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프랑스의 어린이-청소년 문예지 『주 부퀸』이 20년 가까이 매년 해온 창작 대회의 산물이다. 그 대회의 운영방식이 독특하다. 저명한 소설가가 이야기의 앞부분을 써서 내걸면 어린이-청소년들이 뒷부분을 써서 응모하는데, 이 책은 그 입상작을 간추려 묶은 것이다.
좀 자세히 살펴보면, 소설가가 먼저 쓴 부분은 대략 이백 자 원고지 열다섯 장 정도이고, 응모자들이 쓴 글도 그 정도 분량이다. 응모자는 아홉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인데, 개인도 있고 학급이나 동아리 같은 단체도 있으며, 프랑스 아닌 프랑스어권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
합쳐서 원고지 서른 장 분량이면 그게 콩트인지 단편소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접근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응모자들은 그런 걸 상관하지 않고도 잘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응모자가 아홉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라면 그들이 도대체 어린이냐, 어린이-청소년이냐를 따지고 드는 노릇 역시 온당치 않아 보인다. 자기를 무엇으로 구분하든 간에, 그들은 나름대로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 책은, 어린이-청소년의 교육과 글쓰기 지도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바탕에서부터 반성하게 한다. 써서 준 앞의 절반은, 소설이나 콩트이기 이전에, 그저 응모자들의 수준에 어울리는 어떤 이야기이다. 그것은 발단부일 수도 있고 전개부의 중간쯤일 수도 있게끔 고도로 계산하여 던져놓은 사건이어서, 상상을 제한하면서도 자극하고 있다. 또 그 내용은 어떤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지만, 순전히 재미로 사건 전개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는 그런 제재이다. 관습적인 어떤 틀을 주어놓고 뻔한 도덕적 주제를 강요하거나, 아무렇게나 그저 늘어놓기만 하면 그만인 ‘작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응모자가 매년 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당선작들의 기발하고 풍부한 내용 을 보면서, 필자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철학책이 빵처럼 많이 팔리는 나라’임을 새삼 실감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야기라는 것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그것을 이용한 교육이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좋은 우리말 놔두고 흔히 ‘서사’라고 불리는 그것은, 사람이 무엇을 표현하는 양식 네 가지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세 가지(묘사, 설명, 논증)를 압도하는 비중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즉 사건의 변화 혹은 상황 변동의 자초지종을 인과성 있게 말함으로써 어떤 사실과 진실을 표현한다. 우리는 이야기의 대지에서, 이야기를 즐기고 만들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이야기로, 짓고 이야기하는 활동은, 국어과목 뿐 아니라 모든 교육의 기본 방법이자 목표의 하나가 돼야 한다. 이야기의 대지에는 온갖 것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소설, 영화, 연극 등이 허구적 이야기라면 역사, 전기, 기행, 사건 기사 등은 비허구적인 이야기들이다. 또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하고, 성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전과 포교서들이 이야기임을 상기해 볼 때, 인간의 기본 능력을 종합적으로 기르려면, 단지 즐기기만 할 게 아니라 이야기에 관한 지식과 능력을 꾸준히 학습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해 자체가 부족하고, 그에 바탕을 둔 체계적인 교육 내용도 찾기 어렵다. 그저 이야기라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과정의 동화 구연만 생각하고, 이야기 쓰기는 그저 재미로 해보거나 문예창작 재능을 지닌 사람이 하는 특별한 활동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조금 하다가,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옛말을 믿기라도 하는 듯이, 대학 입시가 가까워지면 아예 관심을 거두고, 교무실에서는 국어 교사나 관심을 갖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능력의 발달은 물론이고, 이른바 문화산업의 핵심인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컴퓨터 게임 등 이야기 관련 산업의 진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게 많다. 또 이야기 교육에 활용할 자료가 부족한 판에, 참신한 교재 역할을 할 수 있다. 『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라는, 번역자나 출판사 측에서 붙였을 그 제목이 이야기를 상상력하고만 관련짓는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지만, 어린이라면 몰라도 청소년을 위한 도서는 아직 볼만한 책이 적은 실정에서 뜻있는 책이 나온 셈이다. 창작대회 방식과 응모작들의 내용이 우리의 문화와 교육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으나, 그것은 읽거나 활용하는 이들이 바꾸고 채우면 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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