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이 개관 후 처음으로 주최하는 “파울 클레 : 눈으로 마음으로”는 스위스 베른에 위치한 <파울 클레 미술관(Zentrium Paul Klee, Bern)>에 소장된 60여 점의 작품을 국내에서는 최초로 전시하는 행사이다. 전시중인 작품들은 1910년경부터 30년간 제작된 것으로 클레의 초기작부터 말년의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까지 클레 미술의 일대기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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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특히 ‘현대 미술’은 감상하는 이들에게 감상의 노하우(know-how)를 제시하기를 꺼린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영역이 이성적 두뇌활동보다는, 감성과 감각에 의지하는 바가 큰 탓에, 각자의 의견과 감상이 다 옳기도 하거니와 관객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상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단 하나의 시각을 각인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미술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미술 감상의 기본적인 방법을 안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붓을 난생 처음 쥐자마자 명화를 쏟아내는 천재 화가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화가들은 기본기로 데생을 마치고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기 전까지 많은 스케치 습작을 남긴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파울 클레 전시회에서 필자가 인상 깊게 감상한 몇몇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으니, 독자들도 원작을 직접 감상하고 좋은 감흥을 얻으시길 바란다.
파울 클레 전시회, “눈으로 마음으로”
작가가 활동하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양미술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는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사실 그대로를 화폭에 담는 것에 주력했다면, 19세기말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주관적인 빛과 색상을 그렸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나 정신세계를 간결한 선과 형태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려는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작가들은 마르크, 칸딘스키, 클레와 같은 독일의 표현주의(Expressionism) 화가들로서, 그 가운데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일생 동안 9천여 점이 넘는 다작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열정으로 유명하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미술작가이자 현대 추상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클레의 작품들은 추상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의 작품처럼 완전히 추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상징적이지 않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현대 미술을 접했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난해함이나 당혹감을 덜 느낀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60여 점은 수채, 유화, 판화, 드로잉을 판지, 석판, 천 등의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작가의 왕성한 표현 욕구를 엿보게 한다. 전시작들은 연대기적으로 변화하는 클레의 화풍을 체감할 수 있도록 3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어서, 전시실을 순서대로 관람한다면 클레 미술의 일대기를 자연스럽게 이해를 도움이 될 것이다. 여느 전시회가 그렇듯이, 작가가 작품활동을 하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배경지식이 작품을 이해하는 많은 단서들을 제공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매일 두 차례 진행되는 전시회 안내(docent)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 있는 자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 M. Voltaire
