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도에서 문화 이야기 들려주는 강사로 변신
10월23일 오후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내 가을볕 드는 식당에서 한국전통문화진흥원 김기동(48) 전문위원을 만났다. 김 위원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다문화교육 전문강사을 겸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다문화 강사 양성과정 1기생으로 학교나 박물관, 문화원 등을 찾아다니며 다문화와 관련한 강의를 한다.
“‘연지곤지’, 증류주인 ‘소주’가 몽골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려줬더니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수업 후 그린 그림에서 몽골인을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 날 함께 참여하는 동네 아저씨로 그려놨더군요. 다른 문화에서 온 이주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 김기동 위원은 아시아의 문화가 얼마나 서로 가깝게 닿아 있는지를 설명하며 쉴 새 없이 사례를 쏟아냈다. 어릴수록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며 강의 후 초등학생이 보여준 인상적인 반응을 전했다.
김 위원은 경제학을 전공한 뒤 은행에서 20여 년간 재직했다. 평범한 삶이었으나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오히려 일상의 언어로 ‘친독자’적인 글을 쓰는 계기가 됐다.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다 보니 새로운 기회가 왔다. 강연 요청이 끊임없이 쇄도한 것이다.
우리 역사를 공부할수록 그 뿌리가 닿아 있는 이방인의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역사 공부와 여행을 즐기던 삶에서 다문화를 전하는 전문 화자(話者)로 나서게 된 연유다. ‘다문화’가 수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문화 교육의 수요가 과연 많을까 싶었다.
“다문화 교육의 수요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합니다. 이주 결혼 여성이나 자녀가 우리 사회에서 적응토록 돕는 것과 국내 한국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다문화 교육이죠. 이주민 대상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고, 한국인 대상으로 이뤄지는 교육의 수요와 공급이 점차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문화 교육 통해 국내 이주민의 모국 문화 받아들여”
김기동 위원은 특히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주민 자녀의 적응을 돕는 차원을 넘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3년 전 다문화 교육를 시작할 때 분위기를 전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2007년 한국 정부에 ‘단일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초중고교 교과과정에 다문화 내용이 다양하게 이뤄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외부의 시선을 통해 우리를 들여다 본 때문일까. 김 위원이 전하는 다문화 교육의 목표는 소박했다.
그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다문화 교육의 목표는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국가에 대해 낯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저렇게 볼 수도 있다’는 시각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다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조심스럽다는 말이다. ‘단일민족’에 대한 정서가 여전히 큰 데다 문화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기동 위원은 “60~70평생을 살아오신 어른들께 다른 문화를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분들께는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문제일 수 있다”며 “옳다,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들이 특정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문화적 배경을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른’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는 ‘결혼’과 ‘장례’에 대한 문화 차이와 배경을 주로 다룬다. 우리 문화와 비교해가며 다를 수 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하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것이다.
◆”다문화 교육, 정체성 흔들기 아닌 우리사회 지속 위한 것”
김기동 위원은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사회 역시 발전하고 지속된다고 믿는다. 서로 다른 문화가 ‘층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문화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 앞뒷면과 같아서 우월감을 덜어내려면 열등감을 극복하는 게 먼저라는 게 김 위원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가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의 문화에 대해서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 이면에는 선진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한다”며 “그래서 교육에 앞서 북미나 서유럽 등 선진국의 문화가 빚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강조한다”고 했다.
다문화 교육을 시작했던 3년 전보다 다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높아지고 있을까. 김기동 위원은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희망을 이야기 했다.
“처음보다 주변의 다문화 이주민들에게 대한 관심은 많아졌다. 하지만 관심있다는 것이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국내 다문화인구가 100만 명, 다문화가정 자녀가 7만 명, 국내서 교육과정을 밟는 학생이 2만 명을 넘는 등 이주민이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다문화 교육을 계기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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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고, 그만큼 배려하게 됩니다. 우월감은 열등감의 거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