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요”

전교생이 40명 남짓한 작은 시골학교 학생들이 일기쓰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우포늪 지역에 위치한 특성을 이용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환경 보호 만화일기를 출품한 결과 만화일기를 쓴 참가학생 모두 최우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만화/애니메이션 강사 이혜경 선생님은 이러한 쾌거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여름과 가을을 넘나드는 계절의 길목에서 서글서글한 웃음이 매력적인 이혜경 선생님을 만나 봤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반성하며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 많은 어른도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특히 요즘 아이들은 학원과 과외 수업에 떠밀려 정작 일기를 쓰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사랑의 일기재단은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사랑의 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18년째를 맞은 ‘사랑의 일기 운동’은 일기쓰기를 통한 인성교육 운동으로 매년 ‘사랑의 일기 큰 잔치’를 열어 일기쓰기 활동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 사랑의 일기 큰 잔치에는 여느 해보다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일기에 ‘만화’를 접목해 환경 보호 만화 일기를 쓴 창녕군 유어 초등학교와 남지 초등학교 3~6학년 전원이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 전체 학생 수가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의 최우수상 수상은 본인들에게도, 세상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일기쓰기를 도왔던 지도교사 이혜경 선생님(27) 역시 최우수 지도 교사상을 수상했다. “처음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그것도 참가 학생 전원이 수상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웠죠. 도시 아이들과 비교하며 자신들은 할 수 없다던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계기가 되어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냉담했던 아이들, 이제는 수업 참여에 적극적이혜경 선생님은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가량 가야 하는 외딴 시골학교의 특별활동 선생님이다. 전교생이 40명 남짓인 유어 초등학교와 100명 남짓인 남지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작은 시골학교다. 도시 아이들이 흔히 볼 수 있는 만화책도, 컴퓨터도, TV만 켜면 케이블 채널에서 넘쳐나는 애니메이션도 그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처음 특별활동 수업을 갔을 때의 아이들은 정말 냉담했습니다. 자신감도 없고, 꿈도 없는 그런 상태였어요. 결손가정이 많다 보니 반응도 부정적이고, 사랑이 부족하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죠.” 그녀는 이런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의 기본이 되는 사람 그리기, 말풍선 채우기 등을 하며 흥미를 이끌어 냈고 조금씩 수업에 살을 붙여 나갔다. 점차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에게 만화로 일기를 써 볼 것을 제안했다. 생활일기부터 시작해 독서일기, 역사일기 등 일기의 내용도 다양화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종이에 그리는 일기에 금방 싫증을 냈다. 이혜경 선생님은 고민 끝에 ‘주제와 소재를 다양화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뛰어 놀던 우포늪을 둘러보며 느낀 것들을 다양한 소재로 표현해보기로 한 것. “우포늪은 생태계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에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장수풍뎅이나 멸종 위기에 놓인 식물, 곤충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친근한 것들이죠. 그래서 이러한 환경을 보호하고 우포늪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이번 일기쓰기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막상 일기쓰기 공모전에 나간다고 하니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사래를 치며 ‘안돼요’를 연발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의 열정적인 지도에 하나 둘 아이들이 동참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최우수상이라는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해 메모판, 바람개비, 부채 등을 만들고 거기에 환경 일기를 쓰게 했죠. 우산에도 매직으로 자신의 생각을 그려보고 필통, 신발주머니, 액자 등도 만들어 보았어요. 이런 활동들이 창의력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지금 이 학교 아이들은 만화가와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답니다.” 2학기에는 아이들과 함께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구체 관절 인형과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뮤직비디오도 만들어보고, 직접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볼 예정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애니메이션이 뭔지도 잘 몰랐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선생님 오시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 살고파”이혜경 선생님도 사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을 키웠었다.

당시 애니메이션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없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고 틈틈이 만화학원을 다니며 한걸음씩 꿈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불현듯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틈틈이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그림 지도를 해주며, 방과 후 교사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만화/애니메이션 강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외된 학교 아이들에게 문화, 예술을 가르치기 위해 선생님을 선발해 운영하고 있으며 만화/애니메이션 외에도 국악, 영화,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 관련 선생님 3천500명 정도가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왠지 저에게 꼭 맞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생각해 오던 일을 몸소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죠. 함께 활동하면서 점차 변화되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저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더 많은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 싶어요.” 활짝 웃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인 이혜경 선생님. 그녀의 넘치는 사랑으로 세상 곳곳에 있는 소외되고 외로운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