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 읽기, 즐거운 영화 읽기 – “오만과 편견”

행복한 책 읽기, 즐거운 영화 읽기 – “오만과 편견”

한국은 문화적 수준에 비해 외국문화에 배타적인 사회다. 라디오는 가요 프로 일색이고, 고전문학은 논술 점수를 위해서나 읽히고, 극장에 넘쳐나는 영화들의 국적도 한국 아니면 미국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넓고 다양한 세상의 향기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 예술 안에서 주변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갖도록 자극하고, 그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야와 공감을 더 확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이해시킬 수는 없을까?

교사이면서 작가인 다니엘 페낙은 이런 고민에 명쾌한 조언을 들려준다. “깨달음은 실생활에서 온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이들을 어른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있는 자리로 어른들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관심사로부터 예술교육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면, 유행에 뒤지지 않는 최신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2005)은 문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 의상 등 인접예술과의 접점이 풍부하고, 사랑과 결혼 등 젊은이들에게 민감한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영화다.

영화로 되살아난 고전의 힘

제인 오스틴(1775~1817)은 21세에 쓴 첫 장편소설 『첫 인상』(1796)을 개작하여 『오만과 편견』(1813)을 발표했다. 사전적 의미로의 오만이란, ‘젠 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있음’을 말하고,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뜻한다. 제목만 들으면 인간 본성 고찰이나 주류 사회 비판 같은 심오한 목적을 품은 ‘오만’한 소설로 오인받기 딱 알맞지만 그건 ‘편견’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로 치면 『춘향전』쯤 되는 인기를 구가하는 영국의 대표 로맨스다. BBC 방송사가 6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었고 가장 나중에 나온 95년도 6부작은 영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니, 이 소설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인류사상의 고귀한 기록으로 살아남아 세대와 지역을 넘어 전파되는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주말연속극 수준으로 소박하다. 요약하자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영국 시골의 딸 부잣집을 배경으로 한 짝짓기 소동극이다.

연 수입 4천 파운드가 넘는 재력에 외모까지 준수한 총각 빙리가 그보다 더 부자인 훤칠한 친구 다아시와 함께 하트포드셔에 나타나면서 이 시골 마을은 술렁이게 된다. 당시 무도회는 공개 맞선 시장이나 다름없어서 딸 가진 부모들이나 과년한 규수들치고 빙리의 이주를 환영하는 무도회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꿈에 부풀어있는 이들 중에는 다섯 자매를 되도록 빨리 치우는 것이 일생일대 지상과업인 베넷 부인도 있었다. 베넷 부인이 딸들의 혼사에 목을 매는 것은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륙에서 양반가의 자녀들이 어느 정도 동등한 상속의 권한을 누리는 것과 달리, 영국은 재산과 지위를 장남에게만 승계하는 ‘장자상속’이라는 특이한 전통을 가진 나라였다. 아들이 없는 집의 경우 아버지가 사망하면 대개 그 유산은 ‘한정 상속’이라고 해서 그 집 딸이 아닌 집안의 다른 남자 차지가 되었다. 직업 선택의 기회마저 차단되어 있는 여자들 사이에서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전근대적 상속제도가 생계형 정략결혼을 양산했던 셈이다.

다정다감한 빙리는 만인의 호감을 얻고 큰딸 제인과 만나자마자 사랑이 싹트는 분위기다. 반면에 자기표현에 서툰 다아시는 거만하다는 낙인과 함께 리지라는 애칭을 가진 둘째딸 엘리자베스의 눈 밖에 나는데, 그런 그녀가 어쩐지 갈수록 마음에 들어온다. 사실 둘은 사려 깊고 고집 세고 의심이 많다는 점에서 취향이 비슷했다. 나중에 리지는, 위컴과 다아시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진실과 정반대라는 것을 시인하고, 다음과 같이 반성한다.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지금 이 순간까지 난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거야.” (293~294쪽)

자신에게 잘 해주기만 하면 점수가 터무니없이 후해지는 어른들도 많다는 걸 감안하면, 21살이 채 안 된 아가씨가 경험부족에서 판단착오를 한 건 그리 부끄러워 할만한 일도 아니다. 이리하여 주인공들은 오만과 편견으로 인한 오해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연과 의지가 상호작용하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성취할 수 있었다. 판단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이해에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관찰의 문학에서 풍경의 영화로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타이틀 영화사는 이 ‘관찰의 문학’을 ‘풍경의 영화’로 번역해 놓았다. 이 영국영화는 인물에 대한 예리하고 풍자적인 묘사를 축소한 대신, 영화만이 선사할 수 있는 풍성한 시청각적 쾌락을 살려내었다. 생생한 캐릭터의 매력으로 원작의 명성에 눌리지 않는 화려한 시대물(Costume Drama 장르)을 빚어냈다는 점에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 비견될 정도다. 원작 설정과 실제 나이가 거의 같은 키라 나이틀리와 매튜 맥페이든 커플의 신선한 앙상블 연기가 돋보이고, 주디 덴치(레이디 캐서린 역), 브렌다 블리신(베넷 부인 역), 도널드 서덜랜드(베넷 씨) 등 존재감 있는 연기파들이 자칫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이 영화에 중후한 안정감을 부여했다.

