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회주의와 ‘작은’ 예술, ‘작은’ 교육을 꿈꾸다 –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글 l 이윤희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1834년에 태어나 1896년에 생을 마감했던, 19세기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삶을 기술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개마고원)이라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법학자 박홍규가 그에 대해 쓴 평전이다. 박홍규는 법을 연구하는 학자이고 법학과 교수이지만 미술사에 대한 커다란 조예로 몇 권의 미술사 관련 연구서들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활동은 (미술계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 분야 학계의 테두리 밖에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내는 재야의 선비와도 같아 그의 활동이 널리 회자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필자를 포함하여 그러한 그의 행적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윌리엄 모리스가 우리나라에 아직도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간의 짧은 소개들도 대부분 오해의 소지를 가졌다는 지적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윌리엄 모리스의 이름은 19세기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이론적 실천적 지도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미술사 관련 서적들에서 그는, 당대의 삶의 형태와 당대가 낳은 사물들의 조악함을 비판했지만 중세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인 제안을 하여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었던 자로 평가되어 왔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분골쇄신했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고 삶의 기본이 되는 생활의 양식으로부터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실제로는 벽지 디자인 같은 인테리어에나 성과물을 남겼던 인물 정도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박홍규는 윌리엄 모리스의 이상들, 당대에 실현될 수 없었고 현재도 여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그 이야기들이,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꿈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삶으로의 복귀


그는 자신이 살았던 사회를 아름답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자 했다.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삶,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누려야만 할 삶의 모습이라고 보았고, 그가 생각했던 이러한 삶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 자유로운 노동과 삶에 밀착된 예술을 말했다.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실제 모리스는 자신의 실천적 예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장을 설립해서 노동자들을 고용했지만, 모리스 공장의 노동자들 역시 모리스의 엄격한 감시 체제 속에서 ‘자유로운 노동’을 누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삶에 밀착된 예술을 실현하기 위한 모리스 공장의 제품들은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이것들이 모리스의 이상적 사고에 대해 쉽게 주어지는 주된 비판의 지점이다. 그 모순 덩어리의 행적을 바라보며 그의 꿈을 비웃는 자들은 책을 덮어도 좋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불쌍한 자들이라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소박한 간소함을 경멸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듦으로써 소비를 창출하고, 그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을 함으로써 사회를 유지시킨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소비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으며, 소비와 생산의 메커니즘에서 떨어져 있는 자는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정녕 이와 다른 형태의 삶은 불가능한가, 하는 의문은 자본주의의 생성 이래로 늘상 있어왔으며, 이러한 의문에 대한 극단적인 해답과 실천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했다.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실패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제기되었던 상황은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리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모리스가 추구한 이상 사회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간소한 생활의 복귀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소박함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생활을 복잡한 의존으로 둘러싸게 만들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살게 하며, 그것은 결국 우리가 자유인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다 가질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만큼만 내 것으로 가지고 소박하고 간소하게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여 모은 돈으로라도 값비싼 세칭 ‘명품’ 가방을 사야 하는 아이들은 자본주의의 자손들이다. 필요한 것을 만들거나 구매하여 아끼고 아껴 손때를 입히고 평생을 쓰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의 운용에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러한 행위가 대량소비사회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모리스는 말하고 있다. 모리스가 중세로 돌아가자고 할 때, 그것은 중세 건축이나 예술에 대한 경탄과 바람직한 공동체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허위 없고 간소한 중세 민중의 삶 속에서 이 시대의 ‘대안’을 찾은 까닭이기도 했다.


만인이 향유하고 나누어가질 수 있는 예술


또한 모리스는 예술이 그러한 소박하고 간소한 삶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는 모두 형태가 있는데, 그 형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추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것이야말로 인간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 인간에게 참된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식예술, 즉 ‘일상생활 속 몸 주위의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을 소예술(Less Art)이라 지칭했는데, 이는 그가 대예술(More Art)이라 칭하는 회화와 조각에 대응되는 건축, 도장, 목공, 도자기, 유리, 직물, 카페트, 가구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리스가 장식예술을 소예술이라 부른 것은 장식의 가치를 낮게 보아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장식 없이는 예술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소예술의 부흥은 예술의 총체적이고도 종합적인 부흥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리스는 자신이 명명한 소예술과 대예술이 분열되는 현상을 통해 예술의 시대적 위기를 간파했고, 당시의 예술 상황을 뿌리 없는 나무에 비유하기도 했다. 만인이 향유하고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는 문제의식 속에서 모리스는 만드는 자나 사용하는 자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작은 예술, 생활 속의 예술이 가능하며 그것이 모든 예술의 근본이라고 여겼다.


그의 미래 계획 속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아이들은 끼리끼리 자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부모의 보호가 상대적으로 적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더욱 현명하고 천재적인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며 공동체의 전통을 쉽게 익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 의하면 교육은 언제나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므로 결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아이들이 특정 과목을 배우고 싶지 않다면 그것 또한 가르쳐서는 안 되고, 아이들의 취미를 강제하여도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특히 학교에서 학습보다는 인간관계를 통해 익히는 말하기, 책을 통한 지식 배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익히는 생활을 통한 신체적 기능의 숙련을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테면 수영이나 목공, 양털 깎기, 빵 굽기, 재봉 등은 누구나 짧은 시간에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평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삶의 도구가 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 기능을 키우느라 학문적 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학교나 도서관 또는 충분한 자유 시간을 통하여 학문을 익힐 기회는 평생 부여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 이러한 예술, 이러한 교육은 서로 보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리스가 꿈꾸는 이상 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묘하게도, 그가 말하는 사회와 예술과 교육은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의 소규모 자발적인 운동들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대안적 사회운동과 모리스의 이상


이를테면 자발성을 중시하고 형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의 교육관은 오늘날의 대안교육 시스템과도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리 사회는 머릿속에 대량의 정보와 지식을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구겨 넣을 수 있느냐로 아이들의 현재를 판가름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아이들의 행복과는 무관하고 그 판가름된 결과가 아이들이 지닌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다고 본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그에 대해 딱 부러지는 대안이라는 것도 존재하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끄는 형태의 교육보다 아이들의 또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의 차이가 존재함을 알아주는 것, 그리고 배울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되 배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시하는 모리스의 견해는 충분히 귀기울일만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인생에 어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작은’ 교육이 아이의 가능성을 짓밟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소규모 공동체 운동이 지향하는 생태주의와 모리스가 지향했던 이상사회는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띤다. 간소하고 소박한 삶의 지향은, 국가의 정체를 바꾸거나 계급 혁명을 말하는 거대한 운동에 비하면 형편없이 힘없고 작게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박홍규가 ‘생활사회주의’라고 명명한 그것은 일종의 ‘작은’ 사회주의, 즉 나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스가 꿈꾸었던 ‘작은’ 사회주의 안에서 나의 손으로 만드는 ‘작은’ 예술품들과 함께, 활기를 잃지 않는 ‘작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 그 곳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꿈이기도 하다. 먼저 꿈꾼 자가 있어서 우리의 꿈은 더욱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