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교육과정에서 음악교과의 40%가 국악으로 배정되면서, 교육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국악을 가르칠 만한 교사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국악수업은 국악을 더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옛 말과 국악 이론을 단순히 외우는 것으로 끝나는 수업은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국악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국악 향유자를 잃게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많은 문화기반시설에서 국악 관련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강사풀제에서 파견되고 있는 강사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도 국악강사이다.
왜 국악일까
국악을 포함하는 전통예술이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우리의 문화라는 당위가 기본전제로 깔려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정체성의 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국악이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문화’를 알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학교와 예술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은 좁게는 관객개발에서부터 넓게는 대국민 문화예술 참여, 향유 수준 업그레이드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국악 체험 프로그램들은 목표를 달성하고 있을까. 때마침 이루어진 정동극장의 ‘장구치고, 공연보고’ 청소년 국악체험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정동극장의 ‘장구치고, 공연보고’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처음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니다. 추석과 설날과 같은 명절 때 가족단위로 이루어졌던 것을 방학을 맞아 기간을 길게 잡아,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국악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를 갖고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20분간 장구를 배우고, 정동극장 상설 국악공연을 관람한 뒤, 우리의 대표 대동놀이인 ‘강강수월래’로 판을 마치고 있다. 프로그램만 봤을 때는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분 동안 이루어지는 장구 체험 교실은, 과연 20분 동안 무얼 배울 수 있을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장구채 잡아보고, 덩 쿵 따 한번 쳐보고 2채(*)를 치면 끝나는 건 아닐까. 약 20여명의 가족들과 외국인이 무대위에 모여 앉아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앉은 자세를 잡고, 어색하지만 신기한 듯 장구채를 잡는다. 서양악기와 구조부터 다른 한국악기를 앞에 두고, 외국인들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는다. 긴 다리를 접어 앉는 것이 불편해보일 정도였지만, 처음 접하는 경험이 재미있는 듯 곧잘 따라하며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아이들 앞이어서 그랬을까. 참여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입장단을 따라하며 날아가려는 장구채를 손에 꼭 쥐고, 가락은 익숙하지만 손이 따라가지 않는 상황이 멋쩍은 듯 열심이셨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처음에는 자신이 내는 장구소리가 신기한 듯 마냥 두드려 보다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다 보니 마치 수업을 받는 듯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1채와 2채를 하고 인사굿(*)으로 마무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저 따라하기에만 바빴다. 체험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참여한 적극적인 관객에 속하는 이 아이들의 표정 속에 왜 즐거움이 빠져 있는가. 약속한 20분이 지나자 장구체험 교실은 선생님의 인사에 맞추어 끝이 났다. 좀 더 신나게 장구를 쳐볼 새도 없이, 2채를 마저 배울 새도 없이 아니, 자신만의 장구소리를 들어볼 시간도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문제였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더라도 장구에 대해, 전통예술에 대해 무언가 알고 느낄 수 있었다면 전통예술무대 공연 관람을 좀 더 뜻 깊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국악체험 프로그램은 공연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전반적인 체험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장구라는 악기를 배워보는 것에서 끝을 내고 있다. 결국은 다시 시간의 문제로 돌아가는데, 1회성으로 끝나는 프로그램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할 수밖에 없고 지속적으로 혹은 단기간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에서도 그 정도는 나아지지 않는다. 실제로 개설되고 있는 국악 체험 프로그램들을 보면, ‘장구 기초반-중급반’ 등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장구를 배우고 나서 아이들이 국악이라는 문화에 대해서 얼마만큼 자기화 하여 가져갈 수 있을까. 국악 체험 프로그램이 단순히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가는 시간으로 끝나고 있는 것이다.
정동극장 프로그램 기획자 이윤임씨의 말처럼, 아이들이 배울 때 국악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전문적일 필요는 없다. 좀 더 대중적이고, 재밌고, 느껴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좀 더 색다르게 국악을 배우고 싶어 다른 예술교육기관을 찾아봐도 국악 관련 프로그램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악기를 ‘배움’으로 국악의 향기를 느껴보자. 이런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천편일률적인 국악 체험 프로그램은 결국 관객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프로그램 수준의 저해로 돌아온다. 수요자는 내용의 부족에 시달리고, 공급자는 수요의 부족에 시달리는 악순환이다. 서로 피드백이 없는 상태에서 질 좋은 프로그램이 생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즐거움’이 빠진 체험 프로그램은 오래갈 수 없다.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과 프로그램의 탄탄함이 뒷받침 되어야 아이들도 열정적으로 따라올 수 있다.
