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교육] 미술의 힘 행복한 치유

오희정|미술치료사

우리에게 ‘미술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가? 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 툭, 부러질까 조심조심 그렸던 ‘20년 후의 나의 모습’에서부터 먹물이 옷에 튈까 신문지에 구멍 뚫어 걸치고는 폼(?)잡고 붓글씨 쓰던 것까지. 학창시절의 미술시간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미술기법과 재료를 통해 우리의 창의적 감성과 표현력을 증진시켰다. 지금도 우리에게 미술시간의 기억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적 바탕이 사람의 일생에 필요한 사회문화교육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을런지도 모른다. 학교를 졸업한지도 까마득하다는 백발의 어르신도, ‘학교밖학교’를 선택한 탈학교 청소년에게도 그리고 병마와 싸우느라 사회와 멀어져 있는 환우들에게도. 이들처럼 문화적 사각지대에 놓인 여러 집단에게도 미술활동을 통해 생활의 에너지를 고취시킬 방법은 없는 것인가?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미술의 다각적 기능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사회집단들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나는 사회문화교육으로서의 미술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특히 미술이 가지는 또 하나의 힘, 바로 치유성에 관한 물음을 통해 미술의 직접적인 힘이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다. 물론 미술치료는 미술교육과 미묘한 구분이 있다. 미술치료는 심리적인 고통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해 보다 심층적이고 명확하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사회 집단에게 광범위하게 활동되는 미술의 능력이 곧 미술치료에서 말하는 강력한 치유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곳에 미술의 힘 끝점을 따라 미술치료라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림 속으로 숨는 사람

무엇이 두려운가? 왜 나는 그림을 바라보는가?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자. 이제부터 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료한 시간. 이 곳에서 나가고 싶다.
저 여자는 누구지? 앞치마를 걸친 여자가 자신을 미술치료사라며 나를 보고 먼저 인사한다.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나 보았을 법한 미술도구가 놓여있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엄습해 온다.
“종이랑, 물감, 그리고 색연필,,,,, 오랜만에 보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대체 왜 나를 이 곳에 앉게 했을까,
이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나? 칫. 뭐야. 그림 그려 보라고 하고선 내 속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인가? 오만가지 불평불만이 머릿속을 지나가지만 그래도 앞에서 웃고 있는 치료사를 생각해서 참자. 기분 나쁜 척 하면 더 병자 같잖아.
“난 그림을 그려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연필을 쥐었는데, 끄적거려보니 무언가 그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도 이 시간 따라 유독 말이 없다.
한참을 사각거리는 연필의 감촉과 이 색, 저 색을 섞어 색칠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림 속 주인공에게 빠져들었다.
다 그렸다.
물끄러미 내 그림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비참하게도 그림 속에는 고스란히 내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울었다.

미술의 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미술. 우리는 흔히 그런 미술활동에 관해 특별히 미술치료라는 말머리를 붙인다. 미술치료는 그야말로 각양각색 다양한 형태로 자아를 탐색해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미술치료사는 가장 먼저 자아를 찾고 싶어 하는 주인공과 목표를 잡는다. 목표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미술치료사는 주문을 외우면 만병을 싹 낳게 하는 요술공주도 아니고, 선견지명을 가진 부채도사도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치료사는 주인공과 목표를 잡고,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에 관한 여러 상징성 및 자기 물음을 함께 고민하며 그 길을 찾아간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만나고 깨닫고 아픔을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한 치유

나는 미술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미술이 가지는 힘, 그것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미술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또 그 매력에 빠져있다. 배가 볼록한 임산부에겐 태교의 한 형태로, 발달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겐 소근육 운동과, 표현력도 증진시킬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등으로 겪게 된 아동은 그 동안의 소외감을 하나의 조형물로 완성하면서 새로운 결의를 다졌고, 가족에게 성적 고통을 겪어 온 사춘기 소녀에게도 가족에 대한 분노를 분출시키고, 자신의 몸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고 보호할 수 있는 용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보다 훨씬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과거의 희노애락을 회상하고 일생을 정리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린 자서전을 선물해 드렸다.

미술치료는 이처럼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웃. 구석구석의 다양한 사회구성원에게 자기발전과 계발을 위해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함께 나아갈 희망을 제시하곤 한다.

맞춤형 미술

우리는 미술이란 것을 어떻게 즐기는가? 모든 사람들이 화가나 조각가나 디자이너가 되지 는 않는다. 그렇다면 미술활동은 우리와 어떤 만남을 이루는가? 미술을 통해 자기 만족을 얻고 싶은가? 미술 혹은 예술은 그런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는가?
나는 미술의 능력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하는 힘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탐색은 미술을 통해 언제든지, 얼마든지 시도될 수 있다. 주인공이 원하는 경우-동기가 형성된 경우에는 한 개인에게 맞는 미술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자아성장 과정을 고민해 나갈 수 있다. 미술은 특별한 한 개인에게 특별한 하나의 선물이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위해 미술 재료를 손에 쥐는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변함. 변신하기

주로 나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의 문제를 경험하게 되었을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쉽사리 그 끝을 찾기 힘든 경우가 더 많다. 그만큼 달라지기 위한 노력은 힘겹다. 때문에 처음으로 미술치료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저 예방주사를 권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를 찾아 만날 수 있는 미술 여행을 말이다. 미술 혹은 예술은 경험하는 그 자체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가 치유할 수 있는 아주 강도 높은 변신 능력을 갖고 있다. 사회문화교육으로서의 미술이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대비책이 될 것이다. 우리는 배우고 느끼면서 새로움에 관한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이러한 활동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집단군을 대상으로 평등하게 진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녀노소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많은 사람들이 등 따시고 배부를 때 활짝 웃을 수 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평생 친구를 찾는다면. 기꺼이 동행하리. 미술의 힘은 행복한 치유가 될 것이다.

오희정|