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 아름다운 연극을 왜 할까요?”
올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2006 노인복지관 연극교육 지원사업을 진행 중인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은 처음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했다. 장지영 복지과장의 말을 빌자면 “결국 오디션을 봐서 수강생을 선발”해야 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20명의 수강생이 일주일에 하루 2시간의 수업을 듣는 연극수업에 무려 6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든 것이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실지 오디션을 보긴 했는데 어르신들께 너무 죄송했어요. 3 :1의 경쟁률을 뚫고 수업에 참여하시는 어르신들은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하세요. 오늘까지 4번째 수업이 진행 중인데 100% 출석률을 기록 중입니다. 물론 떨어지신 분들께 왜 내가 떨어졌는지 알려달라는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그저 죄송할 뿐이죠.”
연극을 직접 참여하는 학생들은 물론 감상하는 관객들도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인지 수업분위기 만큼은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여느 강좌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활발하다. 연극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예술강사 송바울 선생님과 보조강사 박지나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을 보며 ‘웃음이 떠나지 않는 수업’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단다.
선생님과 함께 원형으로 둘러앉은 할머니, 할아버지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자 각자 가장 자신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우선 서로의 서먹함을 없애고 무대에 섰을 때 용기를 북돋아주자는 취지다. 퍼포먼스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어떤 분은 50여 년의 세월동안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신세 한탄하던 모습을 재연했고, 어떤 분은 손자, 손녀들과 함께 부르던 동요와 율동을, 또 어떤 분은 스무 살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에 그 시절 배웠던 춤을 선보였다. 모두가 그랬다는 듯, 나 또한 그 노래를 부르며 청춘을 보냈다고 추임새가 대단하다.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서로의 이름대신 애칭으로 친근함을 표현한다는 것. 60대부터 80대 까지 다양한 연령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찔찔이 할아버지, 적토마 할머니, 뻐꾸기 할머니가 선보인 퍼포먼스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연극교육 수업시간
퍼포먼스의 막바지에 이르러 한 할머니가 “이 아름다운 연극을 왜 할까요? 저 한번 따라 해보실래요?”라며 일어서자 모든 학생들이 호응한다. 할머니가 선보인 율동은 트위스트 삼매경. 비록 입으로 반주를 대신하고 아픈 관절이 항상 신경 쓰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앗싸~!”를 연발했다.
“인생황혼? 그게 아니라 광명이야!”
학생 중에는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의 여타 강좌를 수강하며 봉사활동에 나서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 분들 모두, 전혀 몰랐던 분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남을 위해 봉사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1석2조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올해 73세 되신 백순례 할머니도 연극반 외의 강좌와 봉사활동으로 일주일을 바쁘게 사시는 분이다. 그 중 연극수업에 대한 즐거움은 단연 제일이다.
“1남 2녀를 뒀는데 아이들이 더 좋아해요. 항상 즐겁게 사니까(웃음). 오늘도 몸이 쑤셔서 결석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딸이 데려다줘서 왔어요. 연극수업도 좋지만 우선 몸을 움직인다는 게 중요해요. 집에만 가만히 계신 분들에게 걸을 수만 있다면 이런 수업에 같이 나가자고 권유하고 다닙니다.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그 분들도 아시고 함께 하셨으면 좋겠어요.”
소품과 연기를 직접 준비해 열연하고 있다. 사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두시간의 수업시간 중 2교시가 시작되자 본격적인 연극공연이 준비됐다. 각각 2모둠으로 나눠 스스로 대사를 만들고 배역을 정한 학생들은 서로의 연기합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두 분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간간이 소품과 연기지도를 할 뿐이다. 분위기를 만들고 판을 벌리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각각 준비한 연극은 <홍도야 우지마라>와 <로미오와 줄리엣>. 스카프와 보자기로 의상을 대신하고 도화지에 나비모양의 가면을 그려 직접 소품을 완성한 학생들이 중앙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 올라 배우로 변신했다.
비록 10분 내외의 즉흥극이지만 서로의 눈빛만은 프로페셔널과 다를 바 없다. 손동작 하나하나, 대사와 호흡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 한 편의 연극을 완성했다.
연극은 삶의 활력이 되는 것은 물론 깊은 성취감을 준다.
<홍도야 우지마라>에서 이수일의 누나 역을 맡은 김사윤(75) 할머니는 “선생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시지만 스스로 준비하고 뭔가 만들어간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며 “인생은 60부터란 말이 실감난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의 연극수업은 서로의 안부와 일주일 후를 기약하며 마무리됐다. 무릎을 맞대고 둘러앉아 서로에게 당부한 말은 “절대 지각하지 말자”는 것. 연극수업을 마치고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은 쪽지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초등학생마냥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소외되는 어르신이 없도록 항상 함께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술강사 송바울, 보조강사 박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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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연극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예술강사 송바울 선생님은 공연을 앞두고 있는 현역 연극배우. 보조강사 박지나 선생님도 연기를 공부하며 수업을 돕고 있다. 두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노인 연극교육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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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교육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송바울-“제일 강조하는 건 역시 안전문제다. 바닥이 딱딱하기 때문에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리고 어르신 중에 소외되는 분이 없도록 진도가 더디더라도 함께 가려고 한다.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그 분들에게 지금껏 잠재되어 온 끼를 발견하고 행복을 발산시키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박지나-“어르신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는 게 오히려 맞는 말이다(웃음).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다. 그 분들께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시고 수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힘이 생긴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수업을 책임지기에 힘든 점도 있겠다.
송바울-“사실 현역 연극배우이다 보니 공연을 준비하거나 공연기간 동안에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주로 오후에 수업시간이 짜여져 있는데 오전 시간에 수업이 이뤄진다면 강사에게도 많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수업 프로그램이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송바울-“서로 목소리를 내고 협의하시면서 한 작품을 만들어가고 무대에 올리면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찾아간다. 그 동안 연극무대를 접할 기회가 없으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연극도 직접 관람할 예정이다.”
박지나-“수업이 시작될 때는 조금씩 서먹함을 보이시다가 막바지에는 모두들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비단 복지관 뿐 아니라 각 지역 문화시설에서도 이런 강좌가 개설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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