정동극장 국악 체험 프로그램의 아이들의 표정에 즐거움이 없다는 이야기를 프로그램 기획자 이윤임씨께 했을 때, 의외로 즐거운 답변이 되돌아 왔다. 이번 프로그램 같은 경우, 시간의 한계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번 외국인 학교의 요청으로 국악교실을 연 적이 있었다고 한다. 프로그램 기획자와 아이들을 직접 상대하는 선생님 역할의 예술인들이 모여 꼼꼼히 프로그램을 짜고, 여러 가지 강의 방법을 연구한 결과 언어장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즐겁고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장구처럼 배우기에 즐겁고 매력적인 악기도 드물지만,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을 생산해내고,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교수방법을 만들어낼 때 국악 체험 프로그램은 ‘즐거움’과 ‘체험’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궁채(*), 저것이 열채(*)이다’를 아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기 이전에 ‘정신과 문화’를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음악은 ‘쿵쿵따-닥쿵쿵딱’처럼 뒷 박이 세지만, 한국음악은 ‘덩덩 쿵따쿵’, ‘대-한민국’과 같이 앞 박이 세다든지, 발레는 발 앞꿈치로 걷지만, 한국무용은 뒷꿈치부터 걷는다든지와 같은 ‘차이’에 대한 이야기꺼리만으로도 아이들이 국악과 전통예술에 대해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즐거움은 체험의 가장 큰 동기이다.
이윤임씨와 문화기반시설에서 프로그램을 생산해 낼 때,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가장 난점으로 꼽히는 것은 국악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재미없다’, ‘지루하다’, ‘왜 국악을 돈을 내고 보느냐’와 같은 선입견들 때문에 참여율이 저조했던 것도 사실이고, 아직도 그 부분을 깨기가 가장 힘들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기회를 통해 국악의 즐거움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보면 국악을 알 수 있는 ‘체험의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의 단체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미국의 링컨센터는 수준 높은 공연과 지속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이다. 단순히 공연만을 선보인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미래 관객을 위한 링컨센터의 예술교육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 링컨센터 산하단체인 ‘링컨 센터에서의 재즈(Jazz at Lincoln Center)’의 예술교육에 주목하고 싶다. 자체 공연장을 가지고 수준 높은 재즈 공연을 선보임과 동시에 지속적인 재즈 교육을 통하여 미국인에게 재즈에 대해 알려가고 아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즈를 미국 음악의 정신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재즈 교육은 우리의 국악 교육처럼 중요하다.
아이들을 위한 예술감독의 해설이 있는 재즈 공연에서부터, 재즈연주자와 함께 하는 연주교실, 수준별 상설 강습, 학교를 돌아다니며 직접 재즈 공연을 알리는 공연단의 공연, 무대 뒤 투어, 재즈에 전문적이지 않은 학교 선생님과 부모들을 위한 재즈 교육 CD 제작 등 재즈 관련 교육을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우선으로 하여 눈높이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반응 또한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생산해냄을 주저하지 않고, 예술기관 차원에서의 재즈 교육이 공교육에도 교육의 틀을 제시해 주며,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귀감을 불러일으킬 만 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국악 체험 프로그램, 차별성 없는 프로그램은 미래 국악 향유자를 키워낼 수 없다. 일회성으로 머물고 마는 문화예술교육이 될 뿐이다. ‘나는 가르칠 터이니, 너는 배우거라’ 식의 일방통행 강습보다는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은 국악에 대한 마음을 열 것이며 적극적인 향유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이 아직은 걸음마단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고 중요성을 넘어 당위 차원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이 때에 필요한 것은 보다 더 적극적인 매개자, 즉 프로그램 기획자의 마음가짐와 생산능력이다. 현장의 문제와 고민은 현장에서 가장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동극장의 국악체험 프로그램을 좀 더 알차고, 즐겁게, 지속적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이윤임씨에게 즐거운 기대를 걸어본다.
* 2채 : 다른 말로 ‘휘모리’라고 한다. 사물놀이의 기본 가락이면서, 동시에 가장 재밌는 가락이기도 하다. ‘덩 덩 쿵덕쿵’이 가장 흔히 쓰이는 2채 가락이다.
* 인사굿 : 악기를 가지고 시작과 끝의 인사를 하는 알림굿. 지방마다 인사굿의 가락은 조금씩 틀리나 대부분 비슷하다.
* 궁채 : 장구의 왼편 가죽(궁편)을 치는 도구. 앞머리가 동그랗다.
* 열채 : 장구의 오른편 가죽(채편)을 치는 도구. 편평하며 길쭉하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