실에 데려오시기도 하고, 집에서 눈치를 보고 아이는 울고, (웃음)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저한테 자극이 됐죠.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 정도 연습을 했었는데, 나중에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했거든요. 그 열정이,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냥 단순히 이걸 해보고 싶다는 정도로는 가족들의 압박이나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지속할 수 없었을 거예요.”

대본을 만들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준비할 때, 가령 ‘부부싸움을 했다’는 상황이 제시되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집에 가서 계속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이 배역을 맡아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걸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내가 감정을 쓸 때 이 부분은 좀 더 격하게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계속 하셔서 연습 때 오셔서 연출 선생님께 계속 의견을 제시하시는 거예요.”


광명 문화의집 정희진 간사(좌)와 뮤지컬 공연에 참여했던 김연희씨(우).

광명 문화의집 사례가 알려지면서 강원도 동해시 천곡 문화의집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샘실뮤지컬이 시작되었다. 청주 흥덕 문화의집에서는 지역의 노인복지관과 연계해서 노인극단을 만들 계획이다. 광명 문화의집은 올해 “희노애락”이라는 제목으로 주부악극을 새로 준비 중이다. 전국의 여러 곳에서, 새로 날개를 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모세혈관

문화의집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96년. 올해로 만 10년이 되었다. 전국에 총 159개의 문화의집이 설립되어있으며, 이 중 약 80%는 지자체의 직영으로, 나머지의 경우 문화의집이 위치한 지역의 문화원이나 문화예술단체 등 민간에 위탁되어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 직영의 경우 동사무소가 운영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기타 지방자치단체나 문예회관, 도서관 등에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담당 공무원이 해마다 바뀌기도 하고 대부분 문화의집 뿐 아니라 다른 업무도 함께 맡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 직영 문화의집에서는 단순강좌 프로그램의 강사를 섭외하는 것만도 벅찬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관련 단체가 위탁 운영하는 경우, 그 단체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나 네트워크를 비롯해 여러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직영의 경우보다 풍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 직영과 민간 위탁운영으로 전국의 문화의집을 단순히 분류하기는 어렵다. 사람도 열이 모이면 열이 다 다르고, 동네도 스무 동네면 제각각 다 제 나름의 스무 개 빛깔을 가질 터. 읍면동 단위로 스며들어있는 문화의집이 저마다 다른 환경과 조건에 처해있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의집은 전국 159개가 있으면서도 굉장히 천차만별이에요. 직영과 위탁을 떠나서도,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담당자가 누군지에 따라서도, 심지어 같은 읍면동이라고 하더라도 주변에 아무 문화시설도 없고 사설학원조차 없는 곳도 있구요. 그런 곳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에 굉장히 단순한 미술 교실을 열어서 그림 그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역에서 굉장히 반응이 크거든요.” 전국 문화의집협회 우지연 차장의 이야기다.

천차만별의 동네에서 천차만별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읍면동 단위의 사람 사는 ‘동네에서’ 운영되는 문화의집의 특징이며 존재의의일 것이다. 광명 문화의집 정현혜 전문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요. 문화의집이 어떻게 가야 되지? 그런 생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고민해요.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 때도 그렇구요. 문화의집은 전 세대에 걸친 평생교육기관이죠. 그러다보니까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면서, 색깔이 모호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유아부터 노인까지 속속들이 문화의집을 이용하면서, 나름대로 생활에서 문화적인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인데, 그런데 성과로 드러나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가장 근거리에 있으면서 여러 세대가 이용을 하고, 가족이 함께 가는 곳, 문화의집은 세대나 가족의 문제들 안에서 관통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마다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고 배치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공동체와 호흡하는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과 지역의 공동체가 연결되는 사례는 물론 문화의집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몇몇 단체들이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미술프리즘(http://www.free-zoom.com)은 요즘 매주 이틀씩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서 마을가꾸기 프로젝트를 벌인다. 고양시의 사회단체보조금 지원사업과 연계해, 마을의 표지판에서부터 버스정류장, 쉼터와 놀이터를 새롭게 단장하는 미술작업을 하고 있다.