클레의 초기작을 보여주는 제1실은 연필이나 펜으로 그린 풍경, 정물 스케치나 캐리커처, 무채색 또는 색감이 단조로운 판화와 수채화 등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악기연주와 독서를 즐겼던 클레는 화가의 길을 택하지만, 미술가로서의 초기에는 색감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탓에 선묘 드로잉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시기에 그는 풍자화에 관심을 갖고, 볼테르(M. Arouet de Voltaire, 1694-1778)의 풍자소설 <캉디드(Candide, 1759)>의 삽화를 그리기도 한다. 전시된 삽화들은 스페인화가 고야(Francisco de Goya)의 <전쟁의 참상(Los desastres de la guerra, 1810-14)>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데, 고야에 비해서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풍자화가가 되고자 했던 그는 시대의식을 가진 미술계의 지성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 교수 재임시절에는 ‘바우하우스의 부처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자와 같은 그의 풍모는 석판화에 가는 선으로만 표현된 자화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보지 않습니다./1911감상하고 즐기기보다는 소유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예술품 수집가들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드러난 작품으로, 펜으로 거칠게 표현된 인물들의 형상이 거침없는 그의 비판의식을 느끼게 한다
생각에 잠겨있는 자화상 / 1919소박한 셔츠 차림에 수염을 기른 클레의 두 눈은 감겨 있고, 귀는 그려져 있지 않다. 주변의 자극으로부터 떨어져 사색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자화상은 예술가로서의 그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한편, 그림을 그리던 당시에 1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기에 친구와 지인을 잃고 낙담하는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가장 작은 나뭇잎 하나에서도 자연법칙의 완전함과 유사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 P. Klee
제 1실이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한 무채색이었다면, 제 2실로 발을 옮기면 생동하는 색감에 전혀 다른 감흥을 받게 된다. 이런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화가 들로네(Robert Delaunay)와의 만남과 1914년에 떠난 2주간의 북아프리카 여행을 통해서였다. 이 시기의 작품에 표현된 색감은 원숙하다기 보다는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데, 아마도 작가가 색채 감각을 익히면서 다양한 색상을 시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클레에게 회화적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 들로네는 광선을 분석하고, 여러 시점에서 보여지는 대상의 다양한 모습을 절단시켜 그리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었다. 클레는 부분적으로는 그의 영향을 받지만, 전체적으로는 들로네와는 다른 화풍은 만들어 간다. 그것은 클레의 색감이 유채화에서 보여지는 강렬하고 직접적인 것보다는, 수채물감을 덧칠해 만들어지는 2차, 3차의 채도와 명도가 낮은 색상을 주로 이용하는 탓으로 보여진다.
색채 띠에 연결된 추상적 색채의 원들/1914
2주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자연이 내뿜는 원시적 색감을 체험한 클레는 밝고 경쾌하고 따뜻한 느낌의 색상을 화폭에 담아낸다. 이런 느낌은 색상에서뿐만 아니라, 펜이나 연필로 실루엣만 표현하던 것에서 채색된 면을 통해 볼륨감 있는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언덕/1914
곡선을 이용해 화면을 분할해 그린, 따뜻한 느낌의 풍경에서 원시적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 1916“Und ach, was meinen Kummer noch, viel bitterer macht ist, dass Du nicht einmal ahnen magst, wie mir ums Herz ist“라는 글귀의 문자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클레는 화면을 세밀하게 분할하고, 분할된 각 각의 면에 다양한 색을 채우는 평면구성의 기법도 시도한다. 원, 삼각형, 사각형 등의 기하학 문양을 이용해 풍경이나 사물을 단순화해 표현하거나, 정교한 펜 드로잉 작업으로 선으로만 이루어진 복잡한 구성의 작품도 등장한다. (예, 피라미드/1930, 오르페우스의 정원/1926)
“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 P. Klee
제 3실에서는 1930년대 이후에 제작된 클레의 미술의 후기에 속하는 작품들로, 사실상 클레의 대표적 스타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30년대에 나치로부터 탄압을 받게 된 클레는 1933년 스위스로 망명해 베른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시기의 작품은 어린이, 천사, 동물 등과 같이 감성적인 소재들과 둥근 형상을 주로 사용하면서 주제도 우화적이거나 희화적으로 표현한다. 작품과 작품제목을 비교해 가면서 작가의 의도를 추론해 보는 재미를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전시실로, 미술감상의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특히 많다.
미래의 남자/1933스위스로 망명한 뒤 제작된 작품으로, 어린이처럼 보이는 인물이 나치의 상징적 제스쳐를 취하는 모습과 작품의 제목을 연관시켜 보면, 우회적으로 표현된 작가의 풍자를 엿볼 수 있다.
동물들의 만남/1938장난기 어린 이 작품은 갖가지 동물을 연상시키는 모호한 형체의 동물 주인공을 추측해 보는 재미가 있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던 펜이나 연필과 같은 가는 선을 이용한 작품은 더 이상 제작되지 않는데, 이러한 경향의 변화는 말년에 지병으로 섬세한 수작업이 어려워진 탓에 붓이나 페이스트를 이용한 굵은 선이나 곡선으로 형상들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컸다. 클레의 말기 작품에서는 이런 형식적인 변화 외에도, 사회비판보다는 감성적이고 탄생과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표현하는 등 주제 면에서도 큰 변화를 보인다.
