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세안 예술경영 워크숍 – 관객개발과 문화예술교육

한-아세안 예술경영 워크숍 – 관객개발과 문화예술교육

 

지난 5월 8일부터 12일까지 4일 동안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 2회 한-아세안 예술경영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아시아에서의 관객 개발과 유지’(Harnessing Opportunities from the Arts: Building and Sustaining the Audience for the Arts in Asia)라는 주제로, 한국과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문화예술관련 실무자 및 관련전문가들이 만나 개별 국가의 현황과 앞으로의 비전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이삼열 사무총장, 허권 문화팀장, 정재옥 크레디아 대표, 이혜경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강응선 고려대 교수, 김세준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교수, 이광준 예술경영지원센터 팀장 등이 참여하였으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김주호 원장이 발제자로, 기획홍보팀의 곽수민씨가 참관자로 참여하였다.

이번 행사는 필리핀 문화센터(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필리핀 국립문화예술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culture and the Arts), 그리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의 공동 주최로 성사되었다. 예술과 문화산업의 역할이 근래에 그 힘을 키워가면서, 예술경영적 관점에서 관객 개발 및 유지 사례와 비전을 공유하는 이번 행사는 2001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예술경영 워크숍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으며, 각 국의 사례공유에 머물렀던 지난 회의 형식에서 한걸음 나아가 관객개발과 유지라는 주제로 논의의 폭을 보다 구체화하였다. 특히 이번 워크숍에서는 관객개발의 중요한 수단적 의미로 예술교육이 크게 주목받았다. 김주호 진흥원장은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중심으로 관객개발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발제를 통해 아세안 각국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발제문을 통해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핵심 개념과 내용을 설명하였으며, 관객이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술경영의 지상과제 관객개발

예술을 지원하는 일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요한 아젠다로 채택되고 있다. 방식과 규모는 다르다할지라도 국가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이나 일반 대중의 예술참여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시장실패(Market Failure)나 비용의 질병(Cost Disease)에 시달리는 공연예술의 경우 국가의 지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소비자이자 후원자(patron)인 관객은 예술활동의 궁극적인 대상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는 일은 예술경영자에게 지상의 과제이며 예술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관객은 누구인가? 우선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개별적인 예술활동의 차원에서 관객은 소비자이다. 따라서 예술경영인은 이른바 아트마케팅 기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성공의 의미가 상업적인 것을 의미하든 예술적인 것을 의미하든, 관객은 예술활동의 중추적인 요소이다. 특히 예술활동을 관객과 예술가의 소통(communication)으로 본다면 관객은 창작행위의 일부를 지탱하는 주체적인 요소로서 예술적인 완성을 이끌어내는 데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의미에서 관객은 사회구성원 전체를 지칭한다. 민주사회에서는 경제적, 지리적, 민족적 구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관객이 될 수 있으며 정부는 그러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도록 예술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관객의 범위를 확대하고 가급적 많은 사회구성원이 예술의 관객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국가가 예술을 지원해야하는 임무에 대해 근본적인 당위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술지원 정책은 예술가 또는 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방향과,  관객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유도함으로써 예술을 발전시키는 두 가지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후자는 관객의 수적 확대와 수용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이 시도된다. 공공의 후원으로 학교 또는 지역사회에서 펼쳐지는 예술교육은 거시적이고 중장기적 의미에서 예술경영인의 관객개발 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본 발제에서는 공공의 지원으로 추진되는 예술교육 또는 문화교육의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예술경영의 지상과제라 할 수 있는 관객개발 노력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제공하는 가 파악해 보고자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개념

한국에서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국가 정책의 아젠다로 등장한 것은 30년 정도라고 사료된다. 초기에는 전통문화의 보존에 힘이 실렸고 이후 문화기반시설의 확충이라는 물리적 사업에 에너지가 모아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동안의 문화정책은 예술가나 예술프로젝트의 지원에 초점을 둔 예술지원정책이 근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창작자 중심의 예술지원정책 못지않게 일반 향유자 중심의 문화정책이 사회적 설득력을 얻으면서 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 변화의 과정은 문화예술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좀 더 밀착하며 전반적으로 삶의 질을 풍요롭게 가꾸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좁게는 예술적 체험을 통해 표현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개인적-예술적 범주의 시각이 있는가 하면 넓게는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타자에 대한 포용성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문화적-사회적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특히 이 두 가지 관점이 대립적 존재하여 예술교육(Arts Education)이란 명칭보다 문화예술교육(Culture and Arts Education)이라는 명칭이 선호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문화예술교육은 각기 고유의 의미를 가진 ‘문화’, ‘예술’, ‘교육’ 세 개의 바퀴가 맞물려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세발자전거 형태처럼 보인다. 하나의 용어로서 문화예술교육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각각은 언어 사용주체의 입장을 철저히 반영하고 있다.