미술을 전공한 33세의 신예 조 라이트 감독은 “베넷 가문이 그들이 사는 곳의 자연과 얼마나 근접해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하며 영국 시골의 풍광과 인물 내면의 정경을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시켰다. 이런 장면들은 아름다운 화면을 제공하고 쓸쓸한 심리를 전달하는 정서적 효과 이상을 거둔다. 그것은 마치 화면의 활기와 여주인공의 생기가 영국의 자연이 지닌 생동감과 아름다움에서 유래했다는 부드러운 주장과도 같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쉴 새 없이 친근감 있게 움직이면서 공간 구석구석을 넘나들고 인물들 하나하나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책을 읽으며 집안으로 들어서는 리지를 통해 문학과 영화를 자연스럽게 잇는 도입부나, 리지와 다아시의 한판대결을 수많은 사람들의 군무 속에서 매끈한 리듬으로 담아낸 두 번째 무도회에서 사용된 롱테이크의 유려함은 최근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을 만큼 인상적이다. 원작을 읽은 사람은 이 영화에 그토록 자주 나오는 클로즈업과 롱테이크가 단순히 복잡한 스타일을 현시할 목적이 아니라, 이 소설의 정수인 심리묘사와 당대 사회 분위기를 시각화하기 위해 고안한 결과물임을 알아보게 된다.

이 로맨스에서 백미를 이루는 것은 고백이다. 삶에서 고백만큼 극적인 장치는 없다는 듯, 이 영화에 나오는 몇 번의 고백은 우아하고도 격렬하게 환희의 순간과 절절한 공감을 극대화한다. 비 오는 날의 첫 번째 청혼은 제작사 워킹타이틀의 서명처럼 보이고, 새벽 들판의 두 번째 청혼은 『폭풍의 언덕』(1847)을 위시한 영국 문화 전통을 상기시킨다. (참고로, 워킹타이틀은 궂은 날씨, 낯가림, 산책하는 습관 등 영국인의 일상을 영화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효과적인 방점을 찍는 데 일가견이 있는 회사다.)

이탈리아 클래식 작곡가 다리오 마리아넬리,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가 불어넣는 봄바람 같은 나긋한 서정과 프랑스 혁명 이후 유행한 허리선 높은 엠파이어 드레스를 비롯한 19세기 초 리전시(Regency) 시대 의상을 눈요기하는 즐거움도 이 섬세한 풍속도의 대중성에 한 몫 한다. 이처럼 이 영화 안에는 수많은 유럽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농밀하게 담겨 있으니, 영화 한 편이라고 우습게보지 말 것.

사랑으로 맹목에서 벗어나 각성하고 성장하라

사랑의 도피행각으로 대대적 집안망신을 시킨 리디아와 위컴을 다아시가 찾아내어 결혼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위로 언니 네 명은 어느 곳에서도 며느리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만큼 당시 영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사회였다. 홀로 먼 길을 가거나 우두커니 서있는 리지는 외로워 보이지만,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단호하게 선언할 줄 안다. 제인 오스틴이 42년 일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것도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 따르면 결혼은 낭만과 현실 사이의 모험이고, 이 위험천만한 모험을 행복한 결혼생활로 이끌어줄 수 있는 필요조건은 ‘현실에 기반한 사랑’이다. 따라서 현실적 조건만을 중시한 샬롯이나, 낭만적 사랑에 인생을 건 리디아처럼 어느 한 쪽만을 취한 결혼은 리지의 눈을 빌어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판 받는다. 새로운 가치의 화신인 리지는 낡은 질서의 대변인인 캐서린 영부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소신을 피력한다. 밤늦게 베넷 댁을 방문한 캐서린에게 리지가 당차고 야무지게 한방 먹이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특히 이 한 줄의 대사는 자꾸만 곱씹어보게 하는 울림을 지녔다.

“전 단지, 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영부인이건 혹은 저하고는 관계없는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하지 않고, 제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동할 작정일 뿐입니다.” (490쪽)

사실 짝을 찾은 네 여자는 모두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견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동’했다. 결과가 어떤 쪽으로 판명나건 최소한 더 나빠지지 않는 차악의 길을 자기 힘으로 선택한 것이다.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가 향후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통념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21세기 한국과, 결혼이 사업이었던 200년 전 영국은 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걸까, 잠시 아연해졌다.


다시, 영화 첫 장면을 떠올려 본다. 해가 뜨는 장면이 눈을 뜨는 장면과 닮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가. 어둠을 내몰며 솟아나는 빛이 영화의 시작, 하루의 시작, 사랑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절정에서 또 한번 등장해서 결혼을 약속하는 젊은 남녀에게 희망찬 서광을 비춰주었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다루면서 근대 사회 여명기에 벌어지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그처럼 철저하고 정확하게 그려낸 작가도 따로 없을 것이다.”라는 번역자 윤지관 교수의 말대로, 이 영화는 결국 시대의 여명에 관한 영화다. 리지와 다아시가 그랬듯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만 맹목에서 벗어나 각성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예술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시야를 넓혀 새로운 시간을 초대했으면 하는 소망을 그 빛나는 아침에 포개어본다.

* <오만과 편견>을 본 후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심화과제 *

(1) 문학과 영화를 놓고, 줄거리, 장면 표현, 주인공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토론하기
(2) 청혼 장면의 남자주인공 묘사에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비교하기.
(3) 고백 장면의 여자주인공 묘사에서 제인 오스틴 원작, 이안 감독의 <센스, 센서빌리티>(1995)와 비교하기.
(4) 상류사회 인물들 묘사에서 벨라스케스나 고야 등 궁정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하기.
(5) 무도회 음악(원곡은 헨리 퍼셀이 작곡한 ‘압델라자, 혹은 무어인의 복수’)을 듣고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음악감상. 혹은 연주자나 작곡자의 다른 곡 찾아듣기.
(6) 영국의 산업혁명, 장원제도, 여성운동에 대해 조사하고 토론하기.
(7) 6부작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및 현대적 버전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신부와 편견>과 비교하기.
(8) <맨스필드 파크> 외 제인 오스틴 원작의 다른 영화들, <전망 좋은 방> 외 E. M. 포스터 원작,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시대물들(<남아있는 날들>,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 워킹타이틀 영화사의 전작 <러브 액추얼리> 등과 비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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