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문화적 탐구력에 기초해서 삶과 세계를 바꾸자

상상력과 문화적 탐구력에 기초해서 삶과 세계를 바꾸자

정리 |이광준|웹지원팀|supsaram@naver.com

전효관– 문화예술교육 사이트는 주로 교사, 문화활동가, 청소년들이 주된 독자입니다. 선생님이 이 사이트의 독자들에게 요즘 관심을 가지고 계신 생명 이야기를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지하– 생명이라는 말은 종교와 과학에서 일반화된 말입니다. 하지만 종교와 과학은 생명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다릅니다. 알다시피 과학은 진화론적 입장, 종교는 창조론적인 입장입니다. 21세기에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대립적인 시각이 봉합이 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이 최근의 생물학이나 진화론에서 나오는 자기조직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생물학의 이야기는 아직 충분하고 충실한 설명이 못돼요. 이에 비해 동학이라는 사상이 주목할 만 하다고 봅니다. 동학 사상을 시시하게 알고 있지만, 창조와 진화를 결합할 수 있는 사상이랄 수 있어요. 동학은 진화론적 입장이지만 신을 믿지요. 이 점에서 어떤 가능성이 있다 봅니다.
생명이라는 문제는 현대 세계에서 엄청난 문제로 다가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김선일씨의 참수사건이 있었지요. 아주 반문명적이고 반생명적인 일이지만, 그 야만적 행위를 만들어낸 것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고 유럽 문명이지요. 이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오염이나 환경문제에서부터 사람의 생명 문제까지, 나아가 지구하고 주변 우주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의 문제까지, 생명이라는 문제는 현대의 가장 초미한 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원래 자연 생명이란 건 삶과 죽음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해요. 죽을 때가 되면 유언 다하고 갈 때를 기다리면서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요. 요즘처럼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거죠. 생명이란 삶과 죽음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과 대립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죽임, 살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임이란 인위적인 죽임, 또 꼭 목숨을 죽여야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뭐 어떤 부자유, 억압, 강탈, 불평등, 세뇌, 억지 쓰는 것 등이 다 죽임이죠. 자유로운 삶을 죽이는 것에 대한 자각이 생명운동이라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제는 생명이라는 것도 인위적으로 애를 써야 생명답게 살지, 그렇지 않으면 전쟁, 오존, 매연, 공기오염 등에 휘말려 살게 되었죠. 내가 동학에 주목하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게 받들고 거룩하게 모셔야 한다는 ‘모심’의 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효관–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납니다, 최근에 지율 스님이 환경영향 평가의 재실시를 요구하시면서 목숨을 건 단식을 하셨지요. 저는 매일 <도룡뇽의 친구들>이라는 메일을 받아보는데, 보다 보면 목숨을 건 단식을 아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죽임의 상태가 너무 일상적이다 보니 무감각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문화를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우리 주변에서 포착해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지하– 아 그러니까 매일, 매시간 부딪히는 것입니다. 문을 닫아놓으니까 조용하지, 지금 창문을 열면 굉장히 시끄럽습니다. 소음 문제가 몇 데시벨이냐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소음 자체가 청각적 삶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것입니다. 물도 먹을 수가 없지요. 음식물에 들어있는 독소들, 방부제, 비료, 농약 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내가 20년 전에 원주에서 한살림 운동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환경운동, 생명운동을 여러 사람과 시작했었지요. 생명과 평화의 길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겸 스님이 생명 평화 탁발순례단을 하시는 것, 문기현 신부가 생명평화마중물(마중물이란 펌프질할 때 물이 잘 나오도록 물을 넣을 때 사용하는 물을 일컫는다) 운동하는 것, 새만금 생명평화회의, 부안생명평화주민결사 등이 모두 생명 평화로 압축되어 있는 운동들입니다. 이 생명과 평화 운동이 앞으로 와야 할 문명의 두 기둥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봐요.

