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말하는 마술 커리큘럼

미국 스미스소니언 어린이예술교육연구소 대표 셰퍼스 박사를 만나 문화예술교육 방법론으써의 물체중심 학습에 대해 들어보았다.


현재 문화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는 성인이라면, 1989년에 보았던 한 TV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했던 한 교육 단체의 광고는 박물관에 찾아간 한 어린이와의 대화를 위해 선생님이 무릎까지 꿇으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장면을 감동적으로 담았다. 이는 그 회사의 광고대행을 맡긴 광고대행사 직원이 ‘어린이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봐야 어린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철학을 담은 ‘키를 낮춘 선생님’이란 실화를 전해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실화 속의 박물관은 바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다. 박물관과 어린이의 거리를 좁히고, 체험과 지식을 연결시킨 ‘물체중심학습’으로 유명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1988년부터 어린이예술교육연구소 대표 셰런 셰퍼스 박사와 함께 해왔다.


스미스소니언 어린이예술교육연구소 대표 세퍼스 박사

 

그녀는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교 대상으로 한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연구, 개발, 컨설팅 전문가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후, 다시 교육학을 연구하며 학문의 폭을 넓혔다. 이후 브루클린 어린이 박물관, 시카고 인스티튜트 박물관, 신시내티 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후 1988년부터 현재까지 스미스소니언 어린이예술교육연구소에서 대표로 역임하며 ‘물체중심학습’의 뼈대를 만들었다.

– 스미스소니언 어린이예술교육연구소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또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스미스소니언 어린이예술교육연구소(Smithsonian EarlyEnrichment Center, 이하 SEEC)는 어린이(유아~초등학생까지)에게 박물관, 미술관을 기반으로 한 교육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1988년에 설립한 후 현재까지 18년 동안 SEEC는 어린이, 부모, 교사들을 위해 지역사회 안에 박물관, 미술관과 학교를 연결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작은 성 건물에서 출발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 안에는 아주 다양한 오브제들이 존재한답니다. 그 오브제를 통해 아이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모든 것을 교육하는 것이지요.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그 모든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육 환경입니다. 현재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는 유명한 자연사 박물관을 비롯 16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동물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전시품목이 1억 4천만 개에 이르죠. 1초에 하나씩 보더라도 평생 다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구상에 미취학아동들이 예술품을 자유롭게 만지고 다뤄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박물관, 미술관은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실’처럼 아이들이 자유롭게 오감을 활용하여 이론과 경험을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총 135명의 어린이가 미취학 아동과 3~6살 어린이, 5~7살을 위한 유치원 스쿨로 구성된 3개의 학교에서 매우 작은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져 교육 받고 있어요. 매일 매일 박물관을 가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소규모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박물관에서 배우는 것들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마술’처럼 신기하기 때문에 저희는 이 교육을 ‘박물관 마술 커리큘럼’이라 부른답니다.”

– ‘박물관 마술 커리큘럼’이란 ‘물체중심학습’을 뜻하는 듯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인가요? 주요 교육대상인 어린이들의 어떤 점에 주목을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신기한 물건을 보면 입으로 빨아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냄새도 맡아 보고, 흔들어서 소리도 들어 보는 식의 오감을 통해 그것의 쓰임새를 배워요. 배경지식이 부족하니 성인보다 더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것이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오브제를 통해 배우는데, 경험해 보지 못한 무형의 감정이나 원리, 정의, 개념 등을 자신이 경험한 오브제를 매개체로 삼아 이해한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자전거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전거 자체를 보여 주고, 어떤 물건이며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어른이 말해 주는 것은 일방적인 교육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큰 박스에 자전거의 다양한 부품을 넣어 페달, 손잡이, 종, 바퀴, 안장 등 신기한 오브제들을 하나씩 꺼내서 과거에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며, 기존의 경험을 이끌어내요. 아이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만져 보고, 느껴 보며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그것의 쓰임새를 알려고 하죠. 정답을 주기 전에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주는 것입니다. 작은 오브제들이 어떻게 모여서 큰 오브제가 되는지 보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호기심을 더 많이 느끼고, 각 오브제와의 관련성을 배웁니다. ‘아, 이게 자전거가 되는 거구나’ 하고 알게 되기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죠. 그 다음, 자전거에 대해 알려 주고 함께 박물관을 찾아 역사 속의 자전거들을 보여 주면, 아이들은 자신이 본 자전거와 과거의 자전거의 차이점도 스스로 찾아내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요. 박물관에는 바퀴가 하나인 자전거도 있고, 앞바퀴가 뒷바퀴에 비해 아주 큰 앤틱 자전거도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출퇴근용, 레저용, 전문가용, 취미용 등등 어떤 사람이 이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자전거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는 것까지 쉽게 알게 되니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과 사고력은 금세 자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과 구조적으로 연결시켜 이해하며 지식을 성장시키는 구조주의적 개념과도 관련 있는 듯합니다. ‘경험’을 중시하는 교육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물체중심교육’은 아동 교육의 철학과도 관련 있습니다. 이론에만 얽매이지 말고 경험을 중시하라고 말한 경험주의의 대가 존 듀이도 이 부분에 대해 연구를 했던 것이죠.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과정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오브제의 역할은 어린이 교육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자연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라면, 새의 깃털이나 자연을 상징하는 조각품들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도록 한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있는 자연 관련 유물을 보면, 단순히 박물관에서 유물을 처음 본 것보다 배움의 폭과 깊이가 아주 달라요. 집 근처의 놀이터에서 만지고 노는 장난감보다 보다 의미 있는 오브제 하나를 통해 과거의 세상과 다양한 문화, 우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 셈이죠. 한 가지 오브제가 다른 사물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오브제를 통해 수 세기 전의 역사 속 인물과 친숙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가치관을 세우며 진정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18년 전 처음 물체중심학습을 받았던 아이들의 부모들의 말에서도 우리는 이 교육의 효과와 보람을 느꼈어요. 이 교육을 통해 언어 표현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효과적으로 체득했는데, 그 것을 토대로 스스로 알아서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공부나 학습에 대해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기 전에 ‘재밌고 쉽다’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다는 것이죠. 또, 특별히 더욱 관심을 가지는 오브제를 보며 부모들은 아이의 장기와 특기, 소질을 더 빨리 발견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 교육의 장점입니다.”

