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부터 9일까지 2014 경기 국제문화예술교육 워크숍 ‘천국으로 가는_Stairway to Heaven’이 안산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렸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번 워크숍은 ‘우리는 어떻게 다름을 느끼고, 사유하는 법을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으로 ‘감각’에 주목한다. 머리보다는 몸, 이성보다는 감성, 오감을 넘은 육감. ‘조금은 다른 감각으로 사유하며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직접 탐험하며 느껴보자는 것이다. 말 그대로 2박 3일간 강의와 체험활동으로 다채롭게 구성된 ‘워크숍’이 열렸다.
아르떼365가 취재를 간 워크숍 첫날은 미술평론가인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의 강연 “황금우물과 장구(杖鼓) – ‘몸각’을 들깨우는 빛무리”로 문을 열었다. 김종길 팀장은 동양 문헌과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몸을 들깨우고 자기 안의 고유한 씨앗을 발견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짚어나갔다. 이어 진행된 일본, 한국 그리고 네팔의 사례발표에서는 우리가 지나쳤던 ‘숨은’ 혹은 ‘소외된’ 감각이나 이야기들을 다시 우리 삶의 감각으로 들여오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 데시마 섬, 지역문화로부터 시작되는 예술
리키 아키 작가(Rika Aki, Teshimanomado 아트스페이스 대표)는 일본 세토내해에 있는 작은 시골 섬 데시마에서 커뮤니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나오시마 섬 동쪽 가까이에 위치한 섬 데시마는, 1980년대 불법 산업폐기물이 버려져 아직까지 세척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땅이며, 한편으로는 버려진 섬들을 문화예술을 통해 재생시키고자 하는 일본의 지역진흥 정책지원사업의 현장이기도 하다.
리키 아키는 2년 전 지역진흥정책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 섬과 인연을 맺었다. 도쿄와 섬을 왔다 갔다 하기를 1년, 온전히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1년 전부터 아예 섬에 들어와 살고 있다. 지역의 문화 안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다시 지역과 공유하는 그녀는 요즘 지역민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낚시 도구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지역주민들이 오가며 머물 수 있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오래된 낚시 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 도구를 사용했던 동네 어르신들은 종종 어린 세대들에게 이 도구의 사용법과 자신들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예술’로 보였다. 도구의 조형미 때문이 아니다. 도구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 그리고 그것이 이끈 창조적 힘 때문이다.
“이 도구가 생기기 전을 상상해보세요. 그때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었겠죠. 말하자면 물고기는 미지의 세계였어요. 물고기가 저기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에 대한 삶의 필요가 있고, 그것을 잡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거예요. 이 세 가지 조건이 만나 상상력을 자극했고 결국 낚시 도구라는 창작물을 만들게 된 거잖아요. 이 도구들을 볼 때마다 당시 사람들이 가졌을 욕망과 그것이 이끌어낸 상상력과 창조성을 생각하면 너무 놀라워요.”
한국 제주도, 해녀학교를 만나는 재주 좋은 작가들
제주도에서 올라온 특별한 손님들도 있다. 제주도 사람 임명호 교장(제주한수풀해녀학교)과 육지에서 내려와 이제는 제주도 사람이 된 조원희, 김승환 작가(재주도 좋아)다. 제주한수풀해녀학교(이하 ‘해녀학교’)는 제주도의 해녀문화를 지속하고 전수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어 일반 시민들이 해녀문화를 배우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조원희, 김승환 작가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제주도가 좋아 제주도를 찾은 이들에게 해녀학교는 제주를 경험하는 구체적인 시작이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제주를 바라보고 또 그곳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중요한 경험적 밑거름이 되었다. 조원희 작가는 자맥질을 하며 바다 바깥이 아닌 속에서 바다가 직면한 문제를 만났고, 물속에서 온전히 자기 호흡으로 버티며 에너지를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자맥질과 스킨 스쿠버 다이빙의 차이점은 자기 숨으로 들어갔다가 그 숨을 남겨서 떠오르는 과정이에요. 잘하는 친구들은 몇 분씩 가기도 하지만 저는 숨이 짧아요. 내가 가진 숨의 길이를 확인하고, 자기가 가지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힘을 안배하고, 버리고, 가벼워져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에너지를 분배하는 힘과 방법을 지금 하는 작업이나 삶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원희, 김승환 작가는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면서 비치코밍(beachcombing, 해안가에 밀려든 쓰레기를 줍는 행위)개념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을 통해 제주의 바다를 지키고 보호하고 즐기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해녀학교 이후 제주에서 삶을 보내며 덜 벌고 덜 쓰며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자맥질하며 호흡과 에너지를 분배하는 방법이 고스란히 그들의 작업과 삶에 베어 들어간 것이다. 워크숍에서 소개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그들이 제주와 어떻게 호흡하며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2013년 ‘바라는 바다’ 비치코밍 네 번째 프로젝트 영상을 함께 소개한다.
