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한 소리의 향연을 만들어가는 타악그룹 공명과 만나다

인터뷰_박유신(명덕초등학교 교사)

예술가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통해 만날 때 가장 빛나는 존재이다. 미술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만날 때 훨씬 진솔한 그들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 타악그룹 공명(강선일, 박승원, 송경근, 조민수)’의 인터뷰 역시 글로 소개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란 감이 있다. 인터뷰의 많은 시간이 그들이 창작한 악기의 소리를 들어보고 ‘느끼는’ 데에 할애되었기 때문이다.

공명의 음악은 새로운 소리였다. 그 안에는 우리가 언제나 듣던, 그러나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들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자연 속으로 파고들었다. 고도로 문명화된 음악들이 공간을 인위적으로 디자인한다면, 공명의 음악은 내가 속해있는 시공간과 모든 감각을 자연스럽게 음악 속에, 본질적인 감성 속에 스며들게 한다고나 할까. 국악과도 다르고 현대음악과도 다르지만, 민속음악만이 지닐 수 있는 생명력이 그들의 음악에는 있다. 그러나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 이렇게 새롭고 정겨운 소리로 음악을 만든 사람들은 누굴까 라는 호기심을 안고 작업실을 찾아보니, 공명은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인상 좋은 네 명의 젊은이들이었다. 작업실 한가운데 대나무로 만들어진 악기가 있었다. 바로 ‘공명’ 이다.

“처음에 저희가 밴드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군대를 다녀와서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서 우리만의 즐거운 음악을 만들어보자 하다가 이 악기(공명)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면서 이제까지 활동하게 된 힘이 됐지요.”

공명은 대나무로 만든 유율타악기이다. 직경이 15센티미터 가량 되는 대나무를 마디에 따라 각기 다른 크기로 잘라 다양한 음높이를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악기의 이름인 공명은 ‘함께 울린다 혹은 함께 밝아진다’ 라는 의미로 그들의 음악적 바램을 담고 있다. 공명 이외에도 작업실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있었다. 각각 크기가 다른 나무 조각을 모아 흔들어 소리를 내는 악기, 우리나라의 전통 북을 재창조한 잔향이 아름다운 북, 가볍게 흔들기만 해도 초자연적인 소리가 나는 썬더드럼이나 이들이 최초로 개발한 전자장구까지 보기만 해도 신기했다. 그들은 소리가 나는 것이라면 뭐든지 악기로 만들고 싶어 하고, 새로운 음색을 만들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것 같았다. 필자도 잠깐 썬더드럼을 연주하며 그들과의 음악적 공명에 동참하였다. 겉보기에는 아주 단순한 악기들이고, 간단한 연주인데, 합주를 통해 느껴지는 음악적 공감은 공간뿐 아니라 뼛속 깊은 곳까지 가득 채우는 듯 하였다.

공명의 악기들이 아주 멋지고 감동적입니다. 이렇게 악기를 제작하시고 여러 악기를 실험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식을 만들 때 새로운 재료가 있으면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악기가 있다는 것은 표현에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음악 하시는 분들이 새로운 소리에 대해서 굉장히 호기심도 많아요. 아마 저희들처럼 악기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공명의 음악을 듣다보면 원시적인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 음악 같으면서도 훨씬 더 생동감 있고 자연친화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국악기가 자연적인 소재로 만들어져 있잖아요. 저희가 만든 악기들도 자연 소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소리 자체가 부담이 없죠. 나무 소리도 있고, 대나무 소리도 있고요. 편안하고 자연에서 들을법한 건데 악기로 만들어 음색을 내기 때문일 거예요.

