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90퍼센트가 지루하더라도 반짝이는 10퍼센트 때문에 살 수 있다
열한 살 꼬마 때는 어른의 삶이 미지의 세계다. 거의 이루어지지 못할 무모한 장래희망을 지닌 채, 벅찬 기대에 부풀어 어른을 동경한다. 꿈이 이루어졌든 안 이루어졌든 어른이 되고 나면 인생은 영화와 같은 기승전결의 서사구조가 아님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완벽한 직업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엔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대부분의 일은 귀찮은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감수해야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예술가라 할지라도, 산업의 메커니즘과 구조적 착취에 시달리며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죽느냐, 사느냐’하는 햄릿의 존재론적 독백을 배부른 치기로 변모시킨다. 인생에서 서서히 낭만이 사라진다. 몇 십 년 동안 일터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나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감정표현이 사라진 무심한 얼굴 하나를 거울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곧, 짜증 섞인 목소리가 따라온다. 이런, 나이만 먹었군.
부러움 뒤에는 항상 시기와 질투가 존재
<스티브 지수의 해저 생활>의 주인공 스티브 지수의 현재 얼굴이 딱 그 꼴이다. 스스로의 ‘재능’을 믿고 한 길로만 걸어왔는데 고작 얻는 건 비웃음뿐이라면 그 때는 어떤 기분일까. 그저 의지 하나만 믿고 인생을 버텨 왔는데 그 인생이 뒤통수를 치는 순간의 표정이 궁금하다면 스티브 지수의 얼굴을 보면 된다.
그는 30년이 넘게 해양학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업적을 고스란히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왔다. 꽤 유명인사지만 그것도 과거의 영광이다. 별 것 아닌 영화를 찍다가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버렸고, 영화 흥행은 실패했고, 투자자는 모두 떨어져나갔다. 아내는 등을 돌린 지 오래. 생의 보람으로 남을 자식도 없다. 그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 스티브 지수는 착잡함을 감춘 얼굴로 다음 영화를 준비한다.
겉보기에는, 거대한 배에 몸을 싣고 미지의 해양 생물을 쫓아다니는 ‘어드벤처’의 삶이 멋있기만 하다. 그러나 항상 부러움 뒤에는 시기와 질투가 존재하는 법. 스타의 추락이 늘 드라마틱하듯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에 인간은 은밀한 쾌감을 느낀다. 스티브 지수의 몰락을 눈치 챈 여자 기자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캐기 위해 그의 배에 동승한다. 그래도 스티브 지수의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시큰둥하고 무심하다.
이런 스티브 지수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사건이 발견한다. 오래된 연인으로부터 태어난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생면부지의 아버지와 아들은 멀뚱하니 인사를 하고 소심하게 대화를 나눈다. 아들을 처음 본 스티브 지수의 머릿속에선 일련의 ‘막장 드라마’ 스토리라인이 굴러가는 듯했다. 심심한 다큐멘터리에 출생의 비밀을 밝히는 부자관계가 등장하면 그나마 흥행성이 있을 거란 승산이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아들의 리더십과 배려심을 확인한 지수는 어느새 그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여자 기자가 아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또 한 번의 막장 드라마 라인이 만들어질 법도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사랑 앞에서 미련 없이 물러선다. 이 쓸모없는 인생이 어쩌면 ‘아버지’로 전환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희망이 스티브 지수를 나아가게 만든다.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내 곁에 머무르기를…
<스티브 지수의 해저 생활>은 해양 다큐멘터리팀의 배 안과 밖의 자질구레한 상황을 버라이어티하게 늘어놓는 영화다. 1차적으로는 동료를 죽인 ‘재규어 상어’에게 복수하러 나서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다루지만, 보고 보면 ‘빌 머레이 웃고 울리기’라는 부제를 달아줘야만 할 것 같다.예측불허의 인생을 통과해온 그의 얼굴엔 표정이 없다. 수많은 경험을 치르다 보니 희로애락의 표정이 닳고 닳아 미니멀해졌다. 무심한 일련의 행동은 전반적으로 ‘쿨해’ 보인다. 스티브 지수 역의 빌 머레이만 그런 게 아니라 영화 전체가 그렇다. 애정라인과 혈연관계가 널을 뛰는 상황 속에서도 영화는 그저 쿨하기만 하다. 해적에게 배가 털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배 안의 미장센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단정한 미장센으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스티브 지수의 활동 무대인 ‘벨라폰테’ 내부를 한 편의 동화 같은 완벽한 소우주로 만들어낸다. 인물은 정적이고 배경은 아기자기하다. 차분한 감정만큼이나 동선도 차분해서 ‘어드벤처’ 장르를 기대했다면 당연히 욕하고 보게 될 영화다. 대신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은 직접적인 감정표현에 서투른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다. <바틀 로켓> <로얄 타넨바움> <다즐링 주식회사> 등의 영화에서 웨스 앤더슨은 항상 상처를 억지로 쿨하게 봉합하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담아왔다.
클라이맥스는 인물들의 그 쿨한 태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스티브 지수의 해저 생활>에서 그 몫은 온전히 빌 머레이가 담당한다. ‘그다지 재미있을 것도 없는 인생’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에 서서히 감동과 슬픔의 감정이 드리워질 때 그를 보던 사람들도 덩달아 그 기분에 동화된다. 온갖 상처에 곤죽 상태가 된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재능을 잃어버린 걸까?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얼마 뒤 복수의 대상이었던 ‘재규어 상어’의 아름다운 모습을 목격하면서 그 의문은 모두 사라진다. 인생이란, 어차피 90퍼센트가 지루하더라도 반짝이는 10퍼센트 때문에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늙어만 가는 얼굴을 보며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더라도, 지나온 삶을 부정할 순 없다. 빛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면 그만인 것. 웨스 앤더슨 감독도 관객들이 자기의 영화를 외면할 때마다 수만 번 지수와 같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나 또한 과거를 부정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경험을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게 나’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예쁘면서 꽤 썰렁한 영화 <스티브 지수의 해저생활>이 전하는 또 하나의 교훈은 자신을 믿어주는 패거리가 있다면 헛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지리멸렬한 모험이라도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스티브 지수는 일면 부러운 사람이다. 감정의 고해성사 없이 묵언으로 대화할 수 친구들이 계속 내 곁에 머물러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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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착취라는 말이 머리에 퐉 꽂히다가, 리더십과 배려심이라는 말이 또 가슴에 꽂히네요. 그지같은 일상, 아주 가끔 따땃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좋으련만….인생이 지루하긴 다 마찬가지고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