– 재주도 좋아 https://www.facebook.com/jaejudojoa
– 제주한수풀해녀학교 http://cafe.daum.net/jejudiver
네팔,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지금, 우리 삶’과 연결하기
네팔에서는 두 명의 손님 찾아왔다. 첫 번째로 로찬 리짤 교수(Lonchan Rizal, 카트만두 음악대학 교수, 음악가)는 음악 활동을 전업으로 하던 민족의 사회적 역할 축소 및 심각한 생계 부담으로 점차 그 명맥이 끊기고 있는 네팔 전통음악의 계승 현황과 미래를 소개하였다. 그는 전통 계승이 결국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해질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 지역 음악의 보존과 더불어 지역 음악가와 현대 음악가 간의 활발한 교류를 활성화하고 이를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삶에 접목을 시켜야 함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그는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4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악기 아르바자(Arbaja)의 유일한 생존 연주자였던 한 할아버지를 찾아 그의 연주 목록을 기록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바산타 타파 의장(Basanta Thapa, 카트만두 국제 산 필름 페스티벌)
이어서 바산타 타파 의장(Basanta Thapa, 카트만두 국제 산 필름 페스티벌)이 카트만두 국제 산 필름 페스티벌(이하 ‘KIMFF’)에 대해 소개하였다. KIMFF는 2000년 산 위의 필름 축제로 시작해 히말라야를 품은 이 도시의 주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는 “네팔 국민들이 세계적 이슈와 더불어 도심 바깥 지방에서 벌어지는 네팔 내 인권 문제 등을 접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삶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KIMFF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산 위에서 펼쳐지는 행사의 특별함과 더불어 필름 페스티벌의 사회적 의미도 함께 조명하였다.
첫날 워크숍은 남아시아 전통음악 공연과 히말라야 필름 페스티벌 영상을 보며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이튿날 참여자들은 인도전통춤으로 아침을 시작해 연극을 만들고, 오후에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산도 탔다.
“바닷속에서 숨을 참는 상태, 높은 산을 오르면서 숨을 고르는 상태. 그럴 때 느끼는 감각은 조금 다른 상상력을 만들지 않는가. 일상에는 존재하는데 시각적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는 것이 ‘문화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있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예술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일상에서 직면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개별적 감각, 즉 자기 감각이 굉장히 살아있어야 한다.
‘삶이 사건이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이 사건이 돼버린 순간. 제주 바다에서 자맥질을 하며 호흡을 분배하던 경험이 작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흔히 예술이 삶에서 사건을 만들게 한다고들 한다. 그 순간은 자기 감각을 신뢰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 김월식 작가/기획자
경기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 함께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김월식 작가(커뮤니티 아티스트/문화예술교육 기획자)는 “천국이 감각의 다른 말일 수 있겠다”고 말한다. 이번 워크숍에서 자주 등장한 천국, [개별적] 감각, 몸각 등의 표현은 모두 ‘자신의 고유성에 대한 성찰’이라는 하나의 연장 선상 위에 놓여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만약 특별한 삶의 순간을 누리기 위해 흥미진진한 사건을 기다려 왔다면, 이번에는 내가 쓰지 않던 몸의 감각을 조금씩 깨워보는 것은 어떨까. 그 감각을 통해 불현듯 일상의 한 조각이 우리에게 ‘사건’이 되어 찾아올 수도 있을 테니.
- 권민영 _ 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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