– 한국에도 ‘체험 학습’을 강조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교실과 어린이 박물관을 중심으로 조금씩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 참석하시는 학교,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이번 워크숍을 통해 특히 어떤 부분에 도움을 받게 될까요?
“한국에서는 책과 사진을 통한 평면 교육으로 개념 위주의 교육을 해오다가 사물을 직접 교실 안으로 들여오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또, ‘어린이 박물관’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실제 그런 교육이 진행 될 수 있는 곳으로 박물관, 미술관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큰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야만 박물관을 본다면, 그것에 대한 감상이 어린이보다는 적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교육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는 박물관은 아이들을 위한 장소는 아닐 것입니다. 아주 정교하고 중요한 유품, 예술품들만을 보관하는 곳이죠. 이것들을 응용한 오브제들을 교실로 끌어 들여 매일 매일 활용하는 ‘경험’을 중시한 교육을 하는 것이 교육자들의 몫입니다. 감각적인 체험을 통한 기억이 단순히 입력된 기억보다 더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읽을 줄 알면 학습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고, 오브제를 통해 아이들이 더 의욕을 가지도록 이끄는 것이 교육자들의 목표임을 알리는 것이 오늘 워크숍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 한가지 방법을 예로 드신다면?
“그 방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발레’이라는 것을 가르칠 때,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 발레가 표현된 그림, 여러 종류의 발레 사진, 토슈즈, 발레 공연 티켓, 발레 음악 등을 먼저 느끼게 해 주며 이미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그 다음, 발레를 직접 접했을 때, 예전에 경험한 오브제를 통해 더 풍부한 감성을 키울 수 있죠. 이처럼, 학습이란 것은 교과서를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과서를 떠나, 교실을 넘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활용할 수 있는 오브제는 충분히 다양하죠. 우리는 한 가지 개념을 가르치는 데 있어 ‘다양한 각도의 관점’이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물체중심교육’의 대상이 되는 어린이는 학교에서 교사를 만나기 이전에 가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가정 안에서 엄마들이 할 수 있는 ‘물체중심교육’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전에 저는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토슈즈를 보여 주며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 써보라고 했더니, ‘아름답다’, ‘댄스’, ‘고통’, ‘헌신’이라는 의견들이 나왔지요. 하지만, 셋 아이를 키우는 한 대학원생은 토슈즈를 보며 ‘돈’이라고 말했고, 발레의 움직임을 연상한 한 대학생은 ‘부드러움’이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같은 오브제를 보고 느끼는 것이 다주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경험에 따라 같은 오브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천지 차이입니다. 저 역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엄마들은 아이가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경험을 주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언어로서 아이들과 소통하지만, 엄마는 아이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주위의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교감을 나눌 수 있죠. 토슈즈라는 것을 통해 먼저 발레에 대해 느끼게 하고, 박물관에 갈 때 그것을 가져가 댄서의 조각상 앞에서 그 이미지와 감성을 끌어내도록 해보세요. 꼭 토슈즈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발레 공연에 쓰이는 벨벳 커튼 조각이나 발레 옷에 사용되는 망사 조각도 좋아요. 그림 속에서 발레를 하고 있는 무용수와 자신이 하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그 끈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셰런 셰퍼스 박사는 문자 중심의 전달 위주 교육보다 탐험을 통한 체험이 자신의 온전한 경험이 되는 인터렉티브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이 워크숍에 함께 자리한 양지연 교수(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백령 교수(중앙대학교 박물관미술관학과)의 국내 박물관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맥을 같이한 것이다. 소장품을 응용한 교육은 전국 곳곳의 박물관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겪지 않고, 다문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주체성을 가지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라는 것에 동감하며 참가자들은 뜻 깊은 프리뷰 워크숍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