– 전문가 교육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일부 예술가들은 미래 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즉 전문예술가 양성교육의 일환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물론 어린시절의 문화예술교육이 동기가 되어 장차 예술가의 진로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이점에서도 교육적 의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이 이렇게 해석될 경우 기존의 전문교육기관에서 개설하는 교육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내용과 방법으로 예술적 기량 개발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사회교육 또는 평생교육 차원의 향유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나 창의력을 키워낼 수 있는 통합적 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 교양교육

문화와 예술을 아주 엘리트적인 시각으로 접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지식과 양식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존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교양인이 되기 위한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문화의 민주화(Democracy of Culture)가 달성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문화예술의 범주를 편협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소수자만이 향유할 수 있다는 편견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현재 한국의 문화정책이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과는 상반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 문화 소비자 개발

예술상품을 기획하고 흥행하는 입장에서 또는 예술단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일종의 소비자 개발을 위한 마케팅이 되거나 공공재원의 원천을 교육분야로 확대하는 재원조성(Fund Raising)의 수단이 된다. 특히 공공의 지원이 축소되거나 시장환경이 열악해질 경우 예술경영자들은 더욱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수입원을 다양화하려 할 것이다. 예술작품을 쉽게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일, 그리하여 향유자를 확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잠재적인 소비자를 개발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 경우의 예술교육은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예술경영 활동의 전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교육

문화가 일상의 삶 속에서 발현되며 그래서 한 사회에 존재하는 문화가 다양하고 다원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민들이야말로 창작과 표현의 주체가 된다. 다시말해 시민들이 단순한 문화의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문화교육을 통해 개인의 창조성이 개발되고 공동체간의 소통이 증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교육은 피교육자를 대상체로 규정하는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가는 학습에 더 가까운 개념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영향을 미친 이론적 배경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화를 해석하고 문화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지점에서 출발하였다. 시민사회의 문화교육 문제의식은 시민의 일상에서 창작과 표현의 주체를 만들고 나아가 시민적 삶의 양식을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입시위주 교육이 청소년들의 정서와 신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현 교육 문제에 대응하여, 문화예술이 기존의 형태를 어떻게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 차원의 문제제기가 그 핵심이라고 본다. 요약컨대, 문화와 교육 영역에 개입하는 행위, 주체, 제도, 환경을 재구성하는 사회 운동의 측면이 주요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교육의 관점은 관객개발이라는 예술경영적 목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오늘날 문화예술교육은 형식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 유네스코와 포르투칼 정부의 주최로 World Conference on Arts Education이 개최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다분히 포괄적인 비전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압축적 고도 성장과정을 힘들게 거쳐 오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여가 활용을 위한 문화적 취향과 향유능력을 갖출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는 각성이 예술가 중심에서 관객의 입장을 배려하는 정책변동의 동인이 된 것이다. 예술교육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과 감성을 확산하여 미래의 향수자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문화정책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문화향수자의 확대, 문화다양성 인식의 확산, 공교육의 문제 극복, 문화양극화의 해소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실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 법과 제도의 정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후원기구(Funding Agency) 설립 및 필요 재원 확보를 명시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문화예술교육이 제도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다.

–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학교의 정규교과 내에 문화예술교육 과목을 확대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교사 및 강사를 지원한다. 기존 교사를 재교육하거나 예술가를 재교육하여 전문강사로 전국의 학교에 파견하는 일이 실시되고 있다.

– 지역사회에서의 문화예술교육

지역사회의 성인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지역의 문화예술기반시설(Arts Centre, Museum, Gallery)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한다. 특히 취약계층(Marginalised Group)을 배려한 문화예술교육이 중점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공감확대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문화적 의미 그리고 교육적 효과성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고조시키는 일은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필수적인 다양한 파트너쉽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Advocacy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지원정책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정책의 연관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예술경영의 개념과 실천방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예술경영은 예술활동과 그 수용자간의 간격을 최소화 하려는 촉매적 활동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과 재원조성(Fundraising) 활동을 펼치게 된다. 예술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은 이 두 가지 분야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흔히 이 정책을 “모든 이를 위한 예술(Arts for All)”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교육은 예술을 위한 예술교육(Education for Arts’ sake)이든 예술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Arts)이든 다양한 참여자를 양산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소비자의 층을 두텁게 만드는 일종의 거시적인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은 현재와 미래의 예술 수요를 촉진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공공부분의 예술교육 활성화 정책은 그 자체가 일종의 예술지원 프로그램의 대상이기도 하며 교육부문의 지원대상이기도 하다. 예술작품이 교육의 소재가 되거나, 예술가의 창작 과정이 수업의 일부가 되는 일 그리고 예술가가 교사가 되는 일은 전형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며 교육과 예술 분야의 지원 확보가 공히 가능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술경영인의 입장에서 재원조성의 원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예술교육은 상품으로서 예술이 가지는 경제적 제약조건들을 해소할 수 있는 여건을 사전에 제공하기도 한다. 흔히 예술이 가진 공공재적 성격은 그것에 대한 공공의 지원을 정당화한다고 간주된다. 예술교육에는 여기에 교육이라는 더욱 확실한 공공재적 특성이 부여됨에 따라 가일층 확고한 공공지원의 여지가 추가될 수 있다. 또한 경험재로서 예술이 관객(소비자)에게 강요하는 선택의 위험부담을 사전에 감소시킬 수 있는 정서적인 토대와 감수성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예술교육은 그 본연의 목적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예술 현장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진입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안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개발은 관객의 절대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기존 관객의 유지가 아니라 잠재관객의 발굴을 통해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서구 세계와는 달리 아시아지역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잠재관객의 수가 기존 관객보다 더 많은 실정에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서구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통예술(Indigenous Arts)의 소재들이 상품으로 개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취향을 계발하고 저변층을 확대하여 숨어있는 미래의 관객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예술교육은 이점에서 관객개발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주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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