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홍대 앞 놀이터
천 점의 캔버스를 목표로 그림을 그리며,‘훌륭한 화가는 여러분이 만들어 주는 겁니다’라고 말했던 거리의 화가는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홍대 앞 놀이터에는 화가의 흔적으로 얼룩져간다. ‘더운 여름 지치지 말고, 길을 만들어 주세요. 우거진 산길에도 사람이 지나가면 길이 만들어지니까, 기운내어 우주를 그려주세요’라고 오후의 더운 바람에 메시지를 보냈다.
횡단보도를 지나며 마주친 지미니의 손에도 캔버스가 들려있었다. 지미니의 뒷모습 너머로 파란 신호등이 보였다. 그녀의 캔버스의 앞길에도파란 신호등의 가호가 내리기를.
2004년 여름, 뮤지컬 렌트(Rent)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분의 시간들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six hundred so dear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번의 소중한 순간들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분의 시간들
How do you measure – measure a year?
어떻게 그 시간들을 채워갈 건가요? – 일년을 어떻게 보낼 건가요?
In daylights – in sunsets 눈부신 대낮들에서 수많은 저녁 노을들에서
In midnights – in cups of coffee 적막한 자정들에서 수많은 커피잔들에서
In inches – in miles 많은 인치들과 많은 마일들에서
In laughter – in strife 웃음 속에서 말다툼 속에서
In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분의 시간들
How do you measure 어떻게 이 시간들을 채울 건가요
A year in the life 일년이라는 이 시간들을
-뮤지컬 렌트(Rent)의 seasons of Love 사랑의 계절들 中
텔레비전을 통해 ‘오늘 외에는 시간이 없다(No day but today)’라고 말하며 크루즈에 올라타던 가늠할 수 없는 무게의 금송아지와 같은 재산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뮤지컬 렌트(Rent)의 무대에서 에이즈에 걸린 뉴욕의 뒷골목의 미미(Mimi)도 ‘오늘 외에는 시간이 없다(No day but today)며 기타치며 ’내 노래를 찾겠어‘라고 말하던 로저(Roger)를 유혹한다. 배고픈데다가 자기 노래도 안 보이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뉴욕의 뒷골목의 ’렌트(Rent)‘는 감정의 곡선이 폭풍치는 바다와 같다. 사랑에 빠져 웃다가, 배고픔에 화를 내며 울다가 곧 마약의 힘을 빌어 희극배우의 얼굴을 한다.
뮤지컬 렌트를 보는 동안 내내 오버랩되었던 것은 청춘스케치(Reality Bites)라는 영화.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레이나가 뮤지컬 렌트의 마크(Mark)처럼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의 일상을 담는다. 친구들이 옥상에 모여 피자를 먹으며 카메라를 향해 ‘자신을 기록’하는데, 막 에이즈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친구의 말, ‘이것은 우리 세대의 숙명이다’. 에단 호크가 연기한 트로이(Troy)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지만 갈 길은 요원하고 ‘우리에겐 5달러만 있으면 충분하다. 커피와 담배 그리고 너와 나의 대화가 있으면 되니까’라고 꿈을 꾼다. 뮤지컬 렌트에서는 마크의 카메라가 관객과 무대 사이에 존재하고, 무대 위의 사람들의 노래는 독백처럼, 방백처럼, 대화처럼 경계를 넘나들며 마크의 카메라 속에 치리릭 감겨든다. 현실이 물고 할퀴고(Reality bites), 꿈을 빌리고(rent), 자기 삶을 살면서 남의 삶을 살 듯이 카메라 속에, 무대 위에 재현되는 90년 대의 이십 대들.
M-TV 세대의 카메라를 든 두 명의 레이나와 마크. 우리가/그들이 착각하고 있는/있었던 것은 M-TV의 필터 속에 비친 세상인지도 모르겠고, 레이나와 마크의 언어에 덧씌워진 필더인지도 모르겠다.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분의 시간들을 사랑으로 채울지,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번의 매순간을 여행으로 채울지, 그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법은 누가 알려줄까? 홍대 앞의 화가가? ‘오직 천번의 키스’만을 원했던 렌트의 엔젤(Angel)?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낭만이나 꿈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인 사람이 있다. 그리고 2004년의 한국에서는 꽤 가혹한 현실인 것 같다. 예술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자기 열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그리고 내 호주머니 안에서 언제라도 나를 물어뜯는 현실이 된다.
열정은 정말 소진되지 않는 것일까? 월세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한 뉴욕의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보며, 홍대 앞 놀이터에서 1000점의 캔버스를 목표로 그림을 그려갔던 남자가 떠올랐다. 동네 아이들도 비둘기도 그의 곁에 머물며 물감을 묻히고 놀다갔다. 그 사람, 1000점은 다 채웠을까? 오십 이만 오천 육백 분의 시간들을 열정으로 채우면 우주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진짜 속에 살고 있다면. 지금은 너무 낡아 아무도 없지만, 낡았지만 깔끔하게 다린 셔츠와 스커트를 입은 단정한 노부인처럼 서있는 문화재청 건물에 얼마전까지 걸려있떤 현수막에 씌여있던 문구가 기억난다.
‘당신이 우주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
열정이 소진되지 않는 것이라면, 끊임없이 솟아올라 천 점이고, 만 점이고 캔버스를 채워가고 선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을을 노래하고 칠해 우주를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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