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운기씨가 몸담고 있는 스페이스 빔(space Beam)은 인천의 지역문화와 미술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대안미술, 공공미술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이자 공간이다. 그는 미술 작가이고 활동가이며, 프로그램 기획자이자 스페이스 빔 공동운영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서양화, 동양화라는 구분에 맞추어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부한다. 미술이 美術이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공간에 개입하기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어린이 도서관의 건축가로 유명하다. 아르떼에서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아르떼 웹진 땡땡 8호),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느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장소가 있는 곳이 곧 공간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이 내 삶을 이루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어느 곳도 될 수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있거나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을 알아야 한다면, 만들어진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알아야 하고 내가 머물고 사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갤러리의 예를 들어보자. 입구에서부터 바로 시작되는 전시실을 가지고 있는 갤러리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아늑한 조명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언제나 조용하고, 작품을 만지거나 해서는 안 되고 눈으로 감상해야 하는 곳이다. 갤러리에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있다. 갤러리가 설정해놓은 공간을 사용자가 바꿀 수는 없다. 만들어진 공간대로 자신을 맞추어 행동한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임은 알지만, 내가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개인의 일상적인 공간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민운기씨는 이것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공간에 개입한다는 것은 공간을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공간이 제공하는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공간 작동 방식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하는 것이다. 공간이란 것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바꾸기 힘들기 때문에 공간 개입에 대한 사전작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만들어질 공간에 개인이 사전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개입단계를 다양화해야 하고, 그럼으로 해서 공간에서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술에 개입하기 : 일상으로의 초대
여름방학이 되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이 미술관과 공연장에 많이 몰린다. 다녀왔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도록과 팜플렛을 구입한다. 미술관과 공연장은 때 아닌 특수를 누리면서도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노력하지 않는다. 여름방학 특수를 노린 상업 전시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은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학생들을 단지 관람자로만 한정지어 놓고 제도화된 공간에 가서 전문작가가 만들어놓은 것을 체험하는 것만이 미술의 전형이 아니다. 민운기씨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것도 미술이다’라는 프로그램 기획을 생각하게 되셨다고 한다. 학생들이 제도화된 공간에서 남의 것을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공간, 환경에 개입할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학기 중에 실제 작품을 직접 볼 수 없었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미술이란 것이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포함한 제도화된 공간에 가서 그것을 담당하는 특별한 사람들, 전문가들이 있다는 전제하에 그 사람들이 만든 것을 보는 것이 유일하다는 기존의 관념을 재확인시켜주는 것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미술이다
이렇게 공간과 미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르떼 온라인 공모 4차 우수사례로 선정된 ‘이것도 미술이다’가 시작되게 되었다. 프로그램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에 대한 관념을 깨고 자신의 일상에서 느끼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미술관이라는 제도화된 공간개념을 깨고 드러내는 프로그램이다.
2003년 3월부터 시작한 ‘이것도 미술이다’는 스페이스 빔이 기획안을 만들어 인천시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아 각급 학교 미술선생님들께 협조 공문을 보내 관심 있는 10여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하였다. 워크숍/ 아트캠프/ 전시/ 포럼/ 레포트 5개영역이 묶여 있다. 월 1회의 워크숍을 통해 미술작가와 교사들이 함께 이러한 미술활동에 대한 필요성과 담론을 모으고, 아트캠프에서 진행 가능한 주제를 만들어 보았다. 아트캠프에서는 3-4명을 한 조로 모아 작가와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주제를 가지고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표현방법을 고민하고 직접 몸으로 작품을 느끼고 만들면서 미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조만의 작업만이 아니라 다른 조의 작업을 같이 보면서 학생들 사이에 묘한 경쟁심리가 생기면서 오히려 상승효과가 나타났으며, 또한 다른 조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선, 새로운 방법을 학생들 스스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보통 미술을 하는 작가라고 하면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예술관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공공미술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면서 그 동안 자기 완결적인 작품 활동을 주로 해왔던 작가들에게는 이런 작업이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작업이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학생들과 연계할 수 있는가, 작가로서 쌓아온 성과물을 활용할 수 있을까 등의 측면을 워크숍을 통해 극복하고 통합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교사와 작가, 학생들이 한 조가 되어 활동을 하다 보니,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성립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도 미술이다’ 프로그램에서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는 역할로 규정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활동에서 학생들이 스스로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교사와 작가는 그것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수동적으로만 길들여졌던 아이들을 적극적인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하기까지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가장 힘든 부분이 아닐까 한다. 민운기씨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미술을 경험해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인데 아이들의 반응이 없지는 않을까, 아이들 스스로도 동기부여가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등등의 많은 걱정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프로그램을 좀 더 정교하게 짜야하고,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작가들과 공감대와 교육마인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프로그램을 즐겁게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무조건 아이들에게 맡긴다고 해서 교육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제를 스스로 설정하게끔 내버려둘 것인가, 어떤 주제를 던져놓고 풀어가게 할 것인가, 미리 교사와 학생들이 한 개 조가 되서 각자 어떤 것을 하겠다는 기획안을 접수 받아 선정을 하든가, 특정 공간을 하나의 텍스트로 선정해서 읽기와 개입을 시도할 것인가 등등의 여러 가지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것도 미술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민운기씨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당시부터 이 프로그램이 하나의 전례가 되어 보급되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공교육과 문화기반시설의 연계를 이야기하지만, 그리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는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것도 미술이다’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선생님들 중의 한 분은 학교 현장에 프로그램을 응용하여 진행한 바 있다고 한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학교라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혹은 자신의 삶의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표현해 보는 것이다. 굳이 전시라는 형태를 갖지 않더라도 각자의 관심사들을 찾아보고, 경험하고, 분석해보는 작업들을 보드판 등을 이용해서 보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새로우면서도 교육적 효과가 있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기에 매우 힘든 현실에 많이 힘들어한다. 민운기씨는 그것을 극복해내고 실천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현실을 깨고 헤쳐 나가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찾아보면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내 삶의 일부분이 되는 미술, 그것이 미술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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