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신이 내린 목소리”로 불리는 조수미는 20년 동안 수많은 오페라와 콘서트 무대에서 전 세계의 청중들과 만나면서 클래식 음악의 황홀한 체험을 선사해 왔다. 이미 한국인을 넘어서 국제적인 명사이지만, 그 동안 클래식 음악가로서 활동에 이익이 되기 위해 다른 국적을 취득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여전히 언제 어디서나 한국 여권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는 그녀가 지난 8월 30일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저녁 <조수미와 함께 하는 아카데미 콘서트>를 열었다.
아카데미 콘서트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조수미의 전속 매니지먼트사인 (주) SMI, 그리고 호암아트홀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인데, 학교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도모하면서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초청하여 조수미와 대화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서울, 인천 및 경기 지역 초중등 음악교사들을 중심으로 호암아트홀에 모여 조수미의 아름다운 목소리 연주를 감상하고 한 시간 넘게 학교 안에서의 음악 교육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었다. 여기서 조수미는 단지 초청 인사가 아니라 공동주관자로 참여함으로써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데뷔 20주년은 세계적으로 기념할 만한 일인데, 공연 스케줄만으로도 엄청나게 바쁜 그녀가 어려운 시간을 기꺼이 내어 한국의 음악 교사들을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마돈나 조수미의 특별한 콘서트
호암아트홀 800여 석을 빼곡히 매운 교사들은 조수미의 등장을 숨죽여 기다렸다. 프리마돈나의 우아함을 내뿜으며 그녀가 등장해서 한 시간 남짓 연주를 들려주었을 때 무대와 객석은 여느 공연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조수미가 마이크를 잡고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호암아트홀은 또 다른 분위기로 변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학생들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는 조수미와 매일같이 학생들과 만나는 교사들 사이에 마치 동네 사랑방에 모여 앉은 양 친근한 웃음과 공감의 환호가 연신 터져 나왔다. 조수미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테마로 교사들을 만나고 싶다는 제안을 직접 했다는 사회자의 얘기를 듣고 교사들은 아주 크고 긴 박수로 그녀의 의지를 환영해 주었다.
아카데미 콘서트를 마련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먼저 이런 자리에서 교사들을 직접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연주자로서 오랜 세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다가 고국을 방문할 때면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유럽이나 미국의 청소년들은 자유롭게 공부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것 같은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스트레스도 많고 입시 때문에 부자유스러운 것 같았어요. 청소년들에게 음악이 위안과 휴식을 주고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메시지를 가까이서 들려주실 분들이 선생님들이라고 생각해서 제안하게 되었지요.
예전에도 [피터와 늑대]라든가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같은 앨범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문화예술교육에 관해 서로 얘기하고 또 선생님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을 얘기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을 가까이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선생님들이 너무 수고가 많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제 노래를 직접 들려드리고 싶었지요.
ㆍ한국에서 음악교육을 받을 때의 기억은 어떠십니까? 저는 예술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일반학교에서보다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제게 남아 있는 좋은 기억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교문을 들어서고 나갈 때마다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라는 문장을 볼 수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매일같이 어떤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꿈과 목표가 이미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지요. 또 다른 기억은 성악이나 기악 등 다른 장르의 친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린 음악회 형식으로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 때마다 무대에 서는 경험도 되고 또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친구들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서는 동양인으로서 완전히 다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푸치니나 베르디나 완전히 다른 정서의 음악을 해야 하는데, 흉내 수준이 아니라 더 초월해서 그들보다 훨씬 더 잘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였어요.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예술가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생명이라고 느꼈어요.
대한민국의 여권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는 그녀가 문화예술에 보이는 관심의 기저에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었고, 그 청소년들이 자라나서 살아나갈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배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특히 자유로운 자기표현에 대해 거듭 언급했는데, 이것은 전문적인 예술가에게도 중요한 것이지만 삶의 활력을 얻고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매개로 음악을 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가인 그녀는 클래식 음악 교육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예술을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예술을 대하는 목표이기도 하고 예술가와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ㆍ한국과 유럽에서 음악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영국이나 이탈리아는 음악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영국에는 아이들이 오페라하우스를 방문해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공연에 가기 전에 선생님과 그 오페라에 대한 공부를 해요. 그렇게 공연 볼 준비를 미리 한 후에 오페라를 감상하는 거죠. 만일 오페라 공연이 열 차례라면 그 중 한번은 학생들을 위해 열어놔요. 영국에서 제가 <밤의 여왕> 공연을 했었는데 거기서 제가 맡은 역할이 나쁜 여자잖아요. 나중에 영국 아이들에게서 협박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웃음) 각 도시마다 오페라하우스 같은 문화 시설이 있는데 주민들이 이런 시설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해요. 마리아 칼라스 같이 유명한 사람이 와서 공연했다 하면 그 역사를 다 기억하고 극장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더군요.
“즐거운 문화예술교육과 외로운 문화예술교육”
이 자리에는 부평여자중학교의 노혜정 교사와 이가연 학생이 초대되어 조수미와 나란히 앉아 학교에서의 음악교육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노혜정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시수의 부족을 꼽았다.
노혜정: 공교육을 받는 목적은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세상이 관계 맺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음악이 아주 유용한 매개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음악 시간이 너무 적어서 기본적으로 학생과 교사가 소통할 시간마저 없는 실정이죠. 학생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학생 입장에서의 이해관계와 닿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과목보다 소홀하게 생각하고, 그래선지 학생들과의 교육적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가연: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시험 기간에는 음악이 암기 과목이 되니까 너무 하기 싫다고 얘기해요. 저희 학교는 3학년이 뮤지컬 수업을 하는데 활동이 다양해서 재미있거든요. 그러나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되지는 못해요. 뮤지컬이나 특별 활동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수업 시간에 보다 많이 접해보면 좋겠어요.
조수미: 일단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학교에서 하는 뮤지컬 수업처럼 모두 공동체로서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랄지 좋아하는 악기를 다뤄보는 것이랄지, 수업이 많이 필요한 것들인데 할 시간이 없다는 게 정말 아쉽네요.
노혜정: 음악시간이 적어 시간이 많이 필요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 음악교사들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음악에로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많이 생각하죠. 그런데 학생들에게 안내할 거리가 많은가를 보면 좀 고민이 됩니다. 아이들이 쉽게 다가갈 프로그램이 많은가의 문제도 그렇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단체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는가를 생각할 때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음악 교육이 겪는 어려움을 들은 조수미는 “학교에서 충분히 할 수 없다면 가정에서라도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음악을 즐기고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콘서트에 앞선 기자회견에서도 조수미는 자신이 “우리나라의 음악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런 아카데미 콘서트를 열 수도 있겠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 외국 무대에 데뷔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겠고, 또 외국에서 왕왕 볼 수 있는 것처럼 오페라를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들이 가정에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문화예술교육이 학교와 가정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연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를 언급하기도 했다.
음악 교사들의 특별한 콘서트
사회자는 예정보다 훨씬 길어진 콘서트를 정리하며 조수미에게 “마지막으로 끝맺는 말”을 부탁했다. 그녀는 가늘지만 에너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마지막이란 것은 오늘 이 자리의 마지막일 뿐, 여러분들과의 만남은 계속 될 거예요”라고 말했고 이에 화답하듯 교사들의 길고 긴 박수가 이어졌다.
문화예술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문화예술교육 또한 즐겁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 학교에서는 예술교과들이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움은 교사들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카데미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러한 자리들이 쌓이고 쌓여서, ‘배움’과 ‘즐김’은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점점 더 행복하게 춤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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