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 이주노동자들은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인 / 전동 휠체어에 카메라를 묶는 것 밖에
여 성 /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 용기
시각장애인 / 글로 써 보내고 싶지만 걔네들은 점자를 몰라
지역(부안) / 일상생활에서 묻힌 부안주민의 목소리가 표현되고 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분식집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나는 늘 영화/영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친구들과 삼년을 어울렸더니 ‘디졸브’라는 말을 배웠다. 그 외에도 카메라 워킹, ‘뻥샷’이라고 불리는 어긋난 촬영 각도 등 영상을 잘 만들기 위한, 영상의 미덕을 만드는 기술적인 장치를 부르는 몇 가지 말들을 주워들었다.
12월 4일 미디액트 대강의실에서 있었던 ‘미디어교육의 새로운 실천, 미디액트 2004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에서 본 영상들은 내가 생각했던 영상을 재단하는 ‘미덕’의 눈금자가 새로운 종류의 것이었다. 화면이 튀기도 하고, 장면이 전환될 때 인터뷰를 하던 사람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며 넘어가기도 하고, 화자의 말이 정리되지 않고 중언부언하는 말들이 그대로 녹취되어 자막으로 등장하는 영상들을 세편 쯤 보았을 때 나는 그 새로운 눈금자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카메라를 쥔 사람의 목소리가 화면을 뒤덮으며 카메라에 투영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도 않고, 1인칭 화자가 길을 가다가 버스의 소음에 목소리가 묻히기도 하고, 휠체어에 묶인 카메라의 시선으로 명동거리를 보기도 한다. 이들의 영상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매개이고, 자신과 심층적인 대화를 하는 도구였다. 이 영상을 재단하는 눈금자는 카메라를 든 사람, 카메라에 속에서 입을 연 사람, 카메라 속에 빼꼼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의 결이 촘촘히 새겨진 눈금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영상미디어 센터 등에서 강좌를 통해서 기초를 익히고 장비를 대여해 영상을 제작한다. 청소년센터가 아닌 곳에서 강좌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30대 여성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간혹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친구들과 강좌를 신청하기도 한단다. 사람들은 자기와 그리고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미디어를 찾고 있다. 미디액트는 이날 발표회 자료집 서문에서 “미디어교육은 왜 필요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게 인터넷 보급률이 얼마를 넘어섰고,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얼마나 되며, 청소년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러저러하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미디어교육의 필요성을 말한다. 하지만 “만약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아주 적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필요하지 않은가? 또 영향이 아주 적다면 교육할 필요가 없을까?”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은 영상미디어 센터(http://www.mediact.org),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하고 사단법인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하는 21세기 영상매체 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문화기반시설)의 프로그램이다. 미디액트는 ‘19-20세기에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읽고 쓰는” 능력(리터러시)을 대중화하는데 공공도서관과 공공미술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21세기에는 영상미디어 센터가 영상매체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의사소통의 매개적 장으로 기능하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넘어서서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공공문화기반시설의 중추적 형태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창작/표현의 매체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도구로 미디어에 접근한다. 대중 미디어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누구나 미디어를 이용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혹은 배우고 싶을 때 배울 수 있도록 접근이 용이한 것은 아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쓰고, 말하고, 셈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 보편적 권리로서 인정받는 것과 달리 미디어 교육이 권리와 의무로 있지 못하는 까닭은 미디어가 사회 안에서 ‘기회’로서 주어지고(미디어는 이용료를 내거나 구입해야 하는 것)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미디어에 대해서, 미디어를 수단으로, 미디어를 통해 배우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이며,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행위이다.(미디액트 자료집 중)”
특히 문화, 사회적 계급, 성, 물리적/정신적 장애 등에 의해서 미디어교육의 기회가 제한된 사람들이 있다. 미디액트는 미디어 교육이 ‘기회’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되고 확보되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라고 생각하고, ‘찾아가는’ 미디어 교육을 하기로 했다. 명동성당에서 고용허가제 농성을 하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미디어 교육을 했고, 지체 장애인, 시각 장애아동 등과 미디어 교육을 해왔고 12월 4일 발표회를 가진 것이다.
이날 발표회에는 미디액트의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에 교사로, 피교육자로 참여했던 사람들과 각 주제에 교사로 참여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강서 미디어 센터, 관악 미디어 센터, 다음세대 재단, 품 청소년 공동체, 하자센터에서 영상을 가르친다는 사람, 5톤 트럭에 장비를 싣고 찾아가는 영상제작 센터를 하시는 분 등이 모여,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하고 보완할 수 있는 파트너쉽을 형성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찾아가는 미디어 교육’은 주류 미디어에서 소통되지 못하고, 왜곡되어 전달된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소통한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이야기하는 존재들로 비춰져왔다. 이주노동자들은 황당뉴스들을 만들며 농성장에서의 일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자국어로 영상을 제작하며 커뮤니티 미디어에 대한 꿈을 키워보기도 했다. 또한 퍼블릭 액서스 차원에서 주류 미디어에 비친 이주노동자의 왜곡된 이미지에 대항하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수단으로 미디어를 인식하고 있다.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은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사회 부문운동들과 결합하여 교육참여자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조건과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여 교육 내용을 설계한다고 한다. 각 교육의 방법과 내용은 각 공동체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오랜 사전 토론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체 장애인 미디어 교육을 맡았던 분은 스스로 주류 미디어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어서, 매 교육에 비장애인이 교육 보조자로 참여하고 안정된 화면을 위해 비장애인이 촬영해오다가 어느 날 ‘흔들리는 화면 자체가 이야기를 담고 소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류 미디어에 적합한 미디어를 생산하기 위한 미디어 교육을 방식에서 탈피해 각 주체들에게 적합한 미디어는 무엇인가? 이들에게 적합한 미디어 교육의 방식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박종필 씨는 카메라를 활용한 것이 과연 장애인들에게 적합한 미디어 교육일까 생각하게 되었고, 이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통해 미디어와 미디어 교육의 대안을 주체를 통해 찾고 있다. 지체 장애인 미디어 교육에 참여했던 분은 장애는 개개인마다 다르고, ‘왼손장애인’에게는 ‘왼손잡이용 카메라’가 필요하듯이 각 장애에 맞는 교육 도구와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시각 장애아동과 했던 미디어 교육에서는 전맹/약시/이중 장애 아동이 섞여 있어서 차이가 서로를 보완하는 경험을 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라디오를 제작했는데 글을 읽고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옆에서 다른 아이가 한 단어씩 귀에 속삭여주며 대본을 녹음하기도 하고, 아이들 스스로 각각의 속도와 장애를 보완하며 교육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시각 장애 아동 중에는 절대 음감이 굉장히 많은데, 어떤 아이는 “선생님은 형광등 소리가 들리세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청각에 관한한 일상에 대한 주의력은 단연 뛰어난 아이들이다.
여기서 (찾아가는) 미디어 교육은 수혜의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자기 진화/발전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각각의 교육 대상층에 맞는 교육 내용을 설계하는 모습과 꼼꼼함, 그리고 교육자와 피교육자/교육 보조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허물없는 일상의 소통이 교육의 소통,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소통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찾아가는 미디어 교육은 교육의 수혜를 위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교육의 자체 진화를 위해 찾아간다. 미디어교육은 대상층에 대한 이해와 탐구, 소통을 통해 발전한다. 그것은 미디어가 나와 타자를, 우리와 사회를 매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액트의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은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더 많은 굴절각을 가지게 되어 일 곱색 이상의 빛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프리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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