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영화창작센터 창시chang-c

찾아가는 영화창작센터 창시chang-c

신지승|영화창작센터 창시 디렉터

5톤 트럭 안에 마련된 디지털 편집실과 시사실
촬영, 조명 장비와 빔 프로젝터

바로 이곳은 영화를 함께 보고, 시나리오를 토론하고, 전문적인 영화창작의 진수(眞髓)를 농어촌의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 이름하여 움직이는 영화창작센터 창시changc이다.

경기도 양평군의 작은 면에 있는 어느 분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체학생수가 26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
그곳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짧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첫째 날, 시나리오 시간. 한 아이가 제출한 시나리오의 배경에 맥도날드가 나왔다. 나는 궁금해서 이곳에도 맥도날드가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맥도날드가 없었다. 차를 타고 2시간을 가도 나오지 않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가 그들의 상상력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은 도시중심적인 대중매체, 대중문화에 의해 도시적 상상력에 감염된 흔적들이었다고 보인다.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그들만의 생활적 상상력을 표현토록 하는 것이었다. 시나리오에서 그 형식이나 기호는 말하려는 주제와 진정성 다음에 위치하는 하위 개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나 주변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일기처럼 무념하게 표현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에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시나리오의 형식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였다.

둘째 날, 아이들은 “디지털 카메라”라는 고가(高價) 의 최첨단 제품이 단지 쉽게 다룰 수 있는 장난감이며, 글이나 말과 같은 표현의 도구임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카메라는 영화 만들기에서 이미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지만, 그러한 예술적인 측면보다는 우선은 빨간 단추를 누르면 찍히고 다시 한 번 더 누르면 기록을 멈추는 하나의 기계임을 가르쳐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카메라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촬영용어 등은 다른 지식과 정보들처럼 세월의 먼지같이 시간이 흐르면 쌓이는 경험적인 측면이 될 것이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는 얻기 힘든 것이다.

셋째 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기.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던 아이들이 점차 그 즐거움과 묘미를 깨우쳐가고 자기표현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온 또래의 아역연기자와 함께 연기연습을 하면서, 전문 연기자의 연기가 그들 스스로의 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자신감을 얻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넷째 날과 다섯 째 날, 촬영 시작! 모두가 감독이자 연기자이며 촬영감독에 조연출이 되는 날이었다.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지 않았다. 한 명이 한 컷씩 분담하여 총 26컷의 전체 신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레디~액션”을 외치고 몇 번씩 NG를 내면서 촬영과 연출을 했다. 저학년 아이들은 고학년 선배들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더 많은 노하우를 습득하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고사리 손들로 만들어가는 한 컷, 한 컷들은 공동 창작의 경험이기도 하였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토론 하고 각자의 역할을 스스로 정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립심과 더불어 협동의 중요성도 배웠을 것이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평소 어머니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 학교생활을 했던 다휜이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휠체어 달리(바퀴나 레일에 실은 카메라로 촬영하는 기법)쇼트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마지막 날. 26명 아이들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저녁 학교로 몰려오신다. 학교마당에서 삼겹살을 굽고 모처럼 만난 마을 이웃들과 소주도 나누며 아이들이 만들었다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전행사로 상업영화를 상영하다가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잔인한 장면에 순진한 여자아이들이 무서워 울면서 뛰쳐나간 것이다. 애써 덜(?) 선정적이고 좀 덜 자극적인 영화를 골랐건만…

드디어 그들의 영화가 상영되면서 모두들 긴장과 침묵 속에 숨을 죽인다. 일주일 동안 만든 그들의 영화. 친구들과 형 ,동생, 손자와 아들딸의 연기에 모두들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 찼다. 그 흔한 영화관 하나 없는 마을에서 즐겁고 재미있는 그들만의 영화가 상영된 것이다. 어떠한 영상 이론이나 기술도 없었던 농촌 아이들이 만든 단편영화, 예술이란 삶 속에서 꽃피웠을 때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움직이는 영화창작센터 창시의 커리큘럼이자 일주일간의 공동창작 목표였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쉬운 일은 외부의 시선이었다. 대도시 위주의 우리 사회는 영화라는 문화를 도시적인 것, 소비적인 것으로 왜곡하였다. 그러나 자연에서 배운 감수성과 도시적 획일화에 물들지 않은 농어촌 학생들도 문화예술창작의 어엿한 주체임을 믿는다. 가장 큰 극장은 자연과 인생이다. 그리고 배우는 그 아래 열정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다. “농어촌 이동 영화교육 ” 움직이는 영화창작 센터changc는 안 해도 되고, 하면 좋은, 방문 서비스 같은 편의적인 사안이 아니다. 문화교육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농어촌 아이들에게 아주 시급하고 꼭 필요한 창작 교육이다.

신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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