전효관– 선생님이 최근에 이런 생각을 좀더 젊은 세대들과 이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지하–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순발력이 있는 세대, 인터넷 세대에 대해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월드컵 때 700만의 붉은 악마가 그렇게 요란하게 한 달 동안 응원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한 건의 대형사고도 없고, 인종적 편견도 나타내지 않고, 또 이긴 사람에게 기꺼이 박수를 쳐주고, 한국 선수들 졌는데 박수를 쳐주고,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달 동안에 700만의 사람들이 만든 일종의 진화론적인 자기조직화입니다. 다윈적인 자연선택이 아니라 자기선택이라는 것이죠. 우연적으로 모였다가 그것이 몇 백만 명으로 확대 됩니다. 그런데 전부가 개체, 개체 단독자들 입니다. 혼자 앉아서 인터넷을 해서 광화문에 모이자라고 해서 모이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세 가지에 주목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대~~~한민국“ 이란 구호가 ‘엇박’입니다. 삼분박하고 이분박이 합쳐진 것입니다. 대한의 이박을 대~~한이라고 해서 삼박으로 늘리고, 민국의 이박은 딱 접죠. 그러니까 하나는 아주 길고 혼란스러운데, 하나는 아주 균형적이고 짧습니다. 이것이 카오스 질서입니다. 혼돈의 질서라는 것. 정반대가 붙어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결합, 반대되는 것의 결합이 이 구호에서 나왔지요.
두 번째로 중국하고 74년이나 전쟁을 했던 치우라는 전쟁의 신이 있습니다. 고조선 이전에 배달국 천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치우가 전쟁을 했던 것은 중국이 농업문명으로 획일화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조선은 부족연맹체 국가로 유목 이동문화와 농경 정착문화를 같이 결합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실 미래의 세계 비전 두 가지 입니다. 세계화주의자들은 유목으로만 갈려고 하고, 반세계화주의자들은 농경으로만 갈려고 합니다. 사실 합당한 것은 농경과 유목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코와 디지털이 결합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붉은 악마들이 이 도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태극기가 젊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태극기에는 원래 주역 64개의 철학이 다 들어 있잖아요. 중국과 한국의 태극기는 다릅니다. 중국의 태극은 흑백입니다. 그리고 양쪽에 흑점, 백점이 있어요. 백에 흑점, 흑에 백점이 있고, 64궤를 나타내는 4개가 정 동서남북에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태극은 간방에 있어요. 좀 자세히 이야기해야겠지만, 중국과 한국의 태극은 같으면서도 다른 것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구려사 논쟁에서 볼 수 있지만 동아시아 문화의 구성 부분으로서 중국과 한국은 문명사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젊은 세대가 이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이 세가지를 보여주면서 광장에 나왔다,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난 사실 내 세대가 다 전부 실패작이라고 봤거든요. 근데 젊은 세대들의 자기조직화를 보게 되었고, 내가 후에는 실패하지 않은 인생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요. 젊은 사람들이 자기가 한 행동을 자기가 설명하게 하고 새로운 문명을 새로운 삶으로 현실화할 수 있게 물꼬를 터 주는 것, 이것이 생명과 평화의 길이고 나의 나머지 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효관– 개인적으로 하자센터라는 청소년센터에서 5년 정도 있었지요. 젊은 세대들이 겉으로 보는 모습보다는 굉장히 불안한 세대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직업도 그렇고 삶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앞이 안 보이는 세대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기나 에너지 이면에 냉소도 있고, 사실은 다중적 입니다. 선생님의 기대를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좀 쉽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지하– 쉽게 이야기하는 것 어려워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지식인들의 한계이고 문제점입니다. 그래서 이제 학술적으로 할 이야기는 따로 하고, 청소년이나 젊은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대중문화운동을 해보려고 해요. 생명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좀 쉽게 우리 식으로 해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학술운동의 차원이 한 축에 있다면, 문화운동의 차원이 놓여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말도 쉽게 하고 대중운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봐요. 올해는 조금 달라질 것이고, 내년에는 또 다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달라질 것이구요. 그 다음에 나 같은 세대에서 중심이 옮겨가야 합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젊은 세대인 40대 중심에서 10대, 20대 중심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난 그렇게 차차 되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죠.