네 분 모두 우리 음악을 전공하셨는데, 직접 만드신 악기들과 하시는 음악이나 퍼포먼스들이 국악의 어떤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가요?
저희 음악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모습이 섞여 있어요. 전통에도 예전부터 내려오던 관습과 외국 문명의 영향이 섞이곤 하잖아요. 저희는 전통음악을 사랑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이고,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던 현대적인 모습들이 담겨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것이 전통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단 창작이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싶어요. 저희는 특별히 전통음악을 꼭 계승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공명의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연습을 통해서 음악을 만들어나가요. 그것을 연습하고 완성해가는 도중에 암기가 되고 습득이 되기 때문에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보통 밴드들과는 조금 달라요. 멤버들이 오랜 시간을 만나야 하고요. 지금도 8년째 만나고 있는데, 곡을 하나 만들더라도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립니다. 만나서 작업하며 조금씩 발전시켜가는 식으로 곡을 만들고 있어요. 그것이 우리 공명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색과 음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악기 만드는 작업이 있어요. 가령 전통북을 치다가 또 다른 뭐가 없을까 고민하면서 북을 만들었어요. 실질적으로 북의 개량인진 모르지만 원해서 만든 악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가 있죠. 공명의 음악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들 악기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악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음악이 더 풍성해지니까.

작업실에 원시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악기가 많이 보입니다. 아날로그 음악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시죠?
아날로그 음악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가 개발한 전자장구가 있는데요, 연주 형태는 전통적이지만 전통 국악기 소리를 샘플링한 음원을 가진 전자악기에요. 결과적으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여서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인데,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시고 좋아하시더라고요. 디지털의 힘을 빌리면 소수의 연주자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두 명으로도 사물놀이가 가능해요. 혼자 태평소만 불면 정말 실감나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들을 수 있지만, 사물 반주에 맞춰서 풍물의 느낌을 자아낼 수 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북 치고 장구 치고 둘이서 다 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저희 음악에 있어서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공연을 하고 계신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재미있다’는 반응이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저희들도 그렇고요. 사실 국내나 해외나 별 차이는 없어요.

타 장르보다는 공명의 악기와 음악들이 더욱 글로벌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예. 저희 음악을 가지고 퓨전국악이니 월드뮤직이니 얘기들을 하는데, 저희는 그냥 하고 싶은 무한 공간의 음악을 하는 것뿐이에요. 소리를 낼 수 있는 걸 조합해서 앙상블을 만들고 감성을 실어서 나누어주는 일이죠. 거기엔 장르도 없어요. 시끄러운 소리든지 아주 작은 소리든지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있다면 보고 듣는 사람들도, 객석에서도 같이 통하지 않을까요? 순수한 마음은 세계 어디든지 통해요.

무한대로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그리하여 ‘글로벌’하기까지 한 공명의 음악이 우리 음악과 가까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국악도 요즘 유행하는 월드뮤직의 일종인 셈이다. 그렇게 글로벌할 수 있는 국악을 우리는 왜 이리 어렵고 낯설게 느끼는 것일까?

사실 이제까지 국악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어렵고 낯설게 생각해왔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일지라도 편하게 즐기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예전에 누군가가 대금을 연주하는 걸 직접 듣고 국악에 매료되었어요. ‘우리나라 악기에서 저런 소리, 저런 음색이 나는구나!’ 라고 느끼면서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생겼지요. 그런 경험은 중요하지만 모두가 할 수는 없지요. 한 번 장단에 맞춰 춤을 춰 본다면 백 퍼센트가 다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만 그중에 누군가 동요되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누군가는 대금 소리에 매료되고, 또 어떤 사람은 바이올린에 매료되고…. 지금까지는 음악교육이라 하면 서양음악을 가르쳐줘야 하는 걸로 여겨졌지만, 국악 쪽에서도 교육적인 노력이 꾸준하게 이루어진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저도 사실 그전에 TV에 국악프로그램이 나오면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학교의 음악교육은 사실 국악이 서양음악 못지않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긴장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국악교육의 대안이 있을까요?
현재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재들을 보면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받게 되는 음악교육의 수준이 낮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은 소수민족 음악과 여러 가지 음악이 공존함에도 서양음악이 전체 음악을 포괄하는 듯한 구조를 갖고 있어요. 국악을 배우려면 전통음악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해요. 제가 피리 레슨을 받을 때 선생님이 장단을 쳐주고, 거기에 맞추어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영재교육이라는 게 다른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배운다면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대해 즐거움을 맛보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그럴 여지가 없어요. 넓게만 공부하고 깊게 가볼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그게 좀 아쉬워요. 흥을 느끼기 전에 그 다음으로 나가 버리는 거죠. 애초부터 음악교육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관심이 생긴 사람을 지속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게 된다면 음악교육이 성공하는 거겠죠.

