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댄스 씨어터 까두 대표 박호빈

인터뷰_박유신(명덕초등학교 교사) / 사진_박해욱

나름대로 예술 애호가이며 예술을 가르치는 데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언제나 주저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몸의 움직임을 가르칠 때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춤이란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만, 몸으로 무엇을 표현한다는 것은 아이들도 나도 쉽지 않은 대목인 것이다, 당연히 내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무용가 박호빈을 가리켜 몸으로만 말하는 무용가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부족한 설명이다. 그는 단지 몸뿐이 아니라 연극적 요소와 다매체적 접근을 시도하는 독특한(?) 무용가다. 또 ‘멀티미디어 댄스 씨어터 까두’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 그의 작품 목록은 온통 정신분석가의 서재 같은 느낌이다. <오르페우스 신드롬>, <천적 증후군>, <피터팬 신드롬>등등.
그의 연습실을 찾았을 때, 연습실 안은 아직도 땀냄새와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단순히‘땀냄새와 열기’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부족하다. 연습이라고는 해도 신내림과도 같은 굉장한 움직임의 여운이 아직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단원들이 흠뻑 흘린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하는 사이, 박호빈은 카메라를 위해 동작들을 취했다. 몸의 움직임은 강렬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무용가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인류가 아닌 듯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땀을 닦고 자신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없이 지적이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일단, 박호빈의 약력이랄까. 그의 삶을 되짚어보자. 그는 사실 무용 전공자가 아니라 연기자 수업으로 예술의 길을 시작했다. 연기자에게 필요한 몸을 다루는 훈련으로 무용을 시작했고, 그 도중에 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안무가로서, 기존의 방식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춤에 접근하게 된다.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무대를 선보이며 그는 주목받는 젊은 무용가가 되었다. 그리고 끊임없는 내면에의 추구는 그의 작품을 진지하고 철학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작품세계 – 내면에 대한 추구와 멀티미디어적 접근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다가 무용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자기가 배운 걸 버릴 수 없는 것 같아요. 연극을 할 때는 보통 인물 분석을 하게 되죠. 인물의 심리상태라든지. 무대 전반적인 측면이라든지 말입니다. 저는 20대 때 제 자신에 대해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심리학 쪽에 많은 관심이 생기고, 제 작품의 모든 주제와 의미가 심리적인 쪽으로 많이 접근해 들어간 편이에요. 연극에서 하는 것처럼 인물 분석을 하고, 심리적인 구조를 만들고 하다보니 연극에서 필요한 드라마적인 요소들, 가령 극장이나 무대의 요소들, 멀티미디어, 분장 등을 동원해서 그러한 효과를 최대로 하게 되는 거예요. 춤뿐만 아니라 외적인 것들이 다 어우러지게 표현하다 보니 연극적으로 되고, 무용보다는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나를 이해하는 과정, 이 시대에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제 모든 작품의 주제인 것 같아요. 연극적인 요소들은 그런 것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고, 제가 연극부터 시작해 무용으로 온 케이스라 무용에서는 비주류거든요. 비주류이기 때문에 혜택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저한테는 척박한 곳이었고…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까두’를 창단하면서 선생님의 작품은 점점 더 종합예술적인 측면이 보입니다. 가령 분장이나 무대가 무용에 종속되기 보다는 일종의 공동작업처럼 보이는데요?

네. 그런 요소가 있지요. 처음부터 그것만 생각하고 온 것은 아닌데… 94년에 댄스컴퍼니 조박을 결성하고, 첫 작품으로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을 공연했어요. 당시 신세대 무용가라고 해서 한국일보와 처음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에 관해서 묻고 저는 앞으로 연극과 영상과 미술이 복합된 총체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그 기사는 잊고 있다가, 최근에 다시 볼 기회가 생겨 읽어보니 내가 그런 얘기를 했었나 하고 놀랐죠. 결국 까두를 창단하면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으니까 그때 헛소리한건 아니구나 싶어 다행이기도 해요. 어찌 보면 계속 저는 그걸 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왔던 것이죠.
까두는 공식적으로는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각자 분야에서 작업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과 뜻이 맞아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전문적으로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무대디자인, 음악, 조명 등 서로 자기 작업을 하듯이 그들의 역량이 십분 발휘될 수 있는 공동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고요. 그런데 자기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공동작업을 하게 되면서 서로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움이 있어요. 갤러리에 전시하는 게 아니라 무대에 올려서 공연의 형태를 갖추어야 하니까 거기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하고요. 문제가 생길 때 서로 자존심문제도 불거지곤 하죠. 작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충돌을 일으키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인간적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많이 좋아지겠지요. 그건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의 삶. 그 고단하고도 사랑하는 길에 대하여.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게 힘든 일이지요.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성공한 예술가이신데, 한국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정신적인 보상을 받는 대신 물질적인 결핍(?)을 메워나가게 되죠. 제가 견디고 작업하고 싶다면, 가장 원하는 하나를 위해 나머지 아홉 가지는 버릴 수 있어야 해요. 가끔은 어렵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때려치우고 싶은 인간적인 고민이 생깁니다. 어떻게 보면 예술가들은 보상받을 수 없는 일을 하는 거거든요. 근데 위안이 되는 건, 예를 들어서 이름 모를 관객이 공연 후에 이메일을 보내서 제 공연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다 해줄 때에요. ‘그렇게 알게 모르게 봐 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힘이 돼요. 또 후배들이 가끔 나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 내가 잘 해야겠구나’ 라는 의지가 생기지요. 그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고 내가 흔들리거나 쉽게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속에서 추구하는 예술세계는 어떤 것인가요?