전효관– 최근에 사람들 만난 자리에서 386세대 이후에 정치적, 사회적 세대 형성이 분명하지 않다보니 아마도 386세대가 앞으로 한 30년 집권하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386세대들은 정치적 주체 형성을 통해서 자기조직화를 해서 그런지, 더 젊은 세대의 가능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젊은 세대들이 굉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부연해서 설명해주세요.

김지하– 이상할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러는지 이상할 것입니다. 우선 숫자로도 이 사회의 주축입니다. 인구로 보면 10대, 20대, 30대 초반이 전 인구의 78%예요. 이미 숫자로도 이 사람들이 압도해 오는 시대인데. 이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거의 엉망이죠. 직장과 노동기회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교육을 보세요. 정말 엉망입니다. 68년 혁명처럼 문화적인 혁명이 안터지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4. 19세대인데, 20살 때 나와 내 친구들 한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어요. 그냥 데모 정도로 생각을 했어요. 이듬해 쿠데타 나고, 군인들이 막 설치고, 한일회담 한다고 그러니까 저것은 아닌데 싶었죠. 그러면서 지난 4월에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일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민주주의라는 것을 떠올렸지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386세대가 걸어가는 걸음걸음을 밑에 있는 78%의 젊은 세대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중요한 매듭을 반성을 통해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민주화 운동 대열에서 행동했고, 투쟁했고, 비판했고, 감옥에 무수히 들어갔어요. 하지만 특이하게도 조직에는 안 들어갔어요. 조직이나 집단하고 나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그래서 주변에선 저보고 테러리스트라고 말하지요. 테러리스트는 이념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혼자 고독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내 경험 속에서 지금의 세대를 이해하는 각도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 애들 방에 콕 들어가 있는 ‘방콕족’ 아니에요. 붉은 악마를 밀실의 네트워크라 하잖아요. 밀실과 네트워크는 반대인데, 이 반대 경향이 합쳐지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특히 이것이 분권적이라는 것이지요. 서로 간섭 안 합니다. 전부 새빨간 옷을 입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패션이 전부 달라요. 일종의 자기조직화하는 새로운 현상인데, 이는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 반대 운동도 비슷하게 나타났고, 사파티스타 인터넷 전쟁도 그렇습니다. 멕시코시티까지 행진하는데 전 세계에서 반세계주의자들이 갑자기 몰려 들었어요. 난 이 붉은 악마, 촛불세대가 자기를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세계를 설명하는 길이다 라고 생각해요. 좀 억지인가요? 좀 억지겠죠?

전효관– 선생님 인터뷰하신 것을 읽었는데 ‘한국사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강조하시는 것을 보았지요. 왜 그렇게 전망하시는지요?

김지하– 두가지 얘기를 해 보지요. 하나는 백낙청 교수같은 세계체제론자가 한반도 21세기 구상을 하는 것을 보면, 세계적인 규모의 새로운 문명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그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데서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를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의 전통에 대한 창조적 해석, 그것을 적용하는 현실적 실천이 주동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봐요. 한국에 세계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 내용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괴상한 말과 속임수가 아니라 ‘생명지속적 발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내가 존경하는 루돌프슈타인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영성, 무의식 명상을 강조했고, 내면적 평화, 생명, 생태학, 유기농 이런 운동을 생명과 영성 교육운동으로 이어낸 사람입니다. 이 사람 말에 따르면 인류의 큰 전환기에는 반드시 새로운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민족이 나타난다고 했지요. 일본의 다카하시 이와오라는 사람이 이런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과제가 일본 민족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아무리 공부를 해봐도 일본 신화와 역사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것이예요. 그러다가 한국역사와 동학 서적을 읽었는데, 바로 그때 이 민족이구나 확신을 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외국침략을 당하고 폭정 밑에서 자기 이상을 펴지를 못한 이 민족이 앞으로 세계에 뭔가 새로운 삶의 원형을 제시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자꾸 이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것이예요. 내가 놀라서 도망갔어요.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이것도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지요. 잘못하면 국수주의에 빠질 수 있는데, 이걸 피해서 동아시아론, 세계체제론, 붉은 악마 현상 이런 것을 연결시켜 보면 이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계속 억지 같죠.