재미와 흥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로군요.
국악교육이라는 게 음악시간처럼 선생님이 피아노 치고 단체로 가면 재미가 없거든요. 1대1로 조금 배우더라도 제대로 배우고 느낄 수 있어야 재밌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국악전공 선생님들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음악교과서 내용의 반이 국악인데 실제로는 전문가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도 자신들이 배워서 가르치기 때문에 자세한 음악적인 경험을 얘기할 수 없을 겁니다. 가령 ‘정간보’라는 걸 보여주면서 교사가 그 음악에 대한 음악적 경험, 바다와 산의 느낌 이런 것들을 재미있게 얘기한다면 그와 함께 음악을 배운 것이 남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연주할 때 힘이 되고 동기가 될 수 있을 텐데, ‘이건 세종대왕이 만든 거고, 엇박자인데 3으로 나눠서 8분음표 씩 계산해라’ 이런 식으로 하면 재미가 없어지죠.
독일에 갔을 때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공연이 굉장히 수준 있는 연주라는 거였어요. 국악 같은 경우 좋은 공연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국악 강사풀제가 활성화되면 분야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실제 수업시간보다 특별활동 시간이 늘어나야 그런 교육은 더 활성화될 수 있지요.

만약 제가 내년에 아이들과 함께 악기를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가을에 발표회를 한다면 어떤 악기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을까요? 가능할까요?
악기야 많죠. 주위에 널려있는 모든 것이 악기가 될 수 있어요. 두드리면 소리가 날수 있는 건 무조건 다 가능해요. 이걸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거죠. 신문지나 페트병이나 주위의 많은 사물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런 것들로 악기를 만들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소리가 더 잘 날까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모든 소리에는 색깔이 있고 성격이 있다, 여러 가지로 소리를 내보고 네가 가진 소리와 내가 가진 소리를 같이 내보자,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음악교육에 있어서 현재 ICT교육(정보통신기술교육)이 문제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에서 ‘편종소리’를 클릭하면 땡, ‘북소리’ 하면 땡 하는 식의 교육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열두 가지 색 크레파스를 쓰면 열두 가지 색밖에 몰라요.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죠. 북도 연주자가 여러 가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어떤 연주자는 북을 가지고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걸 표현하기도 해요. 악기를 연주하면서 아이가 여러 가지 소리가 난다는 걸 경험해보고, 소리의 질감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단순히 하나의 소리만 알려주니까 ‘난 알았어’ 하고 끝나는 거죠.

향후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내년부터 새 앨범 준비를 하고 숙대 대학원에서 ‘타악과 창작음악’이라는 주제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전공에 제한 없이 학생을 받아서 악기를 만들고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는 경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국악 쪽에는 퓨전음악을 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많이 양성되고 있고, 앞으로는 이런 음악들도 평범하고 대중적으로 스며들 것인데 그때 가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겠죠. 저희는 그런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인데, 지금은 음악적으로 기본이 된 사람들을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고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주자들이 교육을 한다는 건, 즉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나름대로 교재도 만들어야 하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준비가 되면 이런 교육은 초등학교에서도 굉장히 좋아할 것 같아요

그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음악세계에 대해 단지 소리를 만드는 즐거움, 단순함에서 오는 무궁무진함이라고 말한다. 공명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기에 그들은 자신의 음악이 예쁘다고 말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음악에 대한 기쁨은 공명되어 전해진다. 모든 음악의 본질이 그렇다면, 학교 음악교육은 어딘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음악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속한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명이란, 음악의 본질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키워드 중 하나일는지도 모른다. 소리로서 함께 공감하고 울려나가는 것. 공명과 긴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직접 듣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음악과 소리에 대한 사랑을 전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들의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많은 공연에서 그들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