20대 때는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저를 찾아가는 시도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30대가 되니 옆에 있는 사람도 보게 되더라고요. 타인과 어떻게 이야기하고 소통할까 라는 것이 작업에 반영되었어요. 여기서 나아가 나를 어떻게 이해시킬까. 같이 어울려서 살아가고 갈등한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제 작업의 토대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하면서 얻은 관객들의 반응들을 통해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깨달은 게 나는 소통을 원한다고는 하지만 일방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고, 과연 어디까지나 소통인가 하는 문제였어요. 결국 진정으로 관객과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제 작업이 변해야 해요. 저건 버리고, 이건 바꾸고… 그래서 <어린

왕자>의 경우는 관객들의 의견을 참고해 작품을 많이 바꿨어요.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심들

제가 교사로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우리 문화 속의 춤이라는 것이 양면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놀이로서의 춤은 잘 추지만 무엇인가를 몸으로 표현을 하자고 하면 참 힘들어해요. 몸으로 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말이지요.
얼마 전에 조각가 이웅배 선생님한테 배운 게 있어요. 그분 작품은 주로 놀이기구 같은 것이 많아요. 시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거기 걸터앉기를 원해요. 친숙한 생활공간 안에서의 조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전시를 열면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와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와서 그냥 노는 게 아니라 예술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되지요. 기능적인 게 아니라 삶 속에서 말이에요.
저도 아동교육학자들과 함께 유치원에 가서 그런 시도들을 해 보았는데, 처음엔 무척 어려웠어요. 저는 저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자 움직임을 만들어 봐요”라고 하면, 아이들이 “네”라고는 말하지만 어려워하는 거예요. ‘뭐 해요?, 어떻게 해요?’ 하고 아이들이 물어보고… 그런데 아이들을 풀어놓으니까 자유롭게, 신나게 움직이면서 놀더라구요. 그런 가운데에서 조금씩 함께 이야기하고 움직이다 보니 아이들이 즐겁게 동작을 만들게 되었어요. 놀이로서의 무용을 경험한 친구들은 당장은 모르지만 훗날 그것을 접했던 게 생각이 나서 무용가가 될 수도 있고 좋은 관객이 될 수도 있겠지요. 과연 풀어놓고 노는 게 교육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웃음)
단계별로 무용에 접하면 자연스러울 텐데요. 처음엔 놀이처럼, 초등학교 때는 상상력과 놀이를 함께. 그리고 기능적인 것은 중등학교 이후에 배우면 되거든요. 너무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틀에 박힌 걸 강요하는 것 같아요. 예쁘게 자라고 체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무용을 배우고 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도 중요하긴 한데 무용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운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사실 무용을 전공한 아이들이 모두 무용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의 길이 바뀔 가능성이 있잖아요.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뭔가 다를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무용을 하다가 다른 걸 하고 싶으면 그만둬라. 전공을 했기 때문에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라고 말해요.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무용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고 또는 외적으로 무용에 도움이 될 수도 있죠.

작년에 극단 사다리와 함께 <어린왕자> 공연으로 어린이나 청소년관객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가지셨는데요, 앞으로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계획이 있으신가요?
특별하게 계획한 것은 없는데 관심은 계속 갖고 있어요. 아까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해 보는 활동들처럼요. 그런 것들은 해보고 싶고 알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와 어린 아이들은 문화. 사고방식, 세대가 다르죠. 어울리다 보면 잘 안 맞아요. 그러니까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너희가 모르는 나의 문화도 이런 것이 있단다. 나의 문화를 전해주고. 많은 정보를 얻고 감각을 공유하고 그러면서 서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무용단 활동이 자리 잡히면 그 다음단계로 그런 일들을 해볼까 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화란 무엇인가요?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을 때, 먹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어떤 그릇에 담아서 먹는가, 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해요. 레스토랑에서 가면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서 나오는 것, 그것은 문화가 아니죠. 산업이 찍어내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옛 조상들의 자기들처럼 손때가 묻고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진 것들 자체가 문화가 아닐까요? 어떤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담는 형식,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그의 말은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예술이란 삶이 아닌 어떤 도구나 수단이 아니었는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처럼 예술가들의 세계를 훔쳐보기에 급급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릇 하나, 동작 하나에도 문화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것을 나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연습실을 나오자, 갑작스레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예술가의 공간에서는 공기마저도 틀리다. 예술가의 존재 하나가, 작은 몸짓이나 멜로디 하나가 공간을 풍요롭고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신비스럽고 일상적인 존재가 아닐까. 박호빈은 일년 중 200일 이상을 공연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연습이다. 그의 삶은 온전히 예술에 바쳐져 있다. 프로페셔널한 예술가는 그래야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렇게 치열한 예술가들의 삶들과 우리도 함께 호흡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들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도심 속 숨 가쁜 삶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박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