이별/1938좁고 길다란 판지에 그려진 이 작품은라는 제목처럼, 초연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본인의 모습을 보는 듯해 측은함이 들게 한다.
무제 (죽음의 천사)/1940클레의 유작. 전체적인 어두운 색상으로,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죽음이라는 경험해보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된 것이라면, 한편으로는 천사의 구원이라는 희망을 기대하는 이중적인 심경을 느끼게 한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파울 클레: 눈으로, 마음으로”의 전시회를 살펴보았다. 전시된 60여 점으로도 클레 미술에 대한 갈증을 떨치지 못한 관람객은 전시실 밖, 휴게실에 진열된 클레에 관한 화보집으로 마음을 달래야 하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Hippocrates, Aphorism 1.1
오래 전이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언제인가 들었던 바로는 ‘음악을 듣게 되는 순서’라는 게 있다고 한다. ‘그 처음은 댄스곡이고, 다음으로 락을 듣고, 헤비메탈을 듣다가, 결국에는 재즈에 빠지게 된다’는 그 말을 들으면서 심히 동감했던 기억이 있다. 인간에게도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서’라는 것이 있다면 클레의 미술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하다. 그의 미술에 나타난 주제를 단순화 해본다면, 청년기에 펜촉처럼 신랄하고 날카롭던 그의 비판의식은 점차 뭉뚝해지고 누그러지더니, 종국에는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서 관심사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주제의식의 변이과정을 목격하면서, 새삼 나와는 다르다고 단정지어 버렸던 사람들도 결국은 같은 길을 서로 다른 시기에 지날 뿐,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긴 사이에 발걸음은 이미 미술관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소마(SOMA)미술관은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야외에 상설 전시되어 있던 구 ‘서울올림픽미술관’이 올해 1월부터 ‘소마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희랍어로 ‘소마(ΣΩΜΑ)’는 ‘몸, 육체’라는 의미인데, 미술관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측의 체육과 예술을 접목하려는 의욕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다. – 위 치: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5호선 올림픽공원 역에서 하차)
– 전시기간 및 개관시간 : 4월 7일부터 7월 2일까지, 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 전시장 관람 안내 : 매일 11:00, 15:00
소마미술관에서는 ‘파울 클레’ 전시기간동안 매주 휴관일인 월요일 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술관 나들이’라는 전시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초,중등 특수학급 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미술관 에듀케이터, 미술치료 전문가와 함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학습 경험의 자리가 되고 있다. 매회마다 미술관 교사외에 5명의 미술치료 선생님, 뜻있는 일반 자원봉사자 등 10여명의 인력이 참여한다.
프로그램은 전시감상과 체험활동으로 진행된다. 전시감상 시간은 클레의 작품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체험활동 시간은 아이들이 붓과 물감으로 자신만의 화분을 꾸미게 하고 클로버씨를 심는 것으로 구성된다. (클레가 영어로 “클로버”를 의미한다는 점을 모티브로 하여 화분 그리기와 클로버 심기 체험을 진행하는 체험활동이다) 프로그램 전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많은 미술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아이들 편의를 고려하여 진행되며 입장티켓 배부에서 관람예절 배우기, 전시감상, 휴식과 간식, 체험활동, 수료증 수여 등 아이들 입장에서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함으로써 말그대로 ‘행복한 미술관 나들이’가 될 수 있도록 진행된다.
지난 22일에는 구암중학교와 평내중학교의 특수교사들이 인솔한 11명의 정신지체 장애인 학생들이 1대1로 미술지도교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체험실에서 몇몇 학생은 전시회 팜플렛에 그려진 파울클레의 작품을 모작하기도 하는 등 전시실에서 감상한 작품을 곧장 자신의 창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창작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학생들과 인솔교사, 미술지도교사 모두 미술관이 한층 즐겁고 재미있는 곳일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
장소: 소마미술관
기간: ~ 7월 2 일
상담: 02-410-1318, 1062 / artmuseum@sosf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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