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창조해 낸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

 

12월 2일,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와 오케스트라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부산을 물들였다. 이번 공연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동평초등학교 오케스트라와 부산교문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아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날 공연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그들을 찾아가 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초등학생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악기인 바이올린과 첼로, 플루트 등을 능숙하게 튜닝하는 모습은 전문가의 손길을 느끼게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지휘자가 사인을 주자 각자 다른 소리를 내던 악기들이 어느 새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필자가 그만한 나이였을 때는 겨우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고, 그 후로 악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과 달리 갸냘픈 체구의 어린 초등학생 친구들이 너무나도 멋진 솜씨로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어느 한 곳 흠잡을 수 없는 멋진 하모니에 누구나 다 그들이 체계적인 음악교육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을 때 만해도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불과 몇 년 만에 악보도 못 읽던 친구들을 시립 교향악단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키워낼 수 있었을까.

 

백지에 음악을 그려 넣은 어린이 오케스트라

 

동평초등학교 오케스트라는 당시 선생님이었던 박우양 장학사와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2003년 부임한 박우양 장학사의 아이디어로 60여 명 가량의 현악기, 목관악기, 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 악기는 모두 학교에서 구입하여, 아이들이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게 했다. 이후 금관악기까지 갖춘 12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지만 처음에는 정말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말이 오케스트라였을 뿐 제대로 된 연습실도 없었고 심지어 단원들은 악보조차 읽을 줄 몰랐다. 하지만 남들이 다 놀랄 정도로 아이들은 박우양 장학사의 노력에 힘입어 자신의 손 끝에서 기적을 만들어 냈다.

 

“악보도 연주법도 모르는 친구들이었는데 개인적인 레슨 한 번 받지 않고 방과 후 학교를 통한 지도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학업에 지장을 줄까봐 연습도 점심시간에 20분씩만 했죠. 연습실이 없어 창고에서 연습을 했을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정말 빠른 속도로 음악을 소화했고, 악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부단한 노력 끝에 창단 2개월여 만에 동평초등학교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첫 연주회를 가진 데 이어 지금까지 60여 회가 넘는 연주기록을 갖고 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오케스트라는 이제 동평초등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드디어 세계적인 성악가인 조수미 씨와 함께 공연하기에도 손색 없을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보통의 학생들과 협연한다는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이번 연주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으로 평생 기억될 것이고, 무언가를 위해 아낌없이 노력하는 것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박우양 장학사의 뒤를 이어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희영 선생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자란 것 같다며,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무대를 또 한번 갖고 싶다고 덧붙였다. 동평초등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는 임나현(동평초, 6학년) 어린이는 “조수미 선생님과의 연주가 너무 가슴이 설렌다”며 “한 곡 한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정말 가슴이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하나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부산에 우뚝 서다

 

부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부산교문청소년오케스트라는 2006년 8월 전국 최초로 창단된 교육청 소속 청소년 오케스트라다. 단원들은 오디션을 거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초•중•고등학생을 발굴했고 현재 68명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사이의 청소년들이 활동하다 보니 함께 연습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휘를 맡고 있는 박성완 교수가 ‘연령대가 다양한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할 토로할 정도다. “같은 말을 해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니 나이에 맞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로 두 번 세 번 설명해줘야 해요. 또 학교 수업시간이 다르니 연습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죠.”

 

박 교수는 짧은 연습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파트별로 나눠 따로 연습을 시키고, 이들의 연습을 시립 교향악단 단원들이 도와주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그 덕분에 일주일에 3시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연습 시간이지만 완벽한 하모니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번 조수미 씨와의 공연은 기말고사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연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평소 연습을 부지런히 한 덕분에 8곡이나 되는 곡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조수미 씨와의 협연 역시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악장을 맡고 있는 공귀주(부산예술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개인적으로 손을 다쳐서 힘이 들었지만 정말 특별한 공연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며 “세계적인 아티스트와의 협연은 제 음악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성완 교수는 이번 공연을 위해 동평초등학교 어린이 오케스트라와 부산교문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모두 지도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 역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큰 무대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지도했다.

 

“오케스트라를 했던 경험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기르는 데 무척 도움이 됩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악기를 가지고 함께 어울려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죠. 하지만 학부모들이 이런 부분은 간과한 채 악기는 남는 여가 시간에만 하라고 하는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청소년기에 이런 큰 무대에 한 번이라도 서 본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분명 미래가 달라질 겁니다. 학부모 여러분께서 조금 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주신다면 앞으로도 부산교문청소년 오케스트라는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독일 음악가인 클라우스 슐츠는 ‘음악은 잠들지 않고 꾸는 꿈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당신의 자아는 새로운 단계로 전이되고 그 속에 사는 동안 그것은 현실을 지배하기 때문에 곧 꿈은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12월 2일, 그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조수미 씨와 함께 무대에 선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오페라 아리아에서부터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씨에게도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이 공연은 이들 오케스트라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멋진 행보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