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요의 열렬한 신봉자로 만들어준 감동의 명곡

 

내가 클래식 음악을 선택해 직업으로 갖게 된 데에는 어떤 운명의 힘이 작용했다. 고교시절 성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결국 언어와 문학을 전공하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선택하게 됐다. 하지만 성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양한 경로로 문화적인 만족을 꽤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해결책은 서클(동아리)활동을 통해서였다. 외대 음대라고 불리던 목요음악반에서 활동하면서 난 음대 못지않은 음악적 문화적 만족감을 누렸다.

 

목요음악반은 매우 독특한 동아리였다. 다른 대학의 고전음악감상반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바흐에서 비틀즈까지’라는 모토를 가졌던 이 클럽은 목요일 오후 5시에 모여서 고전음악을 해설과 함께 감상하고 토론을 통해 감상의 느낌을 공유했다. 평소에는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고전음악 LP를 감상하고(후에 CD로 교체되었다) 중창과 합창 발표회도 하는 그야말로 전인적으로 음악의 모든 것을 나누던 클럽이었던 것이다 난 목요음악반(줄여서 목반이라 불렀다)을 통해서 학창생활의 희열을 느꼈다. 정말 다양한 음악을 접했고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지금 클래식 콘서트에서 해설을 하게 된 원동력도 목요음악반에서 학창시절부터 해오던 일이었기에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러시아 화성의 깊은 묘미로 감동의 울림을 준 ‘붉은 사라판’

 

차곡차곡 레퍼토리를 넓혀가며 새로운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경이로워하고 있을 때 날 뒤흔든 한 장의 음반을 만나게 됐다. 러시아어를 배우며 고전하고 있을 때였지만 러시아라는 나라가 소유한 문화와 문학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있던 내게 결정타를 날려준 것은 당시 서울음반에서 라이선스로 발매한 러시아 국영 멜로디야 음반의 러시아 민요집(Russian Folk Songs)앨범이었다. ‘트로이카’, ‘종소리는 단조롭게 울리네’, ‘성스런 바다 바이칼호’, ‘개울을 따라서’, ‘칼린카’ ‘스텐카 라진’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민속 음악은 감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음악은 조금씩, 한 발짝씩 깨우쳐가는 러시아어에 대한 애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음악적인 광활함, 내 몸속 심연을 깨우는 깊은 감동의 울림이 이 러시아 음악의 멜로디와 화성 속에 담겨있었다. ‘아, 이런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니!’ 나의 가슴은 벅차게 뛰어올랐다. 그때부터 나의 러시아 민요와 러시아 음악에 대한 사랑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난 러시아 민요를 듣고 이건 평생 내가 해야 할 음악이라는 운명을 느꼈다. 이때 들었던 음악 가운데 러시아 화성의 깊은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한곡이 있었으니 바로 고음 소프라노부터 베이스를 넘어 한 옥타브 밑의 베이스, 옥타바까지 등장하는 ‘붉은 사라판’(Krasnyi Sarafan)이었다. 예부터 러시아에서 농민들의 딸은 정말 출가하면 평생 만나지도 못하는 출가외인이었다. 땅덩어리가 너무나 넓고 광활했기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시집을 가면 귀족들과는 달리 가난한 농민들은 평생 못 만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혼 전날의 풍경은 눈물바다가 되곤 했는데 이 아름다운 곡은 결혼식 전날 밤 호롱불을 켜놓고 두런두런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담겨있다.

 

엄마는 말없이 딸에게 시집가서 입을 농부들의 옷 붉은 사라판을 지어주고 있다. 하지만 딸은 엄마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엄마. 사라판 지어주지 않아도 돼요” 이러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어느덧 소녀에서 결혼 적령기의 처녀의 모습이 된 딸을 바라보며 석별의 정을 노래하는 모녀의 마지막 밤의 모습이 다정하지만 서글프다. 딸은 소프라노가 엄마는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며 남녀 혼성 합창이 웅장하게 뒤를 받쳐주는 곡. ‘붉은 사라판’ 이 곡은 나의 폐부를 찔렀다. 기쁜 곡도 슬프다는 러시아 민요는 이렇게 내 몸속으로 들어왔고 그 날 이후 난 러시아 민요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러시아 민요는 내가 평행을 함께 해야 할 운명의 음악

 

87학번인 내게 2학년이 된 1988년은 내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된 해였다. 88서울 올림픽을 통해 난 처음으로 망명자들이 아닌 본토 러시아에서 온 소비에트 러시아인들을 처음으로 만났고 그들의 활약상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만끽하며 통역과 반역을 거듭했다. 낮에는 경기장에서 이들 소비에트 러시아인들을 응원하고(그 때는 온 나라가 처음 맞은 손님인 소련팀을 응원하는 독특한 시대상황과 분위기였다) 밤에는 올림픽에 맞춰 열린 지금도 역대

최고의 문화예술 페스티벌로 꼽을 수 있는 올림픽 문화 예술축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멋진 공연들에 밤마다 참가, 체육과 예술 두 아름다운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때 난 러시아 음악 예술의 진수를 만끽했다.

 

모스크바 방송 볼쇼이합창단의 내한공연. 지금까지 음반으로만 들었고 서슬 시퍼렇던 냉전 시절에는 금지곡들이었던 러시아인들의 노래와 연주를 1,2부 동안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직접 들을 수 없었던 러시아 민요의 그 깊은 세계가 나의 눈과 귀 앞에 아름답게 펼쳐졌다. 물론 그날 연주에서 가장 감동 깊은 곡 중 하나가 바로 ‘붉은 사라판’이었다. 특히 이 날 솔로를 맡은 가수들은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재러동포 소프라노 넬리 리와 메조소프라노 류드밀라 남이었다. 이들의 화음과 절절한 노래에 청중들은 우리의 슬펐던 역사까지 오버랩 되면서 향수와 회환과 한과 물결치는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자작나무 침엽수림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것 같은 깊은 화음. 러시아 민요를 직접 들은 첫 경험은 강렬했고 난 이 음악은 내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음악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후 동기 친구 이은주와 의기투합, 러시아 민요를 부르는 노래 동아리 ‘깜빠니야’(친구들)를 만들어 세계 민속음악 축전에 참여, ‘깔린까’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깜빠니아는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러시아 민요를 마음껏 부르고 소개했다. 물론 ‘붉은 사라판’도 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월간 <객석>기자로 2년 간 활동하면서 난 하루도 러시아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러시아 음악인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사귀면서 더욱 내겐 러시아를 갈망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러시아 민요를, 러시아 성악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고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성악을 배웠다. 3년 후 귀국, 나의 방송과 무대 공연과 글 쓰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힘의 원천은 바로 러시아 민요였고 ‘붉은 사라판’이었다. 이 ‘붉은 사라판’을 들어보고 싶다면 레드 아미 코러스의 음반을 구입하면 좋다. 또 이 러시아 민요를 너무나 사랑한 폴란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헨릭 비냡스키는 ‘붉은 사라판’을 주제로 아름다운 ‘모스크바의 추억’을 남기고 있다. 이 가을에 듣기 좋은 곡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