원흥동은 저녁 여섯시 반이면 마을버스가 끊기는 동네, 초행길의 사람이 혼자서는 찾아가기 어려운 농촌마을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67세의 조종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원체 이 동네가 있는지도 몰라. 하다못해 이 동네 이름이 구석말이잖아. 얼마나 동네가 구석지면 이름이 구석말이겠어. 우리 같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야, 이렇게 젊은 친구들 와서 이런 거 하면 깨끗해지고 좋지. 사람다운 동네 같잖아. 여기 이 마을회관 앞에, 지저분했던 거보다 훨씬 살아 보이지. 나야 초등학교야 나왔지만, 나 보기에도 이게 좋은데.” 미술 작업하는 주변을 떠나지 않으며 이것저것 묻고 골똘히 작업과정을 지켜보던 열 살 여자아이 재희는, 직접 그린 꽃 그림이 노인정 앞에 걸리게 되었다고 일러주면서, 자기가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원흥동 마을회관 앞에서 작업 중인 공공미술프리즘의 정유라 팀장.

하지만 이렇게 “외지사람들”이 마을에 들어가 미술작업을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공공미술프리즘에서 이 원흥동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최승미씨는, 처음 주민설명회 단계에서는 아주 협조적이었던 분들이 실제 작업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내심 실망스럽기도 했다. “제가 너무 욕심이 많았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외지인들이 투입돼서, 마을에 들어와서 작업을 하는 건데, 충분히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구요. 욕심보다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죠. 단발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면서 시간을 들여서 해야겠구나. 천천히, 그림 작업을 천천히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요, 천천히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지방자치와 문화예술교육

지방선거가 막 끝났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로, 지역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교육 역시 조금씩 그 풀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의 공동체와 뒤섞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공공미술프리즘의 전유라 팀장은 “공무원분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마을가꾸기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주민참여와는 상관없는 “환경미화” 작업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동네어귀에 터를 잡고 동네의 집들과 함께 낡아가는 문화의집에서 지방자치단체에 거는 기대와 요구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문화의집협회 우지연 차장은 지자체의 관심이 문화의집 운영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라고 이야기한다. “문화의집이 거의 읍면동 단위에 위치해 있잖아요. 가장 작은 생활권단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지자체 장들이 큰 시설을 짓는 건 좋아하고 신경 쓰는데, 읍면동에 위치한 자그마한 작은 문화의집에는 관심 안 가지다보니까. 예산에도 한계가 많구요.”


광명 문화의집 로비

중앙정부보다 지자체의 관심을 꼽는 것은, 단순한 예산지원 이상의 무언가를 함축하는 것이다. 광명 문화의집에서 만난 정현혜 전문위원도, 문화의집이 설립된 후 5년이 지나 중앙정부에서 국비 지원이 끊겼을 때를 회상하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국비가 없어도 시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문화예술, 동네에서 즐겁게 체험하세요

스웨덴의 ‘민중의집(Folkets Hus)’은 독일의 사회문화센터나 프랑스 문화의집 등과 함께, 한국에서 문화의집이 생겨나기 전부터 빈번히 언급되어왔던 지역기반의 복합문화공간이다. 1890년 2개로 출발한 민중의집은 1900년에 22개, 1905년에 53개, 1910년에는 112개로 늘어났다. 현재 700개가 넘는 민중의집을, 전체 인구가 8백만 명을 좀 넘는 스웨덴에서 매년 연인원 3천5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민중의집 안에는 영화관과 도서관, 신문사와 잡지사들이 들어서있기도 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공부하고 회합하는 공간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 민중의집에서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회합을 가지며, 강좌와 세미나 같은 학습프로그램부터 댄스와 파티, 일일시장과 바자회, 정치적 집회부터 종교 활동까지를 경험한다. “민중의집 없이 스웨덴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스웨덴의 사례는 독일의 경우에서처럼 문화예술의 개념을 고급예술의 향유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모두를 위한 모두로부터의 문화로 확장시키는 한 전범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역시, 지역에 기반을 두고 동네사람들과 호흡하는 즐거운 체험이 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앉아서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 모습이 발현되지 못하고서는 즐겁지 못하죠. 문화예술교육이란 즐거워야하는 거잖아요. 그냥 앉아서 배우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사람과 부대끼고, 그런 것들이 문화예술교육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국, 체험이라는 게,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을 뽑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과 가장 밀접하게 접해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최전선 같은 곳이라 사람들의 반응을 가장 즉각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고, 그래서 사람 만나는 그 일이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즐겁고 힘이 된다는, 광명 문화의집 정현혜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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