전효관– 얼마 전 같이 운동하다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가 귀국해서 하는 말이 베트남을 보면서 감동을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제국주의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정신적 깊이가 성숙해버린 나라를 보게 된다고 해요. 선생님은 이런 씨앗을 한국사회 어디에서 발견하세요?

김지하– 이미 19세기에 동학, 정혁, 증산, 최한기, 이제마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요. 해방 이후에는 김범무라는 사람이 있었고 또 의사였던 한동석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동학에서는 혼돈이 우주질서의 근원이라고 하고, 서로 다른 반대가 일치하는 한울림이라는 사상이 있어요. 또 正易(주역과는 다른 易)에서는 ‘呂律’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呂)는 카오스이고, 율(律은) 코스모스입니다. 원래는 ‘율여(律呂)’라고 하는데 코스모스가 앞서요. 그런데 이것을 1879년에서 1885년 사이에 정역(正易)에서는 ‘여율’로 뒤집어버려요. 이 말은 여성, 소인, 민중, 동식물, 물건들까지 존중하는 사상이 나왔다는 거지요. 우리가 이런 사상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었는데 붉은 악마가 이것을 들고 나왔어요. 어디서 이것이 나왔는가 이 점을 묻게 돼요. 생명이란 것도 내면에선 영적이고 바깥에선 생명이죠. 항상 생명은 이중적입니다. 이 700만명의 붉은 악마에게 이 모순된 것의 일치를 누가 가르쳤나 이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컴퓨터입니다. 뇌의 모방인 컴퓨터는 있다/없다, on/off의 이중적 운동을 합니다. 여기에 익숙해진 세대가 새로운 문명의 흐름을 배운 것입니다. 내가 너무 낙관하는가요?

전효관– 문화운동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일상과 문화를 다시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적인 이야기라고 한다면 문화운동과 관련된 이야기, 사람들과 만나는 문화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지하– 나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딱 정해놓고, 오래전부터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화에 주목하고 있었어요. 문화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를 새롭게 생각해야 됩니다. 프랑스 혁명은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하기도 하죠. 왜냐면 정치, 경제만 가지고 사회를 뒤집었기 때문이예요. 5월 학살, 루이 16세 처형, 그리고 러시아 10월 혁명까지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문화, 예술을 알고, 교양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주 멋지고 예의바른 인간들, 멋쟁이 인간들이 혁명을 했어야 한다고 봐요.
문화의 핵심에는 미학이 있고,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나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로 인격, 비인격, 생명, 비생명을 막론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것을 모두 공동체로 인정하는 사고를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제는 동아시아 고대에 대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동아시아 민족들이 다 참가하고, 유럽에서 지식인들도 참가하고, 아메리카 지식인들도 참가하고, 이슬람 사람들도 참가해서 아시아 르네상스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인류가 결핍하고 있는, 소위 ‘빅카오스’, 대혼돈을 처방할 수 있는 인문학이나 과학들의 기초를 찾아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가장 큰 현실 개혁의 적인 관료주의를 깨야 합니다. 교육 혁명과 문화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초짜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교육혁명입니다. 지금은 말이 아닌 상태입니다.
새롭게 우주적 공동체성이라는 것을 다시 해석하고 나서, 교육과 문화의 영역에서 삶의 전 영역을 침범하는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문화혁명을 해야 합니다.

전효관– 선생님 이야기 속에는 문화운동의 과제로 교육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단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계신 듯합니다. 학교 교육과 관련해서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요.

