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월월축제’ 총감독 이혜경 교수를 만나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사는 마을, 하늘이 유난히 가까운 오래된 동네 성북동. 서울성곽 기슭에 자리잡은 성북동 북정성곽마을에 올 가을도 따뜻한 마을 축제가 열렸다.

 

우리네 마음 속 살아 숨 쉬는 ‘동네’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이혜경 교수. 연극학 박사이자 평론가, 극예술교육가인 이 교수는 2009년부터 해마다 가을을 기다린다. 지인 이영란 작가(미술가)가 사는 동네 성북동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동을 소박한 축제로 풀어 내기 위해서다. “성북동엔 친근하기 그지없는 ‘우리 동네’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요. 모두가 문 열어 놓고 허물없이 소통하는 모습이라든지, 자연스러운 동네 풍경으로 녹아든 서울성곽의 모습에서 이 동네가 가진 ‘이야기’의 힘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이 교수는 성북동 북정성곽마을에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성을 발견했다. 지난 2000년부터 창의공동체문화를 연구해 온 이혜경 교수에게 북정성곽마을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보물상자처럼 느껴졌다. “1998년부터 국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동시에 학교가 자리잡은 동네인 정릉, 성북구에 대해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동네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역문화에 대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를요. 그러한 모색에 대한 해답을 성북동 북정성곽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오래된 동네와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빚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지요.”

이혜경 교수는 뜻을 같이하는 문화예술인, 그리고 제자들과 2009년 성북동 월월축제를 시작했다. ‘월월’이라는 축제 이름은 ‘담’을 뜻하는 영어 wall, ‘뛰어넘다’는 뜻의 한자 越, 달을 의미하는 한자 月 등 여러 가지 글자로 풀이할 수 있다. 북정성곽마을의 소중한 유산인 서울성곽 담벼락, 그리고 밤하늘을 밝히는 고즈넉한 달, 서로의 경계를 허물없이 뛰어넘는 자유로운 소통에의 바람 등 ‘월월’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다채로운 모습이 축제 구석구석 자리잡았다. 2009년 제1회 월월축제의 테마는 ‘달빛 스케치’. 2010년 제2회 월월축제의 테마는 ‘별빛 멜로디’였다. 상쾌한 가을 밤바람 속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복한 마을 축제 한마당이 펼쳐졌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은 물론 자원봉사에 나선 예술가들과 지역주민이 함께 벽화를 그리고 사진을 찍었으며 연극을 만들었다. 마을은 거대한 갤러리이자 무대로 변신해 축제의 마당이 되었다.

 

노을빛 깃들 때 축제 한마당이 열리고

 

2011년 10월 29일 열린 제3회 월월축제의 테마는 ‘노을빛 하모니’. “재작년과 작년 축제가 마을과 친해지고 마을 주민들의 삶 속에서 예술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올해 축제는 마을의 사람과 이야기가 세상을 향해 말을 건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정성곽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연극이나 낭독과 같은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죠.” 이 교수의 설명이다.

올해 월월축제에서는 성북구 소재 연극단체가 마을 어르신과 함께 공동창작으로 ‘어르신 인생 이야기 연극제’를 펼쳤다. 그리고 성북구 소재 역사문화공간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 상허 이태준 선생의 수연산방, 이종석 별장(현 덕수교회) 등에서 시인 장석남 씨, 배우 오광록 씨, 무용가 성애순 씨 등이 시와 소설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성북구내 각국 대사관과 연계해 세계 동화책 전시 및 구연, 재즈, 국악, 클래식이 함께하는 콘서트를 개최했다. 마을 곳곳 일상적인 풍경과 오래된 고택은 살아 숨을 쉬는 이야기의 무대로 변신했다. 생활이 있던 공간은 축제를 통해 흥겨움과 어울림이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사실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랍니다.” 이혜경 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창의성의 원천은 뜻밖에도 결핍에서 비롯했다. “동네 구석구석을 무대로 변신시키고, 고택을 낭독의 무대로 만든 것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였어요. 무대를 세우고 조명을 설치하는 것도 비용이 꽤 되니까요. 어차피 주어진 예산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니,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이 고민해요.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들곤 해요. 오히려 부족함이 있기에 더 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를테면 올해 어르신 이야기 연극을 만들면서 어르신들께 ‘동네에서 자신의 무대로 삼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짚어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뜻밖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저희는 그냥 무심히 보고 지나쳤는데, 어르신 입장에선 그 장소, 그 자리의 의미가 각별했던 거죠.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동네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뜻밖의 창의성을 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니까요.”

 


 

예진정한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을 꿈꾼다

 

더불어 이혜경 교수는 마을축제 기획에 있어 ‘소통’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마을 축제는 ‘소통의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마을 주민과 소통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축제를 만들 수 없죠. 마을 자체에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끼리 항상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하고, 축제의 지원 주체인 구청 등 관(官)과도 원활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죠. 현장에 나가서 마을 어르신들 마음 여는 것이 굉장히 힘들거든요. 마을 축제를 찬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심하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마을의 해묵은 갈등이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거지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고 같이 일하는 활동가나 제자들 역시 소통이 힘들어 마음 다친 경험이 있어요. 그렇지만 제겐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마을의 단 한 사람이라도 저와 뜻을 같이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 되고, 두 사람이 세 사람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건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에요.”

그저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은 모두 역사성과 고유성을 지닌다. 이혜경 교수는 거창한 테마를 가진 축제, 연예인이 와서 유행가 한 곡 부르고 가는 축제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가장 ‘우리답게’ 만드는 축제를 꿈꾼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역에서 우러난 고유 콘텐츠가 많이 부족해요.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축제를 만들고 있지만 지역과 관계없는 획일화된 문화, 혹은 상업성이 지나쳐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죠. 월월축제가 앞으로 주민에게서 비롯되어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문화 콘텐츠로 되었으면 합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역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어요. 그래서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이 의미를 가지죠. 앞으로도 축제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북정성곽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해요.”

인터뷰를 정리하며 이혜경 교수에게 ‘월월축제는 OOO이다.’라는 정의를 부탁했다. “월월축제는 ‘모판’이에요. 농촌에서 모내기 할 때 미리 모판을 준비하듯이, 북정성곽마을에서 펼쳐지는 우리들의 ‘축제 실험’이 케이스 스터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를 통해 장차 더 많은 지역 축제가 만들어진다면 좋겠습니다.” 북정성곽마을 사람들의 정(情)과 이야기에 예술을 더해 세상과의 소통에 나선 사람, 이혜경 교수의 웃음이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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