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감성으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예술교육 – <드림 소사이어티>

글_남미진(서울문화재단 정책연구팀)
롤프 옌센(Rolf Jensen)의 <드림 소사이어티>,
(한국능률협회, 2000)
문화예술교육, 문화교육, 예술교육….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몇 년 전부터 문화예술계에 모아지기 시작한 관심은 요즘에는 피부로도 자주 느낄 정도가 됐다. 문화관광부에 문화예술교육과가 생기고 재단법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되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서울문화재단에서도 별도의 부서까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예술교육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기울이고 있다. 왜 이렇게 예술교육에 관심이 쏠리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리로들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

문화예술교육과 미래학?
그런 차원에서 미래학 관련 경영도서로 알려져 있는 <드림 소사이어티>를 다시 꺼내 보았다. 뜬금없이 웬 미래학이냐고? 예술교육은 현재진행형이면서 또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쳐 그 다음에 올, 혹은 이미 와서 진행 중인 사회의 특징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말한 미래는 21세기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 미래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존재할 미래의 사회에 대해 살펴보면서 거기에 왜 예술교육이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교육이 어떤 것을 더 포괄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예술을 학습함으로써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각자는 날마다의 삶을 살면서 하루하루 자기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어떤 이는 기억에 남는 삶을 싸이

월드 미니홈피에 디카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다른 이는 아기자기한 일기장을 사서 또박또박 글로 적어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사진이나 글로 남기는 것만이 자기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일까? 연극이든, 무용이든, 음악이든, 시각예술이든 예술을 학습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은 더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던 이가 오카리나로 멜로디를 만들어내며 회상에 젖어들게 되기도 하고, 연극 대사를 외며 막혔던 감수성이 터져 수다쟁이가 되기도 한다. 예술 행위는 어떻게 풀어낼지를 몰라서 가슴 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한 가지 방법으로만 표현하며 한쪽으로만 기울었던 마음과 시선을 다른 쪽에도 기울일 수 있게 도와준다.
<드림 소사이어티>의 부제는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이다. 즉, 이미 우리 사회 속에서 현재 진행 중이면서 한편으로 우리에게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미래사회는 더 이상 정보와 지식만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라 꿈과 감성이 중요시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또 다른 부제는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담겨 있는 멋진 이야기를 팔아라!’이다. 꿈과 감성이 담겨 있는 이야기가 중시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을 학습하면서 우리가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

덴마크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장이자 이 책의 저자인 롤프 옌센(Rolf Jensen)은 드림 소사이어티의 시장을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위한 시장으로 말하면서 다음의 6가지로 정의한다. 모험 판매의 시장, 연대감.친밀감.우정 그리고 사랑을 위한 시장, 관심의 시장, ‘나는 누구인가(Who-am-I)’의 시장, 마음의 평안을 위한 시장, 신념을 위한 시장이 그것이다. 이는 기업을 위한 마케팅의 전략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지향점을 생각해 보는 다른 시각을 시사해 주는 면도 있다. 지난 6월에 전문예술인을 위한 재교육의 일환으로 프랑스 꼬메디아델라르떼 초청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일부 프로그램은 일반인과 청소년, 어린이를 위한 영어연극 워크숍으로 진행한 일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소재로 진행된 영어연극 워크숍에 필자도 같이 참석했는데, 워크숍 첫날 참석자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뭔가 호기심 가득하면서도 긴장해 있던 그 표정들을 말이다. 워크숍은 일반인이 연극의 기초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진행되었고, 표정연기, 즉흥연기, 마임연기 등 강사들의 요구에 따라 차츰차츰 연극의 묘미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영어교사, 디자이너, 행정가, 대학생, 주부 등 다양한 참가자들은 연극경험이라는 ‘모험’에 도전을 한 것이었고, 그 결과는 맥베스, 덩컨왕, 뱅코, 레이디 맥베스, 마녀 등의 역할을 각자 맡아 대사를 외고 몸짓연기를 하며 짧으나마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단지 공연을 해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해본 즉흥연기 등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들은 닫혀 있던 마음을 허무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친해지고 우정을 쌓으며 형성된 연대감은 워크숍 참여자 사이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감성과 꿈을 중시한다는 6가지 미래시장의 특징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예술교육은 충족시키고 있었다.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위한 시장

롤프 옌센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모험이야기를 제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사람에 따라 도전하는 모험의 크기는 알프스 산, 에베레스트 산 등 소-중-대-특대로 다양하다고 한다. 예술교육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을 살펴보면 예술교육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도전으로 예술학습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혼자서 조용히 악기를 배우는 이도 있고, 과감히 밸리 댄스에 도전해 무대에서의 단체공연으로 모험의 결과를 뿌듯이 드러내는 이도 있다. 모험의 결과는 스스로 학습한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기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 표현방식을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자기효능감을 더불어 느끼며 보다 큰 만족감을 누리기도 한다. 또한 예술학습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공동작업을 통해 연대감, 친밀감, 우정을 형성하게 되는 것도 현대인들의 감성적인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키는 면이 있다.
또한 저자는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제공하려는 욕구가 있다면서 ‘다마고찌’의 예를 들고 있는데, 예술의 학습과정도 이와 통하는 면이 있다. 예술을 배우는 것은 일회성이 아니다. 만약 플룻을 배운다면 꾸준하게 악기를 가까이 하며 연습을 할 필요도 있지만, 악기가 녹슬지 않도록 소중히 다루며 닦아주고 아껴줄 필요도 있다. 예술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계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스스로 기능도 익힐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몸과 정신, 관련된 도구들, 연관된 사람들 등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요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신념을 갖기

‘나는 얼마나 활기찬 사람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드림 소사이어티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부자이다.’라고 롤프 옌센은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미래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 ‘나는 누구인가(Who-am-I)’의 시장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석이나 명품 같은 귀중한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기의 가치를 나타내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술의 학습활동은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앞서 말한 영어연극 워크숍에 고등학교 1,2학년 남학생 11명이 참석했었다. 평일 저녁에 진행된 워크숍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참석한 아이들에게 첫날 주어진 과제는 ‘문’을 주제로 한 즉흥연기였다. 뭔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와서 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연기과제였는데, 처음 시도에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문을 두드리고는 ‘엄마, 나 일등 했어’ 혹은 ‘엄마, 나 백점 맞았어’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최고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순간 나는 앞이 캄캄해 지는 듯했다. 한참 꿈 많고 생각 많아야 할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즐거운 소식이란 것이 겨우 시험 결과에 좌지우지되는 것이라니.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가져오는 것이 저런 것이었구나’라고 피부에 닿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황한 캐나다와 영국 출신의 강사들은 아이들의 생각을 풀어주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도와주기 위해 이런 저런 신체활동과 놀이, 표정연기, 상황표현 등으로 워크숍을 이끌어 갔고, 하루가 지나서 다시 진행한 즉흥연기 수업에서는 훨씬 더 다양하고 재밌는 표현들이 튀어 나왔다. 예술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기효능감, 즉 자기의 가치를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이라는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 워크숍을 마무리 지으면서 가장 뿌듯했던 점은 11명의 고등학교 아이들이 연극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래사회에서 환경, 동물, 인권보호 등에 신념을 가진 기업이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를 예술교육과 연관짓자면, 더 이상 기능이나 결과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얻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기 삶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신념 있는 예술교육이 앞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야기가 담긴 예술교육, 감성을 살려내는 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하나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된다. 예술교육은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향형이다. 일반인이든 예술인이든 각각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예술과의 밀접한 만남을 통해 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이 그 멋진 미래를 열어가기를 바란다.

남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