김지하– 모든 것에 앞서 미적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적 교육과 상상력 훈련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곤충이 날아 오를 때 그 벌레가 날아오르는 그 광경이 굉장히 경이에 찬 발견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유아교육,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 경험에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이 첨가되고, 예술과 시도 붙고, 미술도 붙으면서 이런 식으로 아주 풍요로운 인간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간디학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밤에 달뜨는 것을 보고, 새벽에 동 뜨는 것을 보고, 춤도 추고, 이런 애들이 앞으로 뭘 해도 다 잘할 수 있겠지. 사랑하는 마음, 애련감, 이상한 그리움, 이런 것들을 느껴보기도 하고, 농사도 지어보고, 콩도 구워먹고 이런 대안교육에서부터 원형을 찾아내야 해요. 보편적인 국가 교육 자체가 대안교육을 점점 닮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보세요. 교육을 가지고 떠드는 사람들, 장관에서부터 전문가들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이것은 무슨 ‘물류 전문가’들 같거나 아니면 ‘리모델링 전문가’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상력과 문화적 탐구력에 기초해서 삶과 세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삶과 세계를 바꾸는 것은 혁명만이 아니고 예술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자기인생을 바꾸고 자기가 바라 본 객관세계를 고쳐나가고 이런 힘을 줘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미학이 핵심이 되는 교육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전효관– 작년에 선생님이 하셨던 생명문화포럼이 있잖아요. 제가 자료집을 쭉 봤는데 학술행사 같은 성격이예요. 앞으로 후속세대들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어떤 내용을 채워나가실 계획이세요?

김지하– 올해 문화행사가 많이 결합됩니다. 예를 들어 행렬을 생각하고 있어요. 환웅하고 웅녀를 중심으로 고구려 무사들이 둘러싼 대열이 있고, 그 다음에는 동학군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솥이나 반찬그릇 들고 애들 손잡고 오고, 남자들은 대창 들고 그 뒤로 오고, 마지막에는 붉은 악마 촛불세대가 뒤를 잇는 세 개의 집단이 판문점에서부터 포럼개최지인 파주의 문발리까지 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오면서 놀고 중간에 쉬고 그러면서 이벤트도 하고 그러면서 옵니다. 와서는 전람회도 하고 또 굿도 해요. 탈춤도 한 마당 열고, 또 음악도 해요. 이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청소년과 주부들이 쉽게 문화적, 예술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형태로 옮겨갈 것이고, 내년에는 학술행사와 문화행사가 거의 똑같은 정도로 하고, 그 다음에는 문화행사가 학술행사를 압도해버릴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대중적 운동으로 확산시킬 거예요. 나는 3년째에 거기서 은퇴를 하려고 하죠.

전효관–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좀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신지요?

김지하– 젊은 세대 이야기가 쭉 나오네요. 내가 조금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기가 자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가 산다는 것은 자기 안에 뭘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사는 거예요. 그게 뭘까. 뭐 신이라고 말해도 좋고, 영성이라고 해도 좋고, 생명이라고 해도 좋고, 목마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산다는 것은 확실히 어떤 것에 대한 목마름이나 기다림입니다. 이것만은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이것이 ‘살림’입니다. 난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시게 되면 자연히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걸 통해서 너와 나. 환상과 현실, 주관과 객관, 주체와 타자, 남한과 북한 이런 관계를 깨닫기 시작하면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이야기들이 거창하거나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과 주부들이 변화에서 핵심이라는 것만 이야기해두고 싶습니다.

전효관– 어린이와 주부들이 중요하다. 이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 전 정기용 선생님과 순천의 ‘기적의도서관’에 갔다 왔는데, 정기용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지요.

김지하– 난 남자가 만든 수 천 년에 걸친 문명사는 다 실패라고 생각해요. 근사해 보이지만 다 파괴예요. 이제는 여자들, 청소년들, 어린이, 비인격 들을 존중하는 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카오스를 존중하는 코스모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남자들, 선배들이 물꼬를 터주면 됩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지식인들이 터키전 하는 날 집단히스테리라고 일회적이라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효선, 미선이를 계기로 한 촛불집회를 보세요. 나는 역사라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진 않지만 하나의 유출, 인간의 내적인 유출이 접목되었다, 터졌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주목해서 보고 있어요.

전효관– 아주 긴 인터뷰 고